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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할머니의 사랑(4)---이별연습


BY 동요 2009-10-04

생각하면 아주머니와 우리가족은 서로 원하는 부분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 자모회일, 직장일, 집안일등 어느 하나도 포기못하고 동동 걸음친 나에게

도우미가 갖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보다 시간적인 여유였습니다.

나도 시간이 없는데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까지 바쁜 사람이어서

그의 시간을 조금 더 얻어내는데 내가 미안해 해야하는 사람이면 며칠 도움은 받을 수 있겠으나

오래도록 인연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중요했습니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 단지 내가 좀 편해보려고 도우미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직업을 가져 어린 귀공이의 보육 문제 때문에 생각한 것이니만큼

타인의 도움을 얻는 것이 물질적으로 부담으로 다가오면 마음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져 오랫동안 귀공이를 돌봐주게 된 날

계약한 시간 초과분에 대해 분 초를 따져가며 보너스라는 명목으로 철저하게 계산되어져야 하는 경우라면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내가 원했던 가장 중요한 것은 심성이었습니다.

소중한 내 가족을 나를 도와 보조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이 있는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내 가족의 보금자리 가장 한가운데에 내가 없는 시간동안 있어야 하니

무엇이든 맡겨도 될 믿을만한 사람이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고맙게도 아주머니는 내가 원한 이상의 조건 모두를 갖추고 계셨습니다.

 

기다리는 가족이 없으니 시간의 여유가 많아 내가 바쁜 날이면 우리집에서 주무실 수도 있었고

이른 새벽이나 한 밤중에도 내가 부탁하면 언제든 달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따져 물질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니 내가 드리는 많지않은 돈에도 고마워 하셨지요.

다른 집에 비하면 아주머니의 수고로움 절반정도도 안되는 돈만 달라하셨고

늦게 가신다고 추가분을 받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손꼽았던 마지막 가장 중요한 조건, 따뜻한 마음씨까지 갖고 계셨습니다.

아주머니를 이모할머니처럼 좋아하고 따르는 귀공이 얼굴을 보면

어린 아이를 두고 일을 하러 나가는 엄마의 발걸음은 너무도 가벼웠습니다.

 

하지만 관계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욕심만으로 이루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아마도 아주머니 쪽에서 원하던 모습을 우리 가족이 갖고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이 없었던 아주머니가 원한 것은 다소 부산스럽기까지 한 아이들의 재잘거림,

병아리 처럼 아주머니 뒤를 쫓아다닌 귀공이의 모습 이런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아주머니와 함께 살 수는 없는 법.

딸이 대학을 입학하면서 나는 아주머니와의 이별을 계획했습니다.

귀공이도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니 조금 자랐고

큰 딸이 엄마를 조금만 도와주면 우리 가족끼리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무엇보다 크게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도우미 아주머니의 도움을 계속 받고 있는게

분수에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먼저 내 의견을 말하고 모두 서운하지만 그렇게 하자는 걸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유치원 가방 받아주고 씻어주고 닦아주며 길렀던 어린 귀공이만

아주머니와 헤어지게 되었다니 우울한 얼굴빛이었지요.

 

어느 날 아주머니께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서운한 마음이었지만 그동안 감사했다고 이젠 큰 딸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딸의 도움도 받아가며

우리끼리 우리집 일을 해결해 보겠다고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귀공이 옆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가족 중 누구보다 깊은 정이 든 귀공이와 아주머니가 이별식을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밤....

나도 잠이 오지 않아 늦게까지 이거저거 가르치는 아이들 수업 자료도 만들고 글도 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요.

한참 있다 주방쪽을 나가보니 아주머니가 이거저거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멸치 속을 다듬어 비닐봉지에 일일히 담고, 마늘을 까서 찧어 봉지에 담고, 냉장고 정리하고,

씽크대 구석구석 닦고  다리미질을 하고....아주머니는 새벽 2시가 되고 3시가 되어도 주무시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시집간 딸집에 온 친정엄마처럼 밤잠을 주무시지 않고 그렇게 일을 하셨습니다.

바쁜 내가 미처 손이 가지 않을 일들을 조금이라도 해놓고 떠나시려는 마음이었지요.

 

주무시라도 해도 괜찮다고 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를 보고 방으로 들어오는데 눈에서 눈물이 마구 흘렀습니다.

도저히...헤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고정직이 아닌 일일도우미는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부른다고 너무나 힘들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우리 집을 떠나도 뭔가 일을 하실텐데

아주머니에게 너무도 버거운 일들이 닥치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차라리 내가 다른 데 좀 덜쓰고 조금 더 벌고 아주머니 계속 오시라고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훌쩍였던 표시 안 내고 아무렇지도 안은 듯 아주머니께 말했습니다.

그냥 어제 말했던 거...없었던 얘기로 하자고요.. 

아무래도 아주머니 안계시면 너무 힘들거 같다고요..

활짝 웃으시며 아주머니는 가장 먼저 귀공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귀공이의 얼굴에도 행복한 웃음이 피어올랐지요.

 

그 하루 밤 이별 연습 동안 훔쳐보았던 아주머니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마음속에 벅찬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의 행복이 얼마나 벅찬 것임을

나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평생을 맞벌이를 했어도 아내의 힘듦을 배려해 숫가락 하나 씻을 줄 모르는 냉정한 남편을 만난 설움을 달래주라고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나에게 우리 아주머니를 수호천사로 보내주셨나보다 생각하였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아주머니는 내 마음 속에서 진정한 가족이 되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