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제7회
암, 그거 별거 아니라니까
암이 별거 아니라던 내 정의(定義)에 회의(回議)가 온다. 암이 별거가 아닌데 어째서 암으로 죽는 이가 그리 많아? 얼마 전엔 예쁜 탈렌트 장진영이 아까운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또 그보다 먼저는 아직도 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여운계씨가 폐암으로 갔고, 그보다 더 먼저는 멀쩡하던 김무생씨가 역시 폐암으로 먼 길을 떠났다. 연극인 박광정씨가 그랬고 김영임, 김주성이 그랬으며 이용희, 조재훈, 이미경, 길은정도 암으로 이미 세상을 등졌다. 세상을 뜬 사람들이 어찌 탈렌트 뿐이겠는가. 그 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고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이들이, 암으로 세상을 버린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더욱이 아직도 젊은 나이에……. 그들이 폐암이든 유방암이든 직장암이든, 어쨌든 ‘암’으로 인한 죽음이었다는 게 나에게는 커다란 충격이다.
위에 열거한 고인들은 탈렌트들이다. 모두 잘 알아볼 수 있는 인물을 열거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거나, 지식이 짧아서 암에 대한 대처를 미리 하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이용희씨의 경우, 아버지를 국회의원으로 두고 있는 유복한 집의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했겠는가. 부모나 형제가, 또는 주위의 지인들이 지식이 짧아서 아직도 청춘인 그를 잃었겠는가. 고이한 일이다. 애써, ‘암? 그거 별거 아녀~!’라고 용감 하려던 나의 의지(依支)를 깡그리 꺾어 놓곤 한다. 듣는 이들이, ‘만석이도 별 수 없지.’하겠구먼.
더러는 알지 모르지만 그렇게도 의연하게 장수를 장담하던 소담선생이 기여히 생을 마감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암을 앓는 이들은 그를 정신의 지주로 모셨던 양반이라고 한다. 내가 식도암이라는 병을 얻기 전엔 몰랐지만, 암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동분서주 하고 있을 때에 소담 선생은 이미 고인(故人)이 되어 있었다. 딸의 말로는 학식이 풍부해서 모든 암 환자들 사이에선 깍듯이 알아 모시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병원에서는 그의 명(命)을 3년으로 선고했다고 한다. 그는 인정하지 않고 내 나름대로 더 오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활기차게 투병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옳았다. 3년이 되는 즈음에 아들이 소담선생이 애지중지하던 사이트를 찾아, 고인이 됐음을 알렸다 한다. 그렇게 의지가 좋았던 이도 세상을 버리는데……. 아니, 세상이 그를 버렸겠지.
또 오늘은 내가 사랑하던 패트릭‧스웨이지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버렸다는 비보를 들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는 한 없이 감미로웠고, 그 연인을 위해서는 그렇게도 용감했던 그가……. 최근의 그의 사진은 몰라볼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차라리 그 사진이 내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왕년의 그 감미롭고 용감했던 모습 그대로를, 나는 영원히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을‧……. 그러나 그가 내 애인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니 뭐, 솔직히는 통곡을 할 만큼 슬프지는 않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저 갖고 있던 악세서리를 하나 잃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나 그가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는 데에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영화에 대한 투혼이 대단해서 투병을 하면서도 촬영을 했다는 데에는 더 큰 낙담을 할 수 밖에 없음이야.
나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솔직히 말하자면 병을 얻기 전이겠구먼) 서슴없이 떠들어댔다. ‘이제쯤 병을 얻어 2~3년 앓으며 살다가 가도 서운할 나이는 아니다.’라고 말이다. 병원생활을 하면서 아니면 TV로, 아직도 젊거나 어린 아이들이 난치병으로 고생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그럴 만하다. 그런데 이제 병을 얻고 보니 이런, 이런 그게 아니네. ‘마음은 이팔청춘’이라더니 이 몸은 아직 내 중학생 외손녀 딸아이만도 못한 때가 종종 있다는 말씀이야. 캉캉치마도 입고 싶고, 속옷이 보일락 말락 하는 미니 팬츠도 입어보고 싶으니 사단이 아닌가. 이 노릇을 어쩐다? 내가 입방아를 쪄서 얻은 병이라면, 내겐 또 이겨 낼 방법을 모색할 만한 능력도 있음이 아닌가.
으하하. 그러고 보니 내 하나님은 귀도 밝으시다. 내 목청이 하늘에 계신 당신의 귀에 까지 들릴 만큼 우렁차지도 않은데, ‘오~냐. 그래라.’하셨으니…… (우리는 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를 하니까 당신이 계신 곳을 잘 알 수 있지). 그래. 나는 늘 ‘내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빌미로, 세상사에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기도해 주기를 서슴없지 않았던가. 그러면 방법은 있다.
혹자는 ‘말이 씨가 된다’라고도 한다. 믿지는 않지만 이미 쏟아놓은 말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나는 내 하나님을 조를 수밖에. 내 말을 듣고 그리 잘 응해서 병을 주셨으니, 이제는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라고. 하나님이 오늘 저녁엔 골이 좀 아프시겠는 걸. ‘이랬다 저랬다 하는 저 물건을 어찌 할꼬’ 고민이시겠다는 말이지. 뭘 어찌해요! 처음 주신 명(命)만큼 살게 하시면 되지이~. 이래서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야. 그 분에겐 암이 별거 아니거든. 하나님이 이마에 손을 짚고 고민하는 그림 좀 그려 보소. 웃음이 절로 나네. 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