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21

[부부싸움]- 큰 일 날뻔 했다.


BY *콜라* 2010-05-28

어젯밤

독하게 맘 먹고 침대 아래 이불을 깔았다.

 

남편이 긴장하는 눈빛이 역력한데

모른 척, 담담하게 이불깔고 배개도 끌어 오고

흥!

누웠다.

 

그리고 이메일을 썼다.

 

나쁜 남자..

마누라가 좀 잘난 척 하면

남편이 장단 맞춰주면 어때

내가 놀러 간다는 것도 아니고, 돈 쓰는 일도 아니고

내 몸으로 봉사하고 내 힘으로 뭔가 좋은 일 해보고 싶은 건데

그렇게 내가 못 마땅하면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관심도 갖지 말고, 관여도 하지 말고, 도움도 주지 말고

옆집 아저씨처럼 그렇게 하길

나도 옆집 아줌마처럼 할 테니까

…………..

 

그리고 불을 껐는데 

왜 이렇게 잠이 안 오냐

침대 위의 그도 자는 척 할 뿐

가끔 침 삼키는 목젖 소리가 고요한 산사의 목탁 소리만 하다.

 

이럴 땐 그저 수면제로 소주 한 잔 칵 먹어야 할텐데 

어찌 어찌 잠이 들었다가도

겨우 한 시간 잤더니 눈이 딱 떠졌다.

 

옆이 허전하다.

게다가 그저께 본 영화 추적자 장면

여자 20명을 이유없이 죽인 그넘의 장면이 떠오른다.

 

이불을 뒤집어 썼다.

숨막히고 더워서 다시 벗겼다.

다시 뒤집어 썼다.

다시 벗기며 생각했다.

 

에유~ 그냥 침대 위로 올라갈까?

. 좀 쪽팔리긴 하지만 .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쉰 아홉 마리 . 백 마리

 

아웅~

영화 속 죽은 여자들이 마구 나타난다.

으아~ 나도 모르게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벌떡 일어나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래도 최소한 이불을 끌고 올라가면

내 마음의 간접 표현이 될 성 싶어서다.

 

그가 자다가 깜짝 놀라 내 자리를 만들어 준다.

~ 편안하다.

새끼발가락 하나 댔다간 봐라~ 

그런데 발가락이 닿았는지, 손가락이 닿았는지도 모르고 

아침 9까지 푹 늦잠을 잤다.

 

그리고 말없이 밥 먹고, 말 없이 일하고 난 오후 그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문제는... 영어 숙제다.

, 내가 학교에 갈 시간은 다가오고

그 놈의 숙제 때문에

다 이긴 싸움에서 질 조짐이 보이는 듯 했다.

 

이거 에세이 좀 도와 줘

쪽지를 줬더니

 

여기 앉아! 가르쳐 줄 테니까 너가 이해하고 받아 써!

한다.

 

그냥 적어 줘다 아는 거야~

 

알긴 뭘 알아, 죽어도 자존심을 살아가지고~

 

암튼 그게 오늘 했던 말의 전부

해 준 숙제 가지고 학교 다녀와서 현관을 들어 서는 순간

빙긋 웃으며 내 자전거를 받아 들여 놓는 남편이 어찌나 반갑던지

나도 모르게 학교 갔다 왔어 소릴 지를 뻔 했다.

 

~

큰 일 날뻔 했다.

 

전세가 기울긴 했어도

아직은 가망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