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아주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흔 다섯 아버지.
분명 연세로 치면 노인이지만 나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 노인이란 개념은 없다.
노인이란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초연할 수 있는 자리리라.
그러나 실상 평균수명이 많이 늘어서인지 아직 친구들의 아버지나 아버지의 친구 분들이나 대부분 정정하게 잘 살고 계신다.
그래서 더욱 더 내 아버지께 암이란 치명적인 병이 덮칠 줄은 짐작조차 못했다.
여든 넷, 여든 다섯.
아직 정정하신 우리 시부모님 연세다.
나를 초라하게 만들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사연은 접어두자.
어찌되었든 나는 결혼 후 줄곧 친정 부모님보다 시부모님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아왔다.
진심에서든, 의무에서든 어쨌든 너무도 확연하게 그렇게 살았다.
그러면서 속상한 적이 많았다.
시부모님을 우선할 수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내 부모님께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그렇게 마음 아프고 속상했다.
그래서 막연히 기대하고 믿었다.
시부모님 오래오래 사시고 우리 부모님도 그만큼만 오래 사시면 그래도 연세 차이만큼은 온전히 효도할 수 있으리라.
10년 정도의 세월은 내게 주어지리라.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를 속인 비겁한 기대였다.
누구나 알고 있을,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진실을 나라고 몰랐을까.
그래도 그것을 모르는 척, 불확실한 후일을 기약하며 효를 미루고 살았다.
그런데 네 분 중 우리 친정아버지께 가장 먼저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올 초 그 사실을 알고 내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의사로부터 최악의 상황을 통보받아서 더욱 참담했다.
하지만, 지금 3개월을 지나가고 있다.
항암효과도 좋다고 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암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
초기 항암효과는 뛰어나지만 곧 재발하고 다음에는 매우 부정적인 병.
하지만, 모든 병엔 예외가 있고 그 예외가 우리 아버지일 수도 있음을 우린 믿고 싶어 한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굴까?
내가 자식이기도 하고, 아내이기도 하고, 부모이기도 해서 난 그것을 알고 있다.
나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이 사랑해줄 분은 바로 부모님이시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내 아버지. 그 큰 사랑이 지금 희미해져 가고 있다.
처음 아버지의 병을 알고 통곡하고 통곡하고 절로 터지는 슬픔을 도무지 감출 길이 없었다.
그리고 마음이 독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할 수 있는 효도를 다하리라.
아무도 그것을 말릴 수 없으리라.
그러나 참 어이없게도 그 과정에서 나는 상처를 받아야했다.
여전히 눈치보고 절제해야 했다.
우리 4남매 중 나만이 그랬다.
처음 못난 자식은 끝까지 못났다.
그것들이 한이 될까.
아마 그럴 것이다.
기도 드렸다.
지금 내 맘 속에서 싹트고 있는 억울함, 분노, 이것들이 오래가지 않게 해 주소서.
두고두고 미움으로 남지 않게 해 주소서.
내가 사랑에 속하다면 그것이 될 것이다. 아니면 나는 미움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 불행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병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