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대만의 음주운전 상습범의 얼굴 공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54

<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연재11-동일시 identification


BY 사랑의 빛 2009-11-21

동일시 identification

   

인간에게는 누구나 ‘동일시’라는 기제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어떠어떠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공부를 잘한다.’ ‘나는 노래를 잘한다.’ ‘나는 착하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대통령이다.’ ‘나는 유명 연예인이다.’ 등등, 이런 것들이 다 동일시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으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스스로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한테 말합니다.

“너는 그것도 노래라고 부르고 있냐?”

그러면 그 사람은 갑자기 마음에 충격을 받고 얼굴 표정이 일그러질 것입니다.

또 지금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있는 사람한테 누군가가 그를 몰라보고 무례한 짓을 했습니다.

“아니,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이런 데다 함부로 휴지를 버리면 어떡해?”

그러면 그는 스스로 ‘대통령인 나한테 감히…….’ 하면서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전에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습니다.

 

나는 테니스를 오랫동안 쳐왔고 또 제법 치기 때문에 나 스스로 ‘나는 테니스를 잘 친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테니스를 잘 못 치는 친구와 단식 시합을 했는데, 거기에서 어이없게 그만 져 버린 것입니다.

‘아, 내가 저런 녀석한테 지다니! 말도 안 돼!’

그 때 내 자존심의 상처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생각해 봅시다. 동일시로 인한 상처라는 게 당연한 것인지, 아니면 터무니없는 것인지 따져 봅시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노래를 잘하던 사람도 노래를 더 잘하는 사람들 무리에 들어가면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대통령도 그 자리를 떠나서 농사를 지으면 농부가 될 수 있고, 가난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해서 돈을 벌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한때의 모습이지 그 사람의 영원한 모습은 아닙니다.

테니스 경기란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항상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목욕탕에 가서 발가벗겨 놓으면 다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게 우리의 본질입니다. 그 외의 모든 동일시는 자라면서 경험을 통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 모든 경험의 기억을 지금 당장 다 망각한다면 우리 모두는 그냥 ‘살아 있음(생명)’ 그 자체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실존 그 자체입니다. 그게 우리의 본모습입니다. 거기 어디에 ‘노래 잘함’과 ‘대통령’과 ‘공부 잘함’과 ‘착함’과 ‘유명 연예인’과 ‘가난함’과 ‘테니스 잘함’이 있습니까? 당치도 않은 얘기입니다.

그것은 모두 경험을 통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허상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바로 그 허상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버드 대학 출신이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하버드 대학과 동일시해 버리면 그 때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누군가가 말합니다.

“하버드대 출신들은 너무 이기적이야!”

그러면 그는 대번에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사실 상처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하버드대가 이름을 바꿀 수도 있다.

* 자신이 하버드대를 들어가지 않고 다른 대학을 들어갈 수도 있다.

* 그가 기억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아무런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본질로 착각한 데에서 벌어진 현상들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살아 있음(생명)’ 그 자체이지 경험이 아닙니다. 이것을 모르고 살면 우리는 매일매일 마음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고)’라는 것은 양파와 같습니다. 양파의 껍질을 벗겨 보십시오! 벗기고 벗기다가 궁극에 이르면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나(에고)’라는 경험의 집합체도 사람에 대한 욕망, 돈에 대한 욕망, 물질에 대한 욕망, 지위에 대한 욕망, 명예에 대한 욕망, 지식에 대한 욕망 등 갖가지 욕망이 수없이 많은 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 욕망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가다 보면 궁극에 가서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는 사랑(생명)만이 굽이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생명)’을 발견하는 길입니다.

그 과정은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자신의 근원지로 찾아가는 것과 흡사합니다. 언제부턴가 잃어버리게 된 우리의 생명의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도, 길들여진 ‘나’를 거슬러서 움직일 수 있는 헤엄침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마음속의 모든 욕망을 이해하고 그 껍질을 벗겨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본질인 ‘사랑(생명)’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 그 자체를 터득하면 생명이 주인이 되어 ‘나’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의 주인 노릇을 해왔기 때문에 그것을 길들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꾸준히 밀고 나가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유와 사랑과 조화 그 자체인 자연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린애처럼 늘 싱싱하고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자유자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과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마치 파도를 마음껏 즐기면서 서핑(surfing)을 하는 서퍼(surfer)처럼 우리는 삶을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사랑)의 삶’입니다.

  --<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