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많이 푸근해졌다.
여긴 남쪽이라 눈도 잘 오지 않았고 어제 그제 비만 좀 내렸다.
겨우내 메말랐던 밭작물이나 화초들이 땅 밑에서 부르르~~몸을 떨면서 일어날 준비를 할 것 같다.
마른 잎 사이로 장하게도 푸른 싹들이 삐죽~보인다.
내복도 없이 오리털 파카도 없이 알 몸으로 잘도 견디고 새생명을 밀어낸다.
털 옷에 털 조끼에 목도리에 버선까지 신고 으으으으~~
엄설을 떨며 오도방정을 떤 내가 부끄럽다.
봄날이 가까운가 보다.
오늘은 두 주만에 쉬는 휴일.
수련회 동안에는 쉬는 날도 건너 뛰지만
그렇다고 끝나고도 소급하여 더 쉬는 것도 없다.
날짜를 정해 두고 쉬는것이 아니라
바쁜 일이 없는 날 편할데로 정해서 하루만 쉬는 그런 제도다.
공적으로 손님들이 오신다거나 건물 개보수 공사가 있으면
다른 날로 쉬는 날을 정하면 된다.
늦은 아침을 먹고 막둥이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 앞에 내려 주고
삐죽삐죽 다 풀어지고 늘어진 파마머리가 들고 일어난 붕두난발을 미용실에서 커트 한 다음
머리를 감고 위이잉~~~드라이어로 깔끔하게 정리를 하니 아직은 봐 줄만하다.ㅋㅋ
부산에 가서 남편 볼일을 잠시 본 다음에는
큰 딸 시댁에 보내 드릴 설 명절 선물을 좀 샀다.
아이들은 아직 외국에 나가 있지만 그래도 사돈이신데
아이들하고 상관없이 어른들한테 명절 선물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가장 편한 걸로 준비했다.
설 명절에 누구나 먹는 떡국을 끓일 육수 낼 곰거리.
일부러 김해까지 들어가서 도축장에서 직접 고르고 포장을 감독했다.
십년이 훨씬 넘도록 거래 한 식육점에서 사돈댁에 드릴 거라면서
특별히 국물이 잘 우러나는 것으로 주문하고 포장까지 하는데
식육점 사장님도 우리가 장인장모라는게 믿어지지가 않는다나 어쨌다나?ㅎㅎㅎ
사태에 뒷다리, 등뼈와 골반뼈, 갈비뼈까지 골고루 한상자를
보기 좋게 포장해서 사돈 내외분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미리 전화를 드려 지나는 길에 잠깐 인사만 하고 가겠노라 했기에
따끈한 차 한잔으로 마무리 하려고 서둘러 일어나는데
기어이 저녁을 사 주시겠다며 우릴 붙잡으셨다.
인사만 드리고 포장된 상자만 드리고 나오려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이 먼 곳까지 오셔서 그냥 가시면 어쩌시냐며 일어서지도 못하게 하셨다.
서둘러 횟집에 전화를 넣으시고는 얼른 가자시며 앞장 서시는데
우린 선물을 드리러 간게 아니라 대접을 받으러 간 기분이라 사양을 하고 싶었지만
우리보다 십년 이상은 더 어른들이신데 그럴수도 없어서 그냥 횟집으로 가는 수 밖에.
깔끔한 횟집에서 아이들 이야기며 살아가시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데
참 말씀도 조용조용하게 하시고 나이 어린 우리 부부를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음식을 직접 앞접시에 들어 주시고 일일이 불편한가 아닌가를 살피시는데 황송했다.
푸짐한 회에 곁들이 음식까지 좋은 분들과 함께 하는 식사는 더 맛있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안사돈께서 내 손에 뭘 꼬옥 쥐어 주셨다.
신사임당을 참 좋아하시는데 같이 좋아하는 사람을 가지자시며...ㅎㅎㅎ
큰 액수가 아니지만 정으로 받아달라며 꼭 친정언니가 동생한테 하시듯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그렇게 주시니 나도 언니 고마워요~~
그런 인사를 하면서 받아 들고는 두 사돈네가 즐겁게 웃었다.
인사를 드리고 곰거리 상자와 떡이며 건강식품을 내려 드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까 쥐어 주신 돈을 확인하는데......한장이 아니질 않나?
꼭 세일즈맨 같으다.ㅋㅋㅋㅋㅋ
명절 선물을 해 드려서 기분 좋고 답례 선물로 현금을 받아서 더 기분 좋은 휴일~~
철없는 아이들 나오면 잘 봐 주십사 인사를 드린건데 오히려 부모인 내가 더 보호받는 듯 하다.
이래저래 기분 좋은 오늘은 사돈을 만난 것이 아니라 친정언니를 만난 기분이랄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