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을 심어 놓고
약을 치지 않은 탓이리라
온통 구멍이 쑹쑹 뜷린 케일 잎만 남았다.
뒤집어 보니 파란 애벌레가 꼬무락꼬무락
케일 잎사귀를 갉아 먹고 있다.
베추를 몇 포기 심어 놓고도
약을 뿌리지 않고 며칠을 두고 보면
줄기조차 다 갉아 먹고 없다.....
그 또한 새파란 애벌레다.
어떤 나뭇가지에는 흡사 나뭇가지처럼 생긴
갈색벌레가 옴스락옴스락 기어다닌다.
그냥 어설프게 보면 나뭇가진데
자세히 눈여겨 보면 움직이는게 보인다.
몸통 옆선에 동그란 점박이가 있는.....
파란 배추를 갉아 먹어서 파랄까?
파랗게 몸을 변하게 해서 파란잎을 먹을까?
말 못하고 땅으로만 기어다니는 애벌레도
살아남기 위한 보호색으로 위장을 하고
여차하면 몸에서 역한 냄새까지 풍기면서
몸을 지키려는 엄청난 노력을 하며 사는데
오늘을 사는 나는???
주변하고의 화합에서는 몇점이며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엄마는?
남편의 입장에서 보는 사랑스런 아내의 자리는 과연????...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의 약속이나
하고자 했던 일들에서의 만족도는 몇점??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내가 버려야했고 그냥 묵인해야만 했던
숱한 자존심과 아픔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 사십대를 마지막 보내는 이 가을 날에
여느 해의 마지막보다는 더 상념에 젖어 든다.
오십대를 지천명이라 했다지?
하늘의 뜻을 안다는...
당장 나 자신의 생각도 잘 모르는 판국에
어찌 하늘의 뜻까지 알랴마는
그 무엇보다도 나로 인해 주변이 고통당하지 않는
물처럼 순하게 적응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큰 바윗덩이처럼 물살의 길을 뒤 바꾸던가
물길을 흐트려 놓는 복잡하고 힘든 자리보다는
자잘한 강자갈처럼 이쁘게 쓰임받는 사람이고 싶다.
깊고도 깊은 바다 수면 아래 있다가
지나가는 배를 난파하게 하는 뽀족하고 거친 암초는 아니고 싶다.
누군가 나로 인해 웃음 짓게 하는
푸근하고 넉넉한 그릇이고 싶고
누가 내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을 때
화내기를 먼저 하기 보다는 이해의 마음을 먼저 키우는
그런 지천명을 맞이하고 싶다.
주변을 당황하게 만드는 튀는 그 무엇보다
함께한 그 자리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함께해서 즐거움을 더 줄 수 있는 그런 여유롭고
유머와 재치를 겸하는 넉넉한 오십대를 맞고싶다.
경제적으로야 좀 덜 여유롭더라도 마음만은 세상을 다 안을 수 있는
넓고도 맑은 탁하지 않은 오십대를 희망한다.
노력할 일이고 이루어야 할 일이지 싶다.
어영부영 스쳐 지나가게 하기엔 내게 주어진 날들이
보석보다 더 값지지 않을까?
보석이야 돈으로 사면 된다지만 시간이야 어디 그런가?
한번 스치고나면 다시는 두번이란 기회는 없는 법인데...
저당잡히지도 못하고
은행에 적금 붓듯이 그렇게 모아두지도 못하는 시간
이왕이면 아름답고 그럴싸~하게 살아내야지 않을까?
봄 날 화단에 핀 크고 작은 꽃들이 제 몫들의
화사하고 분명하게 이쁜 것처럼 나에게 맞는 아름다음으로
도둑처럼 왔다가는 시간들을 덜 아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