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정말 나를 힘들게 했다.
남들이 즐겨보는 연속극도 못 보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 이름도 모른다 사람들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이상한 여자로 여긴다. 아니 그렇게 살아왔다.
길거리 모퉁이에 앉아 김밥을 말고 어묵을 꿰며 영어 단어를 외웠다.
헌데 왜? 그리 어려운지?
찬바람이 부는 겨울날 꽃피는 봄날 세월은 참으로 많은 날들이 지나가는데 합격이란 단어는 왜? 그리도 나하고 멀어지는지?
내 나이 마흔살에도 오십살에도 내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고작이었다.
남들은 모르리라 학력에 컴플렉스를...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할때 학부모 학력난에 적어야할 초등학교 졸업이란 초라함
인구조사와서 학교는 어느학교 나왔어요? 물을때 얼마나 서럽고 울었는지? 모른다.
학력을 업그레드 시키려고 나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
헌데 시험에 운은 언제나 나를 비켜갔다.
시간만 나면 책을 펴들고 공부를 하는데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지 시험보면 또 낙빵이고 그랬다.
길거리 장사는 늘 그랬다.
높은 사람들이 방문 할때면 단속반이 나와서 장사를 못하게 했다.
선거때는 나에도 와서 악수를 청하고 웃던 얼굴도 높은 자리에 앉으면 난 장사를 못했다.
그때 생각 한게 공부는 나중에 하고 차 운전을 배워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단속 나와도 차를 운전하면 되니까.
그렇게 거리장사를 하려면 운전이 필수라는걸 뼈져리게 느끼고 시작한 운전면허 도전는 5년동안 긴시간을 투자하여 면허증을 땄다,
운전 면허를 따던날 난 엉엉 울었다.
\"시험아 너가 날피해 달아나도 나는 너를 붙잡으리라. 그리고 합격이란 단어를 붙잡으리라.\"
그러고 시작한 공부 3년만에 국어과목 한과목을 합격했다.
8과목을 합격해야 졸업인데 한과목 합격도 얼마나 감지덕지 고마웠는지?
그해 8월 시험에서 또 3과목을 합격한것이다
이제 4과목만 합격하면 졸업이구나 일년을 기다려 다음해에 시험을 보니 국사 한과목 합격했다.
그렇게 3과목으로 줄어들었는데 법이 바뀌어서 한과목이 줄어들어서 두 과목만 봐도 된다고 교육청에서 말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다.
수학과 영어만 보면 난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게 된다는 생각에 삶이 고단한줄 몰랐다.
답글 주신님들 고맙습니다.
댓글 달줄몰라 고마움을 여기에 표현합니다.
오늘도 승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