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옥이긴 하지만 지은 지 20년 된 고택인 춘천 집은
겨울엔 여기 저기 새어드는 바람때문에
이불을 뒤집어 쓰지 않으면 어지간한 난방에도 코끝이 시렵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춘천 집 많이 춥죠. 감기 조심하세요\'하는 말이 주요 안부 인사다.
그렇게 몹시도 추웠던 기억 때문에 기온이 쌀쌀하다는 뉴스를 접하면
몸을 움츠리고 혼자 덩그마니 누워계실 엄니 생각에
온 종일 여기 저기서 엄니 모습을 만난다.
솔솔 김이 올라오는 무 국을 마주 하고 앉은 아침 식탁에서
또 출근 길 옷장을 열며....
엄니 황해도 사투리를 듣는다.
\"국물에 말아서 후루룩 후루룩 퍼 먹어라우~
젊을 땐 돌도 소화하는데 거~ 속이 든든해야 머리도 돌아가고 힘을 쓰디\"
몸 구석구석 때를 닦고 계시는 대중탕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마른 몸에서도
노인되면 하는 일 없이 몸에 때만 늘려 주잡스러워 진다며
살 한 점 없는 빈 몸에 연신 물을 끼얹던 엄니를 발견한다.
“나이 들수록 깔끔해야 하는 기야. 옷이든 뭐든 쓰지않는 물건은 죄다 아궁이에 불 때 버리고
싹 버려야 나 죽은 다음 자식 고생 덜 시키는 기야. 사람이 옷 없어 못 입는 거 아니고
명줄이 짧아 가진 옷 다 못 입고 죽는게지\"
잠자리에 들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침대 한 켠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드신 엄니가 또 계신다.
아버님 세상 떠나신 뒤, 장례식 끝나고 돌아 와 그렇게 홀로 잠든 어머니 모습을 보던 날
사람의 체온이 36.5도지만 온도계측이 불가한 부부만의 체온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꽤나 살가운 며느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버님의 빈자리는
자식도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 다는 걸 몰랐었다.
이젠 아버님을 잊어버릴 만 한 시간이 흘렀다고
잊지 못하시면 견딜만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버님과 만난 첫날밤의 웃음 한 조각조차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엄니는
행여 잊혀질까 밤마다 되새김질 하고 계신 듯 하다.
순면 뻣뻣한 이불이 벌쭉벌쭉 찬바람을 어깨 틈 사이로 통과시키던 지난 밤
이불을 당겨 남편 턱밑에 꼭꼭 눌러 덮어 준 다음
잠든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눈 코 입…... 광대뼈까지 엄마를 쏘옥 빼닮은 그. 아들의 모습에서 나는 또 엄니를 발견한다.
달팽이처럼 작게 움츠린 몸을 벽에 붙이고, 밤새 달려드는 관절염 통증보다 더한 외로움에
선잠 주무시고 계실 엄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그렇게 계시다....
어느 날 갑자기 ....
아버님이 그랬던 것처럼 ...
\'동서... 엄니가 돌아가셨어\' 형님 전화가 올 것만 같아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안돼..... 안돼…… 난 아직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했는데....\'
엄니! 싸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