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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구멍가게


BY 봉자 2009-10-30

이 글을 쓰는 봉자는,

소도시 변두리 구멍가게 무급 종업원 겸 사장입지요. 

풀방구리같은 뽀글 머리에다 전국민의 수련복(개량한복)인

물 빠진 바지 위에 목 둘레가 헐거워진 티 하나 걸치고 있으면

손바닥만한 가게 대비 아무리 높게 잡아도 종업원이지

결코 사장 티는 나지 않는다며  지인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가장 사장 티가 쪼그라드는 때란

지근 거리의 대형 마트에서 전략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지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가게에서 빈 입을 쩝쩝거리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다가도 

담배 한 갑 사러오는 손님 앞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헤실바실거려지는,

사장도 종업원도 아닌 오롯이 구멍가게 아지매일 때입니다.

하여간, 이 밥벌이 터에 드나드는 손님일랑
거개가 동네사람이거나 고개 너머 노동자들이고 보면,
쥔이나 손님이나 도낑, 개낑이라
껌 하나만 사가도 
송혜교, 장동건 보다 더  예뻐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몸에 밴 장사속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 봉자는 인근에 사는 고딩 몇 놈을 모아 
논술을 가르치던 얼치기 과외 선생이었습니다만

가르치는 게 시원찮았던 지 학생은 늘지 않고
쪽 수가 늘지 않으니, 막말로 돈이 되지 않더란 말씀이지요.

처음 구멍가게를 한답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러놓았더니
여전히 논술을 가르치던 한 선생이 그럽디다.
\"언니가  가게 귀퉁이에서 파 다듬고 앉았는 거 상상이 안가.\" 
그때 봉자가 대꾸하기를,

\"상상은 뭐하러, 좀 있다 <오리지널 라이브 다큐멘터리>로 보거라!\" 했지요.

그녀의 상상을 채우듯

오늘도 가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파를 다듬고 있으니
서른 안팎의 청년이 술을 사러옵니다. 
밤낮으로 들락거리는 걸 보면, 직장은 없는듯 싶고요...

\"오늘 딱 하루만요, 낼은 꼭 갚을게요, 네?\"
봉자 앞에서 자꾸 몸을 낮추는 그 청년, 
요즘따라 외상술이 잦아 은근히 걱정이 되지만 
젊은 날을 술기운으로 버텨야하는 
청년 백수 속은 오죽하겠나 싶어 애써 웃는 낯을 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백수와 외상은 요긴하게 짝패를 이루는 고로, 

적은 이문에 목을 매는 구멍가게 장삿속은 좀 접어둬야 겠습니다.

설령, 떼인다 한들 서로 없이 사는 입장을 살펴서라도
쓰린 속을 달래야지 하기에
이노무 구멍가게 말아 드시고 나면 뭐 먹고 살까 살짝 고민이 되긴 합니다..

저 멀리, 서녘 하늘에 어둔 구름이 남은 햇살과 함께 물크러져 있네요.
온전히 제 빛깔을 내지 못하는 게 민초들의 하루살이와 닮아 있어

마음 한켠이 싸아 해집니다.

허나, 하늘은 먼 거리지만 우리는 항상 내일 날씨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시야를 좀 더 낮춰 바라보니,

건너 편 공중에 
부지런히 건물 올리는 크레인이 손에 잡힐 듯 걸려 있네요. 

사람마다 걱정이 태반이라 희망은 적을 성 싶고 
희망 또한 저 하늘처럼 아득해 보이지만 
젖 먹던 힘 다해 뛰다 보면 결국 
우리가 닿을 곳은 저 크레인일 겁니다. 

하늘 아래 산다는 엄연한 사실, 
넘어지면 허공이 아니라 땅을 짚어야 일어설 수 있듯이... 
쓸데 없는 오지랖이 아니라면 
그 청년도 가시적인 거리에서 일거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변두리 하찮은 구멍가게에서 서로가 옹색해지는 외상도 덜겸, 
일터로 가기 위해 눈을 뜨는 아침이
그 청년에게 올 것이라 희망하는 저녁입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봉자한테도 담배 팔고 껌 팔아

단 1초 망설임 없이  호기롭게 외상 주는 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