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human relation
사실 인간의 고통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제일 많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항목에서는 주로 나의 연애 체험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볼까 합니다.
내가 사랑에 한참 빠져 있을 때의 얘기입니다. 물론 그녀도 나를 매우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한 날이 되어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서 약속 장소에 찾아갔습니다. 아직 그녀는 와 있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에 그녀가 들어왔습니다.
‘아이구, 맙소사!’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온 것입니다.
나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저녁식사를 하고, 술 한 잔을 간단히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
“난 친구들과 할 얘기가 있으니까 먼저 가!”
‘오, 이런 제길!’
나는 무척 기분이 나빴습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왔는데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무슨 일이며, 또 나를 보내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겠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기분 나빴던 건 그 원인이 그녀한테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 있는 것이다. 내가 기분 나쁘게 된 것은, 내가 원하는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녀를 만나서 달콤한 시간을 가질 거라 믿었던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녀가 친구들을 데리고 나오는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녀와의 달콤한 시간을 상상한 건 실재가 아니라 미래의 허상일 뿐이다. 오로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실존만이 진실이다. 그 외의 것은 다 허상이다. 이런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마음의 허상만을 믿고 기대했던 내 마음속의 ‘나(에고)’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렇게 아픔이 일어나는 마음을 관조하면서 아픔의 이유를 이해하고 나자 어느새 마음의 아픔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아픔을 느끼고 있는 ‘나’를 지켜보는 깨어 있는 의식, 곧 생명이 곧 우리의 본질입니다. 아픔은 단지 욕망을 품고 갔던 내 마음속의 ‘나’가 느끼는 것입니다.
좀 더 실감나는 얘기를 해 봅시다.
만약 여러분이 몇 년 동안 사귀던 사랑하는 애인이 여러분을 버리고 딴 사람한테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가슴은 어떨까요?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공부도 안 되고, 술이나 마시면서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 발버둥 칠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 자살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겪어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알 것입니다.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 죽고만 싶은 그 심정.
그러나 그렇다고 여러분이 죽지는 않습니다. 생명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가슴만이 아플 뿐입니다.
여기서 그 아픔의 이유를 분석해 봅시다.
만약에 여러분이 그를 사귀지 않았더라면 과연 가슴이 아플까요? 여러분의 애인이 바로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이 그 순간 모든 기억을 상실한다면 과연 여러분의 가슴이 아플까요?
“에이, 바보 같은 소리 작작 해. 내 애인도 아닌데 왜 아프겠어?”
그렇습니다.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가슴이 아픈 것은 여러분이 그를 사귀는 동안 가지게 된 여러 가지 경험, 주로 달콤한 경험, 그 경험에 대한 애착이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경험은 과거요 기억입니다. 그것이 아프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고, 죽을 것 같은 것은 마음에 한정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여전히 여러분을 감싸고 있습니다. 하늘의 구름은 떠나가도 하늘은 그대로 존재하듯, 여러분의 영원한 실체인 ‘생명’은 거뜬히 살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구름도 흘러가고 변해 갑니다. 그것을 영원한 것인 양 붙잡고 있지 마십시오!
자신의 실체인 ‘생명’을 자각하면 그 아픔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코 술이나 마약, 죽음으로 도피하지 마십시오! 그 아픔을 관조하면서 인내하십시오! 곧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말입니다. 단순한 유행가 속의 가사가 아닙니다.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말도 없이 쌍꺼풀 수술을 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쌍꺼풀이 질락 말락 했는데, 수술을 한 것입니다.
내가 어느 날 그녀를 만났는데, 만나고 있는 동안 나는 내내 다른 여자와 앉아 있는 듯한 생소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니야! 이 여자는 전에 내가 사귀던 여자가 아니야!’
나는 괴로웠습니다. 나는 그녀의 수술하기 전의 이미지를 좋아해서 사랑했는데 그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리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또 아픔이 일어나고 있는 내 마음을 관조하면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그녀에 대한 이미지, 곧 경험(과거, 기억)이 현재의 실존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그녀가 눈 수술을 한 뒤에 처음으로 만났다면 나한테 아무런 고통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기억, 그것은 과거요 이미 죽은 것이다. 현재의 진실은 지금의 모습, 그러니까 쌍꺼풀 한 그녀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전의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에서 없애 버리고 그녀의 새로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과정은 나에게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그 과정을 통해 그녀의 과거의 이미지에 대한 ‘나(에고)’의 집착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과거로부터 해방된 것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우리의 사랑을 나 스스로가 일방적으로 끝냈던 첫 이별의 때였습니다.
나는 서울로 차를 몰면서 그녀를 생각하면서 즐겨 들었던 음악 속에 묻혀 그녀와의 이별의 아픔을 삭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가슴 졸이며 속 태우며, 기쁨과 슬픔, 그리움과 아쉬움, 미움과 분노, 용서와 연민 등의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버텨온 소중한 시간들을,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너뜨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온통 무너지면서 그 틈새의 끝도 알 수 없는 심연으로부터 10여 년이 넘도록 삭여지지 못한 슬픔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눈물이 흘렀습니다. 두 뺨을 타고 흘렀습니다. 나는 마음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 텅 빈 한 가운데에 그 동안 뭉쳐 있었던 어떤 에너지가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속의 ‘나(에고)’였습니다. 그녀에 대한 집착의 덩어리가 녹는 것이었습니다.
아픔과 함께 환희 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더 이상 그녀와의 달콤한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아픔(이것은 ‘나’가 느끼는 것임)과 함께, 더 이상 사랑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환희(이것은 ‘생명’이 느끼는 것임)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정말 인생은 역설로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계속 내 마음을 관조했습니다. 내 마음속은 아픔과 환희의 느낌이 엇갈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관조하고 있는 나의 깨어 있는 의식인 ‘생명’은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살아 있음(생명)’은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단지 마음만이 아플 뿐이었습니다. <아픔>은 마음속에 있고, 그 아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의식은 따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의식은 아무런 아픔이 없었습니다. 단지 마음속에만 아픔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나는 아주 평온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나의 마음속은 마치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황량하게 변해 버렸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고요하고 적막했습니다. 절대 고독의 상태, 텅 비어 있는 상태. 나는 그 순간 나 자신의 본질인 ‘생명’을 언뜻 볼 수 있었습니다.
<관조>와 <이해>와 <인내>의 방법을 통하여 나는 거듭났습니다.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아픔의 원인은 바로 나의 그녀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경험(과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고)’입니다.
생명은 순수현재만을 삽니다. 생명은 변화 그 자체라서 한시도 과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치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동물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결코 과거의 흔적이 없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슬픔은 그 때뿐, 다음날은 또 생생하게 활동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을 보십시오! 자식이 죽으면 몇 달, 아니면 몇 년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은 과거로 현재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과거(경험)는 죽은 것입니다. 과거로 살지 마십시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과거로 삽니다. 돈을 100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과거입니다. 100억을 가진 사람이 현재 편안하다면 그 편안함의 원인도 과거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 과거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100억이 몽땅 날아가 버리면 그의 과거도 왕창 날아가 버려 과거에 의지하여 살고 있던 그는 의지할 곳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자살까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해 매일매일 죽으십시오! 그래야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날 수 있습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법입니다. 결코 좌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에게는 영원한 에너지인 ‘생명(사랑)’이라는 파워가 있지 않습니까!
애인이 떠나갔다면 아픔 속에 이별을 고하십시오! 여러분을 떠날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시련 속에서도 여러분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일찌감치 떠난 것을 기뻐하십시오!
--<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