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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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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BY 그대향기 2009-09-26

 

새 운동화를 한 켤레 샀다.

오래 망설이고 벼르다가 어젯밤 공부를 마치고

두 주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데리러 나간 길에서 드디어 산 운동화.

지난 어버이 날에 둘째가 워킹화 사라고 준 돈을 꽁꽁 감춰뒀다가

이걸 살까? 저걸 살까?

아들이 들어가는 쇼핑사이트나 홈쇼핑 전단지

거리의 신발가게등.....

 

둘째가 번 돈이라 그런지 함부로 뭘 사기가 그랬다.

어버이날에 뭘 선물 해  드릴까 전화를 했을 때

남편은 향수를 원해서 꽤 값나가는 것으로 받았었고

나는 건강에 유익한 걸로 사 달라는 말만 던졌지

딱히 뭘 하겠다는 정확한 물건은 이야기 못하고 있다가

운동할 때도 전문 신발이 몸에 좋다는 이야길 듣고는

이왕이면 엄마한테 좋은 신발 한 켤레만 사 달라고 그랬었다.

 

그런데 그 전문화라는게 허...걱....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었다.

웬만한 가죽구두 가격보다도 더 비싸질 않는가??.....

말을 던져 놓고 너무 미안해서 다른걸로 사 달라고 취소를 했는데

그래도 둘째는 엄마가 그런 운동화 엄마 돈으로는 안 사 신을 거 같으시다며

거금을 입금시켜 주고는 반드시 다른 곳에는 쓰지 말고 운동화를 사랬다.

차일피일......

이런 저런 일이 반복되고 크고 작은 행사가 이어지면서

운동 할 시간을 빼기도 어려웠고

이 핑계 저 핑계를 혼자서 생각하며 게으름을 합리화시켰다.

뭐...오늘은 손님들이 오셨으니까 바빴잖아...

어제도 어디어디 청소하고 자잘한 일들이 많았지 아마?....

 

사람은 참 편리한 뇌 구조를 가진 동물인가 보다.

자신한테 불리한 조건들은 가능한 한 멀리 내 던지고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에게 덜 미안한 마음으로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채택하니 말이다.ㅋㅋ

그게 결국은 자신을 갉아 먹고 나태하게 만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요지조리 미꾸라지 통발 빠져 나가듯이 잘도 빠져 나간다.

 

가을이 시작되면서는 행사도 없고 날씨도 좋아서

더 이상은 핑계를 대지 않기로 하고 과감하게 아침 잠을 내 쫓았다.

새벽 4시 50 분에 울리는 알람을 더 이상은 이불 밑으로 숨기지 않고

한 손으로 꾸..욱..눌림과 동시에 이불을 들추고 일어난다.

따스한 체온으로 덥혀진 얇은 이불 자락이 날 휘감고 유혹을 해도

대두인  내 머리 모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메모리폼 베개의 포근함에도

더는 잡히지 않으려고 얼른 침대 옆에 붙은  세면장으로 들어 간다.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밤 새 굳게 다물고 잤던 입 속의 구린내를

녹차향이 나는 치약을 뭍힌 칫솔로 양치질을 하면서 말끔히 뽀드득 씻어내고

메듀사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물 뭍힌 손가락 빗으로 이리저리 쓸어내린다.

 

그런 다음 서둘러서 간단한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고고싱~~

새벽기도를 마치고 곧장 산으로 올라간다.

할머니들 아침 식사 시간 전에 한 시간 정도의 시간여유가 있어서

산에 오르지 않는 날엔 집의 꽃들을 돌본다던지 잡초를 뽑기도 하는데

그런 일만 하다보니 몸이 너무 늘어지는 느낌이라

아침에 기를 좀 불어 넣어야 하겠기에 드디어 산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에 신었던 낡은 운동화는 그야말로 떨이패션,

신발가게 계절상품 정리할 때 헐값에 한 켤레 장만했던 건데

아직 굽이 좀 낡긴 해도 신을만 해서 그냥저냥 끌고 다녔다.

딸이 나가기 전에 엄마 운동화 꼭 사 신으시라고 이르고 간 것도 있고

나도 솔직히 좋은 운동화를 좀 사 신어 보고 싶어졌다.

 

웬 허영심인지 아들 운동화를 사 주면서 놀라고 떨리던 가슴을

내게도 좀 그리 해 보고 싶은 엉뚱한 생각이 발동되어

나도 좀 좋은 운동화 신고 한번 걸어 보자구 뭐...ㅎㅎㅎ

맨날 허드렛 플라스틱으로 된 신발이나 신고

앞치마나 두르고 떨떨 거리고 다니니 그런거 안 좋아하냐구?

천만에 만만에.....

좋은 신 보면 아~~저거 신으면 참 편하고 폼까지 나겠다~~

멋진 옷이 쇼윈도우에 걸려 있으면 저런 옷 입으면 참 근사하겠다~`

입이 떡~~벌어질 만큼 고가의 멋진 핸드백이 매장에 전시돼 있으면

근사한 옷에 근사한 신발 신고 저 핸드백 들고 나가면 정말 멋쟁이 같겠구나...

하오나.....허영은 금물.

 

뱁새가 황새 따라 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정도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예 죽음으로까지 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마른 침만

한두번 꿀꺽~ 삼키고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 치부해 버렸다.

동그라미가 몇갠지...원산지가 어느 나란지...디자이너는 누군지....

그 어려운 암호문 같은 길고도 복잡한  브렌드는 난 몰라요~~

오늘 날까지 모르고 살았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지만 신발은 하나 사고 싶었다.

그렇다고 동그라미가 여섯개도 아니고 다섯개가 갓 넘어가는 가격이지만

내게는 무리한 가격이었고 벅찬 지출이어서 안 사고 못 산 신발을

드디어...흐흐흐흐흐흐흐...

딸 덕에 사 신고 오늘 새벽 산행을 하는데

발걸음이 저절로 산 정상을  향해서 날 인도하는 것 같았다.

 

발걸음도 가볍게~~

누가 날 안 쳐다보나~~

누가 내 새 신발 좀 봐 주지~~

아무도 없는 시골 산자락을 돌고 돌면서 피씩~~웃음을 흘렸다.

이 산중에 누가 아침일찍 운동하러 나온다고....

산굽이를 돌고 돌아 한시간 가량을 운동하고 내려 오는 길은

등줄기에 적당하게 땀도 베여 나오고 폐부 깊숙히 들이마신

신선한 아침 공기로 해서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경사도가 45 도는 족히 됨직한 제법 가파른 산이어서

올라 갈 때에는 숨이 좀 차지만 내려 올 때는 무동력으로 달리는 자동차처럼

거의 힘을 안 들이고 방향만 잡고 발걸음만 떼 놓으면 절로절로......

그 기분으로 힘이 좀 들더라도  산을 오르지 않나 싶다.

이름있는 높은 산은 아니지만 정상은 정상인지라....ㅎㅎㅎ

아무리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그 기분은

다른 뭘 해서는 얻을 수 없는 아주 상큼 발랄하고 짜릿하다.

저수지에 비치는 산자락은 그림 같고....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저수지는 너무 낭만적이야~~

산을 휘적휘적 내려오기 시작하면 아침해가 아기처럼 맑은 얼굴을 내 민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