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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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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눈을


BY 선물 2009-12-04

내 신체부위 중 가장 건강하고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던 곳은 눈이었다.

내 눈은 참으로 밝아서 자신이 가진 기능을 충분히 수행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

조금씩 눈이 어두워짐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 나이 마흔 다섯.

주위의 친구들에게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노안현상을 보면서도 아직 내겐 먼 일이리라 생각했었는데.

 

눈이 가장 건강하고 젊은 부위라면 내 신체부위 중 가장 빠른 노화현상은 머리카락이다.

양친 모두 빨리 머리가 희어지셨는데 역시 유전법칙은 피해갈 수 없는 법인지 내 머리도 빨리 희어졌다.

좀 보기 싫더라도 염색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 거라고 평소 생각했었는데 그 정도가 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보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추하고 초라해 보이는 것이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한 마디로 더러워 보일 정도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얼굴은 아직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편은 아닌지라 오히려 그 부조화가 눈에 더 띄게 만들었다.

 

급기야 1년 전부터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사람이 달라보였다.

깔끔하고 생기 있어 보였다.

근데 염색 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동네에서 가장 싸게 염색하는 곳에서 했는데도 만 원짜리가 두 장이나 빠져나갔다.

게다가 크게 야한 생각을 하는 편이 아닌데도 내 머리는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지 금세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흰머리가 우후죽순 자라났다.

그러다보니 염색이 된 곳과 흑백의 차이가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나서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염색한지 한 달 정도 지나자마자 일어난 현상이다.

한 달에 한번 염색하기엔 솔직히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편이다.

그래서 할 줄도 모르지만 용기를 내어 그래도 좀 좋다는 염색약을 사서 우선 보이는 부분만 살짝 살짝 염색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십여 차례 부분염색을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눈이 침침해지면서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며칠 전 전단지를 읽고 있는 내 손이 전단지를 눈에서 먼 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보이지 않으면 가까이로 가져오는 것이 정상일 텐데 그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런 현상이 노안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염색을 하면 시력이 나빠진다더니 그 좋던 내 눈도 그것을 피하진 못했나보았다.

 

흰 머리가 그 자랑스러워하던 시력을 망가뜨린 것이다.

눈이 침침해지니 참 불편하다.

 

눈이 좋을 땐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특별히 좋은지를 몰랐었다.

그러나 막상 밝은 눈을 잃고 보니 그동안 내가 누린 밝은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알겠다.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어디 눈 하나뿐이겠는가.

내가 지금 당연하다 생각하며 귀한 줄 모르고 고마운 줄 모르면서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기어이 불편해지고 망가져서야 귀하고 감사한 것을 깨닫는다면 나의 현재는 언제나 좋은 것이라곤 없는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다.

 

아, 부디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충분한 행복을 깨달아야 할 텐데.

그래야 지금 이 순간이라는 시간을 행복하다 누리며 보낼 텐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행복할 일이라곤 없다는 생각에 속상해하고 억울해 하는 이 시간들은,,,

어쩌면 행복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고 싶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아닐까??

 

 

 

  <글은 제게 참으로 많은 위로를 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고백컨대 저는 진실로 글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글이 있어 견디어 낸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매 순간 글은 아주 강력하게 저를 끌어당깁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글이 제게 사치가 아닐까 하는 맘이 들었습니다.

글을 부여잡고 있을 만큼 제 처지가 한가한가 하는 맘이 들게끔 만드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결국 마음과는 달리 글과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글로써 위로받고 글에 의지할 수 있을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불쑥 한 번씩 고개 내밀었다가 다시 숨게 되는 저 자신이 좀 바보 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위의 글처럼 내가 좀 더 씩씩하게 생각하고 용기를 낸다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도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맘도 생깁니다.

 

여전히 한결같은 맘으로 글을 통해 용기를 얻고 글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는 글벗들을 보면서 사랑과 존경을 갖게 됩니다.

 

예전에 끊임없이 글을 부여잡던 시간 속에 있던 저를 돌아보면서 지금 이 시간의 제가 그 때의 저를 장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훗날의 제가 지금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게 그런 격려를 보낼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일단은 딱 그 만큼 만이라도 지혜로워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이 조금 이르다면 또 좀 더 기다려야겠지요.

다그치지 않고 조심조심 달래면서 아끼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사랑해주고 싶습니다.

저라도 저를 귀하게 생각해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