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독하게 맘 먹고 침대 아래 이불을 깔았다.
남편이 긴장하는 눈빛이 역력한데
모른 척, 담담하게 이불깔고 배개도 끌어 오고
흥!
누웠다.
그리고 이메일을 썼다.
나쁜 남자..
마누라가 좀 잘난 척 하면
남편이 장단 맞춰주면 어때
내가 놀러 간다는 것도 아니고, 돈 쓰는 일도 아니고
내 몸으로 봉사하고 내 힘으로 뭔가 좋은 일 해보고 싶은 건데
그렇게 내가 못 마땅하면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관심도 갖지 말고, 관여도 하지 말고, 도움도 주지 말고
옆집 아저씨처럼 그렇게 하길
나도 옆집 아줌마처럼 할 테니까
…………..
그리고 불을 껐는데
왜 이렇게 잠이 안 오냐
침대 위의 그도 자는 척 할 뿐
가끔 침 삼키는 목젖 소리가 고요한 산사의 목탁 소리만 하다.
이럴 땐 그저 수면제로 소주 한 잔 칵 먹어야 할텐데
어찌 어찌 잠이 들었다가도
겨우 한 시간 잤더니 눈이 딱 떠졌다.
옆이 허전하다.
게다가 그저께 본 영화 ‘추적자’ 장면
여자 20명을 이유없이 죽인 그넘의 장면이 떠오른다.
이불을 뒤집어 썼다.
숨막히고 더워서 다시 벗겼다.
다시 뒤집어 썼다.
다시 벗기며 생각했다.
“에유~ 그냥 침대 위로 올라갈까?”
뭐…. 좀 쪽팔리긴 하지만 ….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쉰 아홉 마리 …. 백 마리…
아웅~
영화 속 죽은 여자들이 마구 나타난다.
으아~ 나도 모르게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벌떡 일어나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래도 최소한 이불을 끌고 올라가면
내 마음의 간접 표현이 될 성 싶어서다.
그가 자다가 깜짝 놀라 내 자리를 만들어 준다.
햐~ 편안하다.
새끼발가락 하나 댔다간 봐라~
그런데 발가락이 닿았는지, 손가락이 닿았는지도 모르고
그리고 말없이 밥 먹고, 말 없이 일하고 난 오후 그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문제는... 영어 숙제다.
아, 내가 학교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
그 놈의 숙제 때문에…
다 이긴 싸움에서 질 조짐이 보이는 듯 했다.
‘이거 에세이 좀 도와 줘’
쪽지를 줬더니
‘여기 앉아! 가르쳐 줄 테니까 너가 이해하고 받아 써!’
한다.
‘그냥 적어 줘~ 다 아는 거야~’
알긴 뭘 알아, 죽어도 자존심을 살아가지고~
암튼 그게 오늘 했던 말의 전부…
해 준 숙제 가지고 학교 다녀와서 현관을 들어 서는 순간
빙긋 웃으며 내 자전거를 받아 들여 놓는 남편이 어찌나 반갑던지
나도 모르게 ‘학교 갔다 왔어’ 소릴 지를 뻔 했다.
휴~
큰 일 날뻔 했다.
전세가 기울긴 했어도
아직은 가망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