떨리는 마음으로 606호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처음 이 강좌를 신청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과 번민이 내 안에서 사투를 벌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났다.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배는 강 한가운데로 와버렸다.
범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지는 수강생들 모습에 이미 기가 꺽여 버렸지만 잘 할 수 있다라는 다짐을 계속 반복해 본다.
오리엔테이션을 맡은 선생님은 앞으로 이 수업에 대한 강의내용과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에 대해서 조근조근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나머지 한시간은 각자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국문학과를 전공해서 글을 써봤지만 다시 도전하겠다는 사람. 이미 많은 작품을 썼다고 하는 사람, 디지털대학의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는데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왔다는 사람,
시민 운동을 하는데 4대강 살리기 운동에 밤잠을 설친다는 사람, 일러스트레이터인데 글을 함께 써보고 싶다는 사람, 먼 곳 충주에서 이곳 강의를 들으러 왔다는 사람, 1시간 반도 넘게 걸려 안산에서 왔다는 사람, 신춘문예 꼭 당선되고 싶다는 사람, 환타지 소설을 쓰는데 너무 엉뚱해서 좀 방향을 잡고 싶다는 사람 등등...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글쓰기 강좌 답게 말들은 어쩌면 그리 말도 잘하는지...
나도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이 익숙해 있어서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집에서 애 보는 시간이 너무 길었나 보다.
무슨 말을 했는지 횡설수설...예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말도 이곳저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는데 아무 반응 없고 썰렁~. 아! 내 이야기 재미없나 보다. 그 생각을 하는순간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결론은 쌍둥이 엄마인데 죽기 전에 글 한번 남기고 죽어야 내 인생이 보람될 거라는 궁색한 말로 마무리...에휴! 천하의 박여사 정말 왜 이리 되었냐...
모두의 이야기가 끝나자 올해 나이 오십이라는 어떤 아줌마 번쩍 손을 들면서 하는 말
“저 아무래도 이 강의실 나가야 할까봐요”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신 선생님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여기 이 분들의 강력한 포스에 눌려 저 같은 사람은 명함도 못내밀겠어요.
저 떨리고 무서워서 지금이라도 나가고 싶어요“
그 말 듣고 모두들 동감이라며 웅성웅성...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인데...이를 어째...
선생님은 막 웃으시면서 영화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아직 ‘시’라는 영화는 안봤지만 윤정희도 이런 강좌를 처음 듣는 아줌마였는데 아무리 글잘쓴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은 결국 못쓰고 윤정희 혼자만 시를 썼다고 하셨다.
그 말에 조금 용기가 생겼다.
시라는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왼쪽 손바닥을 펼쳐 본다.
어떤 시인이 발견했다는데 왼쪽 손 손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단다. 정말 어찌 그런 것들을 생각해냈는지...과연 내게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발견하여 무언가를 끄집어낼 능력이 있는 것일까?
계속 강의를 듣다가 합평시간이 돌아오면 내가 쓴 글을 흠씬 두들겨 맞을 날이 오겠지.
나도 그것이 두렵긴 하지만, 더 성숙하기 위해서 겪어야 할 아픔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왜 굳이 그런데 가서 비싼 돈 들여가며 강의를 듣냐고...
무슨 목적으로? 어줍짢은 글로 신춘문예 등단이라도 하려고?
그림을 그릴 때는 집에서 혼자 취미로 할 수 있는데 왜 화실가서 그리냐고
질문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뒤늦게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글쓰기 강좌를 듣는 것은 뒤늦게 작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물론 작가가 되면 좋겠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림을 그리려고 붓을 드는 순간 이미 화가이며 글을 쓰려고 펜을 드는 순간 이미 작가이다.
마음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나의 취미의 즐거움은 배가 되며 또한 나의 부족함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더 움츠려들지 않고 계속 해 나갈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강의가 끝나고 함께 점심을 먹는 순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인 것처럼 스스럼없이 가족이야기부터 주변의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러면서 똑같이 생각한 건 우린 역시 아줌마라는 사실...
아줌마이기에 이렇듯 쉽게 친밀해지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다음주 강의가 사뭇 기대가 된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써야 할 것도 많지만 왠지
이 강좌를 신청하길 잘 했다 싶다.
얼마나 오랜만인가. 마음속에 공부를 해야겟다는 의욕의 실이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
좀 더 바빠지겠지만 이 강좌를 들으면서 많은 이들의 다양한 삶을 접할 수 있는 것도
내게는 또 하나의 기쁨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