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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연재5-생명의 신비 mistery of life


BY 사랑의 빛 2009-09-22

 

생명의 신비 mistery of life

 

 

우리의 본질인 생명은 자유요, 사랑이요, 조화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나(에고)’의 집착에서 벗어나 생명과 하나가 되면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참 자유를 누리게 되고, 사랑 그 자체가 되고, 모든 존재와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생명의 본질은 그와 같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가 자신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안테나를 우주 끝까지 펼쳐서 항상 주변의 상황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주변 상황에 늘 깨어 있습니다. 그래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의 나무를 보십시오! 그들은 겨울이 오면 저절로 잎사귀를 떨어뜨려 추위로부터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하는 게 바로 생명입니다.

거미가 태어나서 배우지 않고도 거미줄을 치는 것은 바로 생명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본능이요, 자기 보존의 본능입니다.

짐승들은 홍수나 재앙이 올 것 같으면 그것을 미리 감지하고 살 준비를 합니다. 배가 사고가 날 것 같으면 쥐들은 미리 배를 탈출합니다. 까치들은 홍수가 날 것 같으면 자신의 집을 좀 더 높은 곳에 옮겨 짓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명이 위험을 미리 감지하여 그렇게 시키는 것입니다.

기러기들이 하늘을 날아갈 때 잘 눈여겨보십시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커다란 한 마리의 새 모양을 이루어 날아갑니다. 그것은 적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먼 길을 힘들이지 않고 가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입니다. 앞에 선 기러기들이 날갯짓을 하면 그로 인하여 기류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러면 뒤에 따라오는 기러기들은 그 기류를 타고 힘을 덜 들이고도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날아가면 보다 큰 기류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날기 위한 에너지가 더욱 많이 소비됩니다. 그러나 무리를 지어 큰 새의 형태를 이루면 기류를 타기가 훨씬 쉽습니다.

또 그렇게 날아가다가 앞장선 기러기가 힘들어하면 뒤에 있던 기러기와 교대를 합니다. 그것은 거의 오토매틱입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신비입니다.

생명은 전지전능합니다. 생명은 그 자체가 자기 보존의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형태를 취하고 조화를 이룹니다. 그들은 경험이라는 ‘나(에고)’가 없고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에, 자기를 우기거나 주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앞에 서면 추우니까 자기는 뒤에서만 따라가겠다든가 하는 법이 없습니다.

생명은 이와 같이 그 자체의 조화의 능력으로 항상 자신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사람도 이와 같은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인간은 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일까요?

사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능력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나(에고)’가 그 생명의 지혜를 자꾸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자동차 사고 중의 대부분은 딴 생각을 하다가 나는 것입니다. 운전 중에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깨어 있음’ 그 자체입니다. 순수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맑디맑은 거울 속을 과거라는 기억이 생각으로 구름처럼 떠다님으로써 흐려 놓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의력이라는 안테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사랑)’이 ‘나(에고)’로부터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우리는 점점 지혜로워지고 조화롭게 됩니다.

만약 사랑하는 형제 중에 누군가가 불행한 상황에 있다면 그쪽에서 전화해 오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명이 그 상황을 안테나로 먼저 감지하여 우리 자신에게 신호를 해 옵니다. 마음 한 구석이 뭔가 불편해지면서 불현듯 전화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생명은 이렇게 자신과 밀접하게 관계되는 모든 상황을 늘 안테나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미리 알려서 그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본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과의 조화가 필수적입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어디에서나 그곳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거기에 조화하여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주위와 조화하지 않고 ‘나’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사고가 나거나, 남의 지탄을 받거나, 감옥에 가거나,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상사로부터 우리가 온전하기 위해서는 필히 우리의 본질인 생명(사랑)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에고)’를 희생한다는 것이 어쩌면 엄청나게 손해인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가장 자신을 위하는 행위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지구가 우리를 끌어당겨 주고 있기 때문이요, 공기와 물이 있기 때문이요, 부모가 있었기 때문이요, 그 외의 수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떠받쳐 주고 있는 부대적인 세계를 더 소중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주위로부터 외면당하게 되고, 손가락질 받으면서 비참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명은 그 자체가 사랑이요 조화이기 때문에 부대적인 세계를 자신의 몸처럼 아끼고 사랑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주변과 참된 조화를 이룹니다. 그것이 가장 자신을 온전히 보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