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을 하얗게 뜬눈으로 보내고
새벽을 맞았는데도 아침은 멀기만 했다.
내가 쉬는 숨소리도 온 방을 울리던 밤을 지나고
마셔도 마셔도 줄지 않는 허여멀건한 물이 괴물 같다.
나라에서 해 주는 무료정기검진은 해 둔 상태지만
대장암과 위암 검진을 하기 위해 일반 내과에 예약을 해 둔 오늘
덤덤하려고... 아무 일도 아닌 척 하기로 했지만
솔직히 혼자서 속앓이를 엄청 많이 했었다.
친정 아버지께서도 위암과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고
네 오빠 중에서 막내 오빠가 2 년 전에 직장암으로 수술을 하고 지금 요양 중이기에
가족력이 있을 수 있는 암이라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오늘 하기로 했다.
아버지의 골격을 가장 많이 닮은 나로서는 아버지의 염세주의적이었던
생황태도와 식습관까지도 철저히 배척하다시피 했었다.
한쪽 시력을 잃으시면서 세상을 비관하셨고 식생활까지도 무분별하셨던 아버지의 노후는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이었고 뒤 늦은 병의 발견은 치료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드셨기에
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철저하게 안 닮으려고 무섭게 조심을 했었다.
낙관적인 시선과 긍정적 사고방식을 갖자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력을 했었고
막내오빠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을 닮지 않겠노라며 일부러라도 헐렁하게~`살고자 노력을 했었다.
밖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병을 키울 수 있지만 스스로를 틀에 가두어서 엄하게하면서 생기는
예민한 성격이 또한 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읽고는
좀 덜 완벽하려고 좀은 미완성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나 자신한테 합리화를 시키며 살고자 했다.
가끔은 선천적으로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나도 모르게 나올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기 까지 했으니...ㅎㅎㅎ
딸이 아버지를 닮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건데도 난 무서웠고 두렵기까지 했다.
죽음 그 자체보다는 아버지가 겪고 가셨던 그 끔찍한 고통이 두려웠으니까.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까지 홀로 감당하시며 엄마나 다른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엄마에게 해 드릴 수 있었던 아버지로서의 마지막 배려셨겠지만 아버지의 참을성은 대단하셨다.
가히 살인적인 고통이 엄습하고 최후를 알리게 하는 극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아버지는 엄마가 아버지의 대소변을 수습하지 않으시게 몇분간씩 까무러치시면서도 혼자 힘으로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까지 걸어가셨고 고통으로 신음을 하시면서도 우리까지 못 들어오게 하셨다.
병원에서는 마지막을 가족 곁에서 보내게 하시느라 퇴원을 하게 하셨는데
아마도 아버지는 중동에 나가 계셨던 두 오빠들을 기다리시느라 집으로 돌아오시기를 더 희망하셨던 것이다.
요양병원이 요즘처럼 흔했던 25 년전도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시지 않으려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 봤던 나로서는
이번 정밀검사가 결코 만만한 검사가 아니었다.
조심하느라고 했다지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 어찌 알까???
음식과 사고방식을 좋게 하느라고는 했지만
밖에서 나는 상처는 스스로 알기도 쉽고 치료도 간단하지만
내장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속수무책이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굴 원망하고 말고가 아니라 막내 오빠가 직장암의 발병을 알렸을 때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커다란 바윗덩이가 내 등 위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는 천둥번개까지 우르륵~쾅~쾅~우르륵~쾅~쾅~쾅~~.....
그러한 일들이 있었기에 평소에 조심을 한다고는 했지만
대변이 조금만 가늘어도 덜컥~겁이 났었고
속이 조금만 더부룩 해도 소화가 안 되나??..싶어서 더럭 겁부터 먹었었다.
오빠에 이어 나까지야????
남편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서 전전긍긍하던 요 몇 개월이 소리없는 고문 같았다.
대변을 보고 난 후에 변기에 물을 내리기 전에 버릇처럼 돌아보고 확인하기까지.
조금만 묽거나 가늘어도 호~~옥~~~시~~???
그런 날이면 하루 온 종일 불안했고 찜찜했었다.
남아있는 아이들의 학업....우리들의 노후....
은퇴 후에 지을 전원주택의 설계도며 남편의 홀로서기 등.....
당면한 현실이 엄청난 부담이 되어 괴롭혔고
이대로 끝나버릴 것 같은 삶이 아쉬움과 회한으로 다가 와 숨이 막힐 듯 했다.
보험이야 일찌기 들어 놨다지만 그깟 보험금이 뭐 대수냐구?
만약에..만약에..생각하기도 끔찍한 현실이 내 앞에 나타난다면??
수술과 그 후유증 그리고 항암치료의 무지막지만 고통
직장문제와 요양까지 복잡하고 얽히는 문제들로 두통이 올 지경이었다.
과연 생존률이 몇년이나 연장 될건지.....
며칠 전에 예약을 하고 오늘 새벽부터 마셔대는 그 이상한 물약은
정말로 세상에 태어나고 제일 맛이 없는 물 맛 이었다.
10 분 간격으로 다 마시고 오라던 4리터의 물.
물고문이 이런 걸 거야...배는 빵빵한데도 자꾸만 마셔야 하는 이 이상하고 느끼한 물맛이라니??
차라리 냉수 물 맛 그 자체라면 좋았을걸...
꼭 맹물에 조미료만 탄 덜쩍지근한 물 맛.
새벽 6시 부터 마시기 시작한 물이 서너잔을 마시고 나니 신호가 온다 와~`
화장실로 직행하기를 십수번.
물 마시기를 또 십수번..으흐흐흐흐흐...
그런 지독한 화장실 출입은 난생 처음이었다.
옷 올리기가 무섭게 또 뒤에 신호가 오면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에 앉기 바쁘게 좍..좍....
그런 지경인데 병원 대기실에서 어찌 그 큰 일을 감당한단 말인지..
간호사언니는 병원에 와서 그 일을 처리하라니~`ㅎㅎ
비데가 설치된 집에서 하는데도 하도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밑이 헐 지경인데
아무 병원이나 비데가 다 설치된 것도 아닐테고 참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소식이 오면 단 몇초만에 변기에 앉아야했다.
아예 화장실 앞에다 의자를 갖다 두고 두시간을 넘게 그 난리 아닌 난리를 끝내고 드디어 병원.
미리 예약을 해 뒀기에 또 한번만 더 화장실을 가 보라고 간호사가 일러줬고
화장실에서 건더기(?) 는 아예 없는 노란색의 물만 좍~좍~ 쏟아 낸 걸 보더니 진찰실로 데려갔다.
입고 간 바지와 팬티를 다 벗고 뒷부분이 잘려 나가고 재미있게 틔여진 진찰용 바지를 입고
링거를 꽂고 기다리는데 복부부분에 따끈한 매트를 올려주고 잠시만 기다리라 그랬다.
진찰실 침대 위에서 보이지 않은 기도를 혼자서 얼마나 했던지.
게으름부리고 간절하지 못했던 기도가 농축적으로 마구마구 쏟아지는데 부끄러웠다.
평소에 더 간절히 더 감사하며 기도드릴걸.....
아직은....아직은...할일이 많이 남았는데.....
검사시간이 30~40 분 정도로 제법 걸리기에 외래 환자를 좀 더 진찰하고 난 뒤 전문의가 들어 오실거라고.
그러고 기다리기를 이십여 분.
드디어 간호사가 수면제를 링거 바늘에 꽂아준다.
\"자아~~들어 갑니다~~\"
하나 둘..셋....백하나..백 두울~~~
백오십까지는 정확하게 셌는데 그 다음은.....진찰실 형광등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새우등처럼 등을 구부리고 옆으로 누운 자세로 두 다리는 가슴팍께로 접어서 있었는데
희미하게 정신이 들고 보니 벌써 회복실이었다.
항문으로 들어 간다던 검사카메라와 입으로 들어 간다던 위내시경의 감각도 없었다.
그냥 잠시 정신을 잃었다는 느낌만 있을 뿐
고통은 전혀 없었고 약간 어지럼증만 있었다.
조금 안정을 취하고 원장실로 안내되었고 내 사진들이 있는 컴퓨터 앞.
갑자기 사지의 힘이 빠지고 가슴이 쿵쿵 소리를 내고 빨리 뛰기 시작했다.
저 안의 사진에 내 삶과 죽음이 엇갈린다 싶으니 차라리 하지말걸....
이 고통을 만들지말걸......
삶도 죽음도 내 능력이 아니건만 스스로 강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공존하는 숨막히는 공간.
어느 새 내 뒤에 와서 기다리는 남편의 긴장된 시선.
가만히 내 어깨 위에 올려 놓던 남편의 가늘게 떨리던 손길.
아직도 좀 어질거리는 머릿속이 빠개질 듯이 복잡하다.
만약에..만약에....나까지 가족력에 묶인다면????
그 짧은 순간이 왜 그리도 길고 무섭고 무겁던지....
설마가 현실이 아니기만을 그 순간 가슴 터질 듯이 간절하게 빌었었다.
탁탁탁..화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큰 괴물의 발자욱 찍는 소리 같았고
사형집행을 언도하는 재판정의 망치소리 같이 느껴졌다.
원장님의 설명이 시작되고 사진이 화면에 크게 뜨는데
아.....아......
위 내시경으로 찍은 위벽은 너무나 깨끗했고 식도와 기타 주변까지 잡티 하나없이 맑았고
대장과 소장까지 아주 양호한 상태로 흠 잡을 때가 없다고 하셨다.
마치 선홍색이나 분홍의 꽃 같다는 느낌이 정확할까?
크고 작은 주름들이 연결 된 밝고 깨끗한 내 장기들의 사진들.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한 곳도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그러는데
기쁨보다는 온 몸의 맥이 다 빠져나가는 허탈함은 무슨 일이래?
긴장하고 맘 조렸던 순간이 아무 일 없는 안도감으로 풀어지니 그냥 주저 앉고 싶었다.
용종도 하나없이 아주 깨끗한 상태라서 남편도 놀랐단다.
어쩌면 이 나이에 그렇게 깨끗하냐고...
원장님한테 고맙다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겨울 눈바람이 왜 그리도 따사롭던지....
과식은 최대한 하지 않고 자극성이 있는 음식을 거의 안 먹는 식습관을 하는 나로선
음식으로 인한 질병은 거의 안 하는 편이지만 그놈의 가족력이 사람을 얼마나 약하게 하던지.
남편이나 아이들도 엄마의 식습관은 철저하다고까지 했으니까 조심은 많이 하는 편이었다.
남편이 아들한테 엄마가 그런 검사를 한다고 그랬더니
걱정을 많이 하더라며 문자라도 보내 주라고 그랬다.
이제 겨우 투닥거리면서 떠듬 떠듬 보내기 시작하는 문자로
엄마 검사 무사히 잘 했고 이상이 없는 걸로 나왔다고 하니 아들의 답이 걸작이었다.
\"당연하지요~엄마의 식습관으로 이상이 생기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요~~축하드립니다~~ㅎㅎ\"
감사할 조건이 이보다 더 큰게 어디 있을까?.
건강이 없다면 그 무엇을 계획할 수 있을런지.
오늘까지 건강을 지키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주신 건강으로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만들어 내는
진정 행복한 아내로 엄마로 주변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앞으로도 더욱 조심하고 잘 건사해서 덤처럼 느껴지는 남은 삶에서
나로인해 걱정하는 가족이나 이웃이 없도록 하고 행복한 웃음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를 이런 기쁜 일로 마무리하게 되어 무엇보다도 행복하다.
에세이 방 모든 님들의 가정에도 행복한 일들이 가득한 연말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