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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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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편안히 잠드세요, 엄마, 아버지


BY 돼지맘 2009-11-02

늘 엄마를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한번도 제가 남들처럼 친정을 오가며 살아보지 못했기에 엄마는 늘 안스러워 하셨습니다..

명절에도 제대로 마음편히 다녀보지 못했기에 엄마 아버지 생신에도 늘 쫒기듯이 다녔습니다..

물론 엄마가 중환자실에 실려가셔도,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셔도 제겐 한번도 연락을 안하셨습니다..

힘들게 층층시하 시집살이 하는 제가 늘 안스러워 마음아파하셨습니다..

 

늘 뒤늦게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그리고 퇴원을 하셔야 전화를 하십니다..

죽는줄 알았다고, 그렇게  119에 실려가시기를 두세달에 한번씩 몇년, 뒤늦게 알았습니다..

2007년 추석이틀앞두고 또 중환자실로 실려가셨습니다.  추석음식준비를 하고 있는데 작은 올캐에게 계속 문자가 오더군요 내일 집에 올수 있냐고,,

나는 힘들것 같다고 나 기다리지 말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근데 올캐는 계속 왔으면 좋겠다고, 꼭 오라고 , 그래서 아냐, 가기 힘들거야 , 일요일날 갈께 했더니, 안된다고 하면서 엄마가 자꾸 큰고모를 찾는다고 하더군요 , 그래서 물었죠, 왜 찾냐고, 올캐는 그제서야 어머니 지금 중환자실에 계시는데 자꾸 큰고모를 찾아요, 오시면 얘기하려고 했는데...하면서 꼭 오세요...하고는 문자끝..

 

불안한 마음에 시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친정엘 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은  혼자 삐져서 처가집안다닌지 십여년, 계속 저와 아이들만 일년에 서너번 정도 다녔죠,

 

엄마는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이 살은 하나도 없이 얼마나 앓으셨는지 얼굴은 제 주먹이 더 커 보였습니다..

엄마는 저를 보자 마자 막 우시더군요, 너 못보고 죽는줄 알았다고,  손가락 중에 제일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늘 걱정을 제일 많이 드리며 살아왔으니까요, 엄마를 않고 얼마나 울었는지, 한참을 울다가 다시 쳐다보니 모습이 살아계신게 신기할 정도로 뼈와 가죽만 남았더군요,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드리고 손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래도 너를 봐서 다행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 퇴원하면 내가 치고 모시고 가서 이빨 내가 다 해 줄께 엄마 빨리 낳아 그래야 여행도 다니지 했더니 엄마는 나는 이빨 못해 하셨어요 , 왜냐고 했더니 저혈압에다 피가 멈추지않아 않된다고 그럼 이가 하나도 없이 어떻게 먹어 했더니, 괞잖다고 하셨어요, 아무리 봐도 괞찮은 모습은 하나도 없는데, 뭐가 괞찮다고 하시는건지, 슬펐습니다.. 아무것도 해드린게 없는데,  마음조차도 편하게 해드린적 없는데 이렇게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는데 얼굴한번 보여드린걸로 흐믓해 하시니까 너무 죄송했습니다...

엄마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면회시간이 끝나 친정으로 가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 또한 몰골이 보기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에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또한번의 면회를 하고 시댁으로 올라왔는데 이틀후 엄마는 갑자기 혼수상태로 인해 돌아가시고 난 참많이 울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이 울어볼날이 또 없을것처럼 울고 또 울고 며칠을

아니 지금까지 엄마만 생각하면 울지 않고는 엄마께 죄송스런맘을 사죄할길이 없습니다. 임종도 지켜드리지 못하고 뭐가 그리 힘든 시집살이라고 몇일 엄마곁을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그리고 일년이 지나고 육개월쯤 더지났을까 지난 6월  엄마를 보내시고 견디기 힘드셨는지 아버지는 당신손으로 당신의  명을 마감하셨습니다..

 

엄마만큼 아버지를 위하고 보살피지 못하다보니 원망도 투정도 많이 부리시더니 끝내 견디시지 못하고 힘든삶을 마감하셨습니다.. 당신에 아들 딸들보고 죄스런맘을 어떻게 갚고 살라고 그렇게 떠나셨는지 저엮시 아버지를 원망하는 맘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정성껏 마련한 묘도 아니고 깔끔한 납골당도 아닌 흘러가면 그만인 계곡에 뿌려드렸습니다.. 원망과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그러나 이제 죄책감에서 원망과 분노에서 두분을 보내 드려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