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댁의 방문이 잦은 초반 이었다.
여성의 인권도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며느리는 시댁에서는 부엌대기다.
21세기이지만 여전히 며느리는 죄인 시츄에이션이다.
명절이다 뭐다 모이면 나도 거실에 앉아서 어른들과 오손도손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우리 신랑처럼 친정집에서 대자로 뻗어누워도 장모가
바쳐주는 상을 나도 시댁에서 받고 싶다.
80년에 태어난 나같은 세대들은 모두 마찬가지 겠지만 가정에서는
남녀 차별없이 똑같은 교육 받으며 아니 오히려 딸에게 정성을 들였던
시대를 지나왔던 세대인지라 이런 처사가 몹시나 불편하다.
또래의 직장 동료나 친구들은 의례 모이면 결혼 안한 미혼들은
하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남자친구 집에만 갔다오면 설겆이며 잡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이유없이 화가나서 일주일은 남자친구와
냉전을 벌인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견디면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을거 같아
싱글로 지낸다는 친구들도 꾀나 있다.
여자는 이래저래 남자 친구 집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과일깍고 설겆이해야
참한 여자로 통하나보다.
결혼하고 며느리 역할 한다는 것은 정말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식모취급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인정하는 듯하다.
아들 딸 둘다 가진 부모들은 본인 딸에게는 갖은 정성과 평등의식을 심어주면서도
막상 아들이 결혼해서 며느리가 생기면 딸한테 했던 태도와는 별개로 며느리에게는
시집살이를 시키고 부려먹으려 한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런 모순속에서 견디는 것이 힘들기도 했었던 신혼 초반이었다.
그러던 명절날 나는 후식으로 과일을 깎고 있었다.
그런데 과일 썰기 무섭게 시어머니가
\"니는 이걸 알아야 한다. 우리 애는 과일깎아서 절대 그냥 먹으라고 놔둔적 없다
항상 집어서 입에 넣어줘야 먹는다. 티비보거나 게임할때 항상 입에다 물려줘야한다.\"
옆에있던 시외할머니는 한 술 더떠서
\"그래 항상 과일 깍으면 남편 한테 먹어라 던져 주지만 말고 꼭 집어서 넣어줘야 한다.
내가 4살때까지 키우면서 버릇이 잘못들어서 그렇지만 어찌할끼고? 그래 해줘야 니 남편
과일먹고 건강도 챙겨지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귀하게 키운 자식이니 알아서 챙겨 모셔야 하는건가?
나또한 매번 친정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받으며 편하게 살아온 몸이다.
그 순간부터 나를 몸종 다루듯 한다는 생각을 씻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시댁에가면 어른들 앞에서는 과일을 깍아 남편이 삼키기가 무섭게
과일을 물려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