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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마흔 셋.


BY 퐁퐁부인 2010-04-05

내가 중학교 이학년때였나.. 아주 인기있는 외화시리즈가 있었다. <가시나무새>라는...  거기 아주 잘생기고 젊은 신부님이 나오는데, 그래, 정말 근사하고 멋진 남자였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외화시리즈 <가시나무새>는 잘생기고 젊은 신부님과 손자뻘의 신부님을 사랑하게 된 여든이 넘은 호호백발의 노파다. 하얀 머리를 쪽진  노파의 늘어진 얼굴과, 힘겹게  팔걸이에 얹어놓은 앙상한 손은 온통 빈틈하나 없는 검버섯과 주름천지였다. 까만 드레스를 입고 흔들의자에 앉아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음성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몸이 늙었다고 가슴까지 식어버리는 건 아니야...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노파의 하얀 쪽진머리와 목끝까지 잠궈입은 까만색 드레스의 대비가 뚜렷이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어린 여자아이에게 노파의 식지않은 가슴은 적잖은 충격이었나보다.

우리 언니는 그랬단다. 스무살 때였는데, 마흔넘은 여자들은 신랑하고 잠도 안자는줄 알았단다. 마흔이 넘으면, 여자는 더이상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 되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나이 마흔이 넘고 쉰살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신랑하고 잠도 자고, 여전히 인간보다는 여자이고 싶더란다.

얼마전 미용실에 갔는데 말이다. 내 머리를 만지던 미용실 총각이 \"흰머리 하나 있는데 뽑아드릴까요?\" 한다. \"네에에에?\" 눈까지 휘둥굴리며 너무 심하게 놀라는 내 모습에 더 놀란 총각 왈. \"뭘 그렇게 놀라세요? 저도 있는데...\" 참고로 나는 나이에 비해 머리 색깔은 곱다. 작년엔가 하나 발견하고 일년만에 처음 발견한 흰머리라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나왔던 건데... 그래, 흰머리 하나쯤이야, 그냥 쑥 뽑아버리면 그만인데 뭐 그리 호들갑 떨 일도 아니지.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긴 했다. 근데... 나뿐눔... 지도 있는데 뭘 그리 놀라냐고? 지도 뭐 그리 쌩쌩한 총각은 아니두만, 싸모님은 그연세 먹어서 흰머리도 안날라고 그랬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쌩 날리는 놈의 파렴치한 작태를 보며 목구멍 속에서 강아지이름도 나오고 동전이름도 나오고... 하다가 픽 웃었다. 우리 언니는 여자나이 마흔이면 신랑하고 잠도 안자는 줄 알았다잖나.

하긴, 얼마전 아줌마들끼리 <무진기행>을 읽었는데, 주제와 상관없이 아줌마들다운 부분에 필이 꽂혀 아줌마들에 맞는 독서토론을 한 적이 있다. 주인공 남자가 무진이라는 도시로 가서 한 여자를 알게되고 사랑하게 되고 그여자와 속물인 아내와의 사이에서 방황하다 결국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비겁함으로 아내를 선택하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되먹지못한 스토리였는데, 누가 그런다. 일주일만에 많은 일도 벌이는 그눔 참 능력있는 놈이라고. 또 누가 그런다. 우리 신랑눔들도 믿을 수 없는 거라고. 그러자 또 누가 그런다. 사실, 나만 모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살찌고 푹 퍼지고, 나같은 여자만 여자라고 평생 바라보고 사는 남편이 불쌍하단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여유 부리게 해주고 싶단다. 웃었지만, 일리가 영 없는 말도 아니라며 하해와 같은 여자의 깊은 생각에 박수를 쳐주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말도 안되는 너그러움이라며 펄쩍 뛰는 무리가 있었다. 전자는 사십대 아줌마들이고 후자는 아직은 그래도 새파란 삼십대 여자들. 나? 나는 사십대지만, 아직도 꽃처럼 고와서 그래, 너 정도면 그럴 수 있어 하는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지만, 개거품물고 펄펄 뛰었다. 남편의 마음 속에 다른 여자가 들어간다는 것 절대 용납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사십대 아줌마들이 되묻는다. 진짜? 아직도 남편을 사랑한다고? 누군가 피식 웃는 것도 같았다.

여자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남자가 나이를 먹는 것과는 다른 그 무언가가 있다. 세상에 여자가 나밖에 없는듯 굴던 남편도 슬슬 다른 젊은 여자들에게 친절을 과하게 날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제 여자가 아니라 한사람의 당당한 인간이잖아! 강.아.지다. 여자나이 마흔 셋. 아직도 여자이고 싶다면, 주책일까? 마음에 여유가 덜 생긴걸까? 이기적인 걸까? 주제파악을 못하는 걸까? 뭐잉~ 황신혜도,  이영애도, 김희애도, 전인화도...여자잖어? 여자로 보이잖어? 기가 막힌다구? 그사람들하고 너하고 같으냐구? 몰라, 몰라, 몰라. 어쨋든 나도 그때 그 할머니를 이젠 완전히 이해하게 됐는걸.

몸이 늙었다고 가슴까지 식어버리는 것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