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있으면 큰 딸의 생일이다.
어릴 적에는 늘 행사 준비로 딸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었다.
일년 중에 가장 큰 행사가 딸의 생일하고 겹치니
엄마아빠의 맘하고는 상관없이 서운하게 보내고 말았었다.
시집가고는 그 해만 챙겨줬고 곧 바로 외국으로 나갔기에 또 못 챙겨줬고...
올해는 제대로 된 생일을 챙겨 줘야겠어서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지난 6월 4일이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고
6월 12일이 큰 딸의 생일이라 겹쳐서 같이 축하하자고 전화를 넣었다.
큰 딸 내외가 맞벌이를 하고 있는 관계로 시간이 용의치 않아
따로 두번씩 만나기 보다는 같은 날 잡아서 편리한 날짜에 하자는 의도였다.
친정에서 귀한 딸 대접을 받고 산다는 느낌을 줘야 시댁에서나 사위도 우리 딸을
귀하게 여겨 줄 것 같았다.
안그래도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에 못 와서 미안했더라며 조만간 선물을
준비해서 들리겠다던 딸이 우리가 저들이 사는 창원으로 나가서
근사한 식당에서 진짜로 두 부부...ㅎㅎㅎㅎㅎ
우리 부부..저들부부의 기념일을 축하하자고 그랬더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단다.
당연히 저희들이 준비해야 하고 경제적인 부답도 해야 하는데
엄마아빠가 그 부담을 져 준다니까 사위는 안될 말씀이라고 그러고 딸도 그러지 말라며
경비부담을 저들이 하겠다며 난리였다.
지난 번 사돈목사님의 일을 좀 봐 드리면서 점심대접 한번
딸 내외가 귀국했을 때 환영회 겸해서 또 저녁대접 한번.
두번이나 신세를 진게 빚이되어 이번에는 사돈 목사님 내외분과
사돈댁 바로 옆에 사시는 딸 아이의 시누이 부부까지 초청을 했었다.
2주만에 기숙사에서 나오는 막내 아들도 오랫만에 푸짐하게
식사도 하고 누나와 매형을 볼 겸 동석하기로 했었다.
돈이 굳을라고 그랬던지 목사님도 주일을 준비하시느라 토요일은 바쁘다고 하셨고
시누이 부부도 회사 일이 바빠서 시간내기가 좀 그렇다고 하셨다.
그럼 딸 내외하고만 조촐하게 저녁을 먹으려고 했더니
딸도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고 난색을 표했다.
쩝....
식사대접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해 준다는데도 이리 바쁘니~~
섭섭해도 어쩌랴~
다음을 기약하고 그럼 미리 축하한다 딸아~~
그러고만 말았다.
막내가 많이 서운하겠다...ㅎㅎㅎㅎ
잔뜩 기대하는 눈치던데.
생일밥도 중요하지만 막내는 지하상가에서나 아울렛에서
요즘 유행하는 티셔츠나 남방 같은 간단한 옷가지를 하나 얻을 요량으로 더 기대하던 눈치였다.
절대로 조르거나 사 달라고는 안하는 아이다.
그냥...
\"엄마~~ 그런게 있던데 좋아보였어요....\"그러는 아이다.ㅎㅎㅎ
그래도..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하루를 지내다가 다른 선물을 사서 택배로 보내던지 나중에 오면 줄까?
고민을 좀 하다가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하나.
밥먹고 옷 사 주고 멋진 가방 사 주는 것도 좋겠지만 건강을 선물하자.
재산이야 잃으면 또 벌면 된다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다 잃는다는데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을 맞히는거야~
그 백신 가격이 만만치 않아 쉽게 맞아지지도 않을 터.
이 참에 그 비용을 생일 선물로 주면 평생 자궁경부암의 불안에서는 해방되지 않을까?
남편한테 이야기했더니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효과적인 선물이 될거라며 바로 딸아이의 통장으로 입금완료.
입금완료를 알리는 문자를 보냈더니 돌아 온 딸의 답신
\"감사합니다~딸내미 잘 되어서 꼭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히 주사 잘 맞을께요~~ㅎㅎㅎ\"
서운하지 않냐고 그랬더니 그저 고맙다고만했다.
이제 시집 간 딸 생일은 남편이 해 주게 놔 두시지 뭘 이런 걸 다....ㅎㅎㅎㅎ
그러면서 꼭 잘살아 드리겠으니 두고 보라네~~
근사한 식사가 무산된 이상 막내가 많이 섭섭해 할 것 같아
지난 번 집에 왔을 때 메고 온 가방을 보니 낡고 떨어져 있어서 가방을 하나 사 줬다.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에는
\"제가 존재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날
엄마아빠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나중에 가 뵐께요.ㅎㅎㅎ\"
이런 문자가 들어 왔었다.
참 많이도 힘들게 했던 큰 딸인데...
언제 이만큼 어른이 되어가는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나 큰 딸의 생일이 6월에 있어서
이젠 어느 날 좋은 날로 정해서 하루만 모여야겠다.
서로가 바쁜 사람들이니 잊지않고 기억해 주며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받는
소중한 날로 보내면 좋을 것 같다.
엄마아빠 생일하고 결혼기념일 그리고 어버이 날.
아이들이 어릴 때 부터 이 세 기념일은 절대로 잊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며 키운 이 엄마가 너무 속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