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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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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넘어 또 고개


BY 그대향기 2010-01-14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모래 알갱이 보다 더 숱한 쌀 알들을 씻고 또 씻어서

밥을 하고 밥을 푸고  배를 불렸고 배고픔을 해소시켰다.

 

어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된 후 부터 올 해로 17 년 째.

몇 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떠나보내면서

단 며칠간이었지만 그들의 배고픔을 담당한 사람으로써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생활을 계속할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2 박 3 일..또는 3 박 4 일.

 

하나의 예약된 수련회를 마치고

또 새로운 팀을 맞아들여 수련회를 담당하면서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주방의 불을 밝히는

어쩌면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되어

가장 늦게 주방을 빠져 나가는 책임자로써의

무게와 막중한 의무감이 내 삶을 적당히 긴장하게 했다.

 

봉사자들보다 한 발이라도 더 일찍 주방에 나가야 한다는 중압감은

때로는 새벽잠을 설치게도 했고

밤을 꼴딱 세우는 하얀 밤도 지내야했다.

혹시나 수련회 일정에 늦은 식사가 준비될까 봐

긴장하면서 잠을 청하다보면

만사가 다 늦고 느긋할 거 같은 미련한 성격인데도

자명종이 울리기 훨~씬 전에 잠이 깨고야 만다.

 

선잠을 자고 신새벽에 일어나 창 밖이 먹물같이 새까만 걸 보고

거실 벽에 걸린 보름달 같은 둥그런~벽시계를 올려다보면 아직 일어날 시간이 많이 남았다.

부족한 잠을 도로 채울까도 생각해 보지만 혹시나 깜빡 자는 새벽 잠에 늦잠을 잘까 봐 포기하고

일찌감치 군둥내나는 입을 헹구며 양치질에 세수를 하고 머리까지 손질을 하곤 했다.

그래도 작지만 한 단체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써의 카리스마를 창조(?)하기 위해

기초화장을 하고 최대한 옅은 화장을 하기로 작정하고

밑그림이 전혀 안 밭쳐주는 유치원생 그림그리기를 시작한다.

삐둘빼뚤....아무리 조심해서 그려도 언제나 언발란스인  윗눈썹

단추구멍보다 조금은 더 큰 눈동자가 또록또록해 보이게 하려고 석탄같은 까만색 아이라인을  좀 칠하고

그것도 눈꼬리가 사알짝 위로 치켜올라가게.

그래야 눈이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고 똑똑해보이라고. 푸훗~~

허여멀건한 내 입술보다  조금 더 분홍색나는 루즈로 생기를 불어 넣어주면 유치원생 그림공부는 끝.

 

기본 예의라 생각하고 아주 옅은 화장을 하고 주방을 지키려 노력했다.

한 여름 폭염만 아니면 가능하면 기초적인 예의는 차린다.

워낙에 중성적인 얼굴이라 그나마도 안 하면 초등학생들은 영락없이 아저씨라 하는 바람에...ㅎㅎㅎ

최대한 생물학적인 여자임을 입증하려고 하지만 늘 무리수가 따른다.

개성으로 봐주는게 아니라 아이들 눈에는 분명히 남자로 보인다는게 신기하다.

아니면 진짜로 내가 중성인지....

궁금하면 그 당장 말을 뱉아 놓고 보는 맹랑한 녀석들때문에 파안대소~

 

새 해 시작하고 곧 바로 들어간 수련회가 400명씩 두 팀.

다음 주에 또 한팀이 있어 연일 청소며 부식준비로 바쁜 생활이지만

한팀  끝나면 또 다음 팀이 이어져서 들어오는 이 생활이 꼭 고개넘기 경주만 같다,.

종착지는 없지만 넘지않으면 안되는 끝없는 고개넘기.

언제든지 내가 멈춰서고 싶으면 멈춰서도 되는..그러나 그 마음이 쉬 정해지지 않을 것 같은....

고개만 넘어서면 희망이 보였었고 고개만 넘어가면 작지만 소원하던 뭔가는 하나씩 이루어졌기에

아무리 악천후의  폭풍우 속 고개였더라도 한 고개 넘어 또 한 고개.

남편의 건강을 빌면서 한 고개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또 한 고개

부모님들의 안녕하심과 건강을 위해서 또 한 고개씩.

모시는 할머니들 편안하게 천국가게 해 주십사고 한 고개.

나와 나를 아는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또 또 한 고개.....

 

햇수로 17 년째 넘은 크고 작은 고개들.

이제는 낯익고 정겨운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아이들도 웬만큼 자랐고

남편이나 나나  그 분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편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날마다 주어진 삶에 선하게 순응하면서 힘 다하는 시간까지 봉사하리라 다짐한다.

건강이 우선 뒷바침 해 줘야겠지만 지금처럼만 지켜진다면

새 해에도 고개넘기는 무난하지 않을까싶다.

가끔은 숨이 턱에 찰 만큼 힘들게 넘게되더라도 그 너머에 있을

작은 집에 따스한 햇살과 편안한 휴식이 있기에

한걸음 또 한걸음...황소걸음으로 느리지만 힘차게 내 딛는다.

걸음마다에... 고개마다에... 소망을 담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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