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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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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BY 그대향기 2010-02-22

 

오늘은 두 주만에 하루 쉬는 날이었다.

매주마다 쉬는게 아니라 격주로 쉬는 우리는 가능하면 볼 일들을 몰아서 봐야한다.

주일에는 동네할머니들과 예배가 있고 점심준비도 해야해서 평일에 쉬어야한다.

아침을 느즈막하게 먹고 자주 부산에서 시간을 잘 보내는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부산행.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병원 볼 일도 부산이라 가능하면 부산에서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는 편이다.

 

봄 옷이 어중간한 남편의 바지도 몇 벌 고르고 모처럼 의견 일치로 동물영화 하치 이야기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개 이야기인 영화까지 보는 여유를 누리고 눈물도 몇방울 찔금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었다.

봄 방학이라 기숙사에서 나와있던 아들이  도서관이 쉬는 날이라며 집에서 전화가 왔다.

들어 오는 길에 맛있는 거 좀 사달란다. 부산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영산으로 들어오면 되는데 아들 전화때문에

칠서로 빠져서 잘 아는 중국집에서 우리 부부도 저녁을 해결했고, 아들이 해 오라던 짜장곱배기를 면은 삶지 않고

그냥 포장하고 짜장만 따로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국도를 달리는데  어느 한 곳을 지나다가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나신 그 분들이 생각났다.

 

거의 10 여년 전의 일이었다.

우리 집에는 행사가 잦고 공사도 있어서 여러가지 포장지가 많이 나오는 관계로 고물수집을 하시는 분들이

혹시라도 돈 되는 고물이라도 있을까 해서  자주 들어온다.

길 가에서 보이는 창고라 오가며 마이크로 고물~~삽니다~~를 외치는 분들이 자주 들어오고

자기네들한테  서로 고물을 달라고 여러사람들이 친절한 웃음을 보이며 들어왔다.

그러나  그 날 그 분들은 그렇지 않았고 아주 선하게 생긴 모습으로 그냥 지나치다가

들러봤다며 혹시라도 고물이 생기면 전화 주시고 후하게 값을 쳐 드리겠다고 그 날은 그냥 돌아갔다.

누구나 우리집 박스나 공사하고 난 쇳덩이에 혹하곤 했는데 그분들은 너무나 신사적으로 운만 띄우고 돌아갔다.

젊은 부부였고 생김생김도 깔끔하고 험한 일을 할 사람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 점잖아서 남편은 그 명함을 잘 간수했다가는 박스가 좀 모이면 전화를 했었고

부피만 많았지  큰 돈이 안되는 종이는 그냥 가져 가라고도 했다. 

쇳덩이가 나오면  주방에 쓸 비누나 휴지 몇개만 받고 후히 드렸더니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왜 젊은 사람들이 고물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풀어 놓았다.

 

고물상을 하기 전에는 백화점에 납품하는 고급 그릇을 만드는 제법 큰 규모의 공장을 했는데 부도를 크게

맞으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지금은 남의 빈 터에 고물상이라도 하면서 밥벌이를 한다고 그랬다.

밑천이 딸려서 차도 큰 차를 사지 못하고 통장이나 모든 은행업무는 아예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고..

곱게 생긴 외모는 둘 다 같았고 남자나 여자나 둘의 모습이 너무 여리고 가냘펐다.

1톤 트럭으로 짐을 사러 동네방네 다녀봐도 손으로 모든 작업을 해야하니 무거운 짐들은 엄두도 못내고

폐업공장을 처리하는 곳으로 가야 제법 큰 돈을 만지는데 \"하이 카\" 라는 차가 없어서 마음 뿐이라고.

신용불량자로 찍혀서 은행대출은 꿈도 못 꾸는 일이라면서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외롭고 안타깝게 보이던지 우리 부부는 가슴이 아팠다.

그들을 언제봤다고 이리도 가족처럼 마음이 아프던지....

 

우리가 사업에 망하고 밑바닥을 쳐 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 젊은 부부의 안타까움이 우리 일 같았으니.

뭘로 도울 일이 있을지 궁리를 해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고 있던 그런 여러 날이 이어지고 있을 무렵.

어느 날 남편은 뜬금없이 나 빚쟁이 되었어..그런다.

무슨 일로????

나하고 상의없이 그렇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그 고물상 부부한테 거의 천만원이나 하는 중고 \"하이 카\"라는

쇠고물이나 박스뭉치를 들어 올리는  집게 차를 사 줬다고 그러는게 아닌가?

그것도 차를 사는데 대출해주는 은행에서 자기 이름으로  대출내서~~

새 차는 너무 비싸서 중고차였는데도 거의 천만원이나 하는 중장비를~~`

10 여년 전에 천만원은 제법 큰 돈이었는데 그걸 덜컥 해 주고 왔다네~~

허걱......

 

우리도 갚기 어려운 돈이었고 믿는 구석이라고는 그저 선하게 생긴 두 부부의 모습뿐인데

덜컥 대출 내 주고 돌아 온 남편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했다.

안 갚을 것 같지 않다나 어쨌다나?

고맙다고 몇번이나 인사를 했고 꼭 갚아낼 것이라며 너무나 고마워 하더라는 젊은 부부를 믿을 수 밖에.

떼 먹고 달아 난다면 발등 한번 찍히자며 우린 기다렸고 그 부부는 실망시키지 않고 다달이 그 날짜에

남편의 통장으로 돈을 입금 시켰고 그 차 덕분에 큰 공장에도 들어 가서 제법 벌이가 쏠쏠 하다고 행복해 했다.

그러면서 객지로 도망 나와서 이렇게 고마운 사람을 만나서 감사하다고 열심히 잘 살겠으니

지켜 봐 달라고도.....실망시키지 않겠노라고  그랬다.

우린 착하게 생긴 두 부부의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고 덩달아 우리가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애들도 얼마나 이쁘고 착하던지....우리가 필요한 쇠붙이가 있어도 그저 주려고하면 남편은 그러면 안된다며

얼른 얼른 빚 갚고 집도 사고 그래야 한다면서 그 값어치만큼 아이들한테 용돈으로 주고 오곤 했다.

 

그렇게 세월은 제법 흘렀고 다달이 통장으로 갚아야 할 돈이 잘 들어 오고 있던 어느 날

그 젊은 부인한테서 청천벽력같은 전화 한통화가 왔다.

\"저 00 집사람입니다....미안한데요....00 아빠가 오늘 돌아가셨습니다.

 고물 수거를 하고 돌아오다가 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했어요.............

 그래도 총무님....그 차값는 꼭 갚아드릴께요...............너무 감사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곧 갚아 드릴께요......고마웠습니다.....................\"

그 전활받고 우리 부부는 꼭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 차를 안 사 줬더라면 사고가 안 났을라나?

그냥 작은 차 몰고 박스나 사러 다니면서 적은 돈 벌면서 살았더라면 그 사람이 안 죽었을지도....

아...........................

이렇게 죄스럽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 어딨단 말인가?

 

남편의 사망소식을   알리면서도 그 차값 걱정말라던 부인.

전화를 받은 남편은 할 말을 잃고 그냥 넋나간 사람처럼 온 몸의 힘이 쭈욱 빠져 있었다.

그렇게 정말 그 부인은 남편의 장례식을 치루고 조의금 들어 온 것으로 차 값을 일시불로 다 갚았다.

고맙단 말을 몇번이나 하면서 그동안 살펴 주심을 잊지 않겠노라며 울먹이던 부인.

남편은 그 돈을 안 주면 대신 갚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는데 그 부인은 약속을 지켰고

고물상을 정리하고 대구 친정동네로 이사가는 날에도 전화를 했었다.

객지에서 너무 고맙게 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면서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동안 우리 부부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너무나 아팠고 고물상 간판만 봐도 울컥거렸었다.

 

오늘 그 고물상이 있던 골목을 지나오면서  그들도 떠나버렸지만 10 여년 전의 그 일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좋게 이어졌던 인연들이 이렇게도 안타깝게 끝나버려서 오래토록 슬픈 추억이 될 줄이야....

아마도 사망소식을 들었던 계절도 오늘처럼  봄날을 기다리던 겨울의 끝자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따스한 봄기운을 깨고 날아들었던 무겁고 아프고 서러웠던 소식.

그 부인의 피맺힌 절규가 때 이른 봄바람을 타고 찢어졌었다.

그래도 그래도 끝까지 책임을 다했고 아름다운 뒷모습으로 우릴 감동시켰던 그 부인이 애들이랑

어디서건 잘 살아주기를 바란다.

소식이라도 닿으면 다시한번 그 땐 우리가 더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미안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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