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첫 차 버스는 7시이고 이 차엔 일찍 등하교하는 중고등학생들 통학버스이다.
나는 이 버스보다 그 다음 차 8시 15분에 오는 버스를 즐겨탄다.
동네사람들은 차가 있는 사람이 왜 버스를 타고 다니냐고 처음엔 묻기도 했지만
준비된 대답은
\" 오늘 차 좀 쉬구유 덕분에 버스두 타구유 헤헤\"
사실 젊은 사람이 그것도 젊은 여자가 동네 어르신들 얼굴 제대로 뵙구 찾아 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적당한 이유와 명분없이 늘상 같은 일상들이 흐르는 동네에서 만만하게 격의없이
얼굴 익히는 곳이 버스안에서 얼굴익고 말 안부 전하고 듣고 하는 것이 참 자연스럽다.
\" 어허 그것 참! 이를 워쩐디야?\" 백발이 성성하신 할아버지가 옆에 좀 멀직감치 앉은 분에게 말을 건네신다.
\" 왜그러는디?\" 대답으로 또 건너가고
\" 아! 글씨 다음 주에 우덜 큰 눔이 환갑인디 이거 가야 디는 겨?\"
옛날엔 당신 환갑을 넘겨 장수하는 것은 흔하지 않아 61년만에 돌아 온다는 귀한 때이다.
당신 잔치도 아니고 큰 아들이 벌써 환갑이 되었다고, 그 잔치를 가자니 당신이 넘 오래 산 것 같고.
안 가자니 떨떠름하시다는 거다.
\" 어휴! 형님 긍께 인제 아들하고 같이 늙는 다는 건디 가야지유?\"
\" 그냥 간단하게 집안 식구들 모여서 밥 한끼 먹어야지 뭐?\"
\" 내가 안가면 자식들이 난리 나겄제?\'
할아버지는 그게 더 걱정이신가보다. 당신도 아들 환갑잔치를 볼 만큼 오래 살 줄 몰랐다고 세상 참 오래 살아서 별별 일을 새롭게 겪는단다. 그 때 핸드폰에서 따르릉 따르르릉! 진짜 옜날 전화 신호음이 버스안을 시끄럽게 울린다.
\" 나 지금 장에 가는 디? 뭐? 잘 안들리는 디?\"
버스 안이라서 흔들려 안들린다고 상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데 옆에 계신 분들은 아예 고개를 창밖에 머리를 내 놓으신다.
\" 고추가 한 너댓근 모질라서 더 빻궈야 된당께 애덜한테 전화 한 대 때려?\" 그렇게 뚝 끊으신다.
어르신들은 전화 끊는다는 말 없이 그냥 전화기를 덮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신다.
할 말 만 하고 딱 그만이라는 것이다. 들깨농사를 짓는 분은 들깻잎 시세만 묻고, 고구마를 어제 캤는데
근처에 몇 마리 멧돼지가 다 파묵고 몇 개 안남았다고 다시는 거기다가 농사 안짓는다고 다짐을 하신다.
서울 큰 며느리한테 참깨볶아서 보낼까? 그냥 보낼까? 그러시니 거긴 돈 없간? 그냥 사먹으라고 혀? 이러시구. 어떻게 날이면 날마다 병원 댕겨두 아픈 게 더 아프냐고 시원찮은 병원탓만 하시니까 긍께 젊을 때 작작 일하지 뭐 애덜이 알아줘 일찍 죽은 서방이 먼 소용있냐고 뭐든 내 하기나름이지 안 오는 자식 못오는 건지 잘 모르고 탓할 세상은 이미 지나쳤다고 아픈 것도 어지간하면 견뎌야지 뭐 별 수 있간? 이러신다. 모두들 그 말을 들으시더니 그렇긴 그려!
다음 정류장에서 한 할머니가 쌔끼 낳아서 막 젓땐 고물고물한 강아지를 라면박스에 담아 얼기설기 끈을 묶어 태우고 당신 천천히 올라오시면서 차비를 내신다.
\"하이그! 고 놈들 지에미 갖다가 똑박았구먼!\"
\" 얼마예 내다 놓을려구?\"
\" 그냥 시세대로 팔려보지 뭐!\"
버스 기사 아저씨가 싱글싱글 웃으시며
\" 고놈들 차비는 안 받응께 주인 잘 골라서 팔아버려유?\"
도로 코너 길을 돌리다가 박스가 획 뒤집어져 놀란 강아지 한 마리가 밖으로 떼굴떼굴 구른다.
주인 할머니가 기사양반 잠깐 서라고 소리 질르시고 버스 기사는 잘 안들리시나 보다. 그냥 가신다.
\" 강아지 차비를 따로 받아야 하나 왜 굴러다니는 겨?\"
할아버지가 픽픽 웃으시면서 구르는 검은 점이 군데군데 박힌 강아지를 주워 무릎에 얹어 놓으신다.
\" 이거는 얼마여라?\"
\" 구르는 놈을 주은 건게 뭘 그냥 가져가지?\"
버스 안이 우하하하 웃음바다가 되었다.
요즘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도로가엔 가을이 물들어 가고 있다. 도로에 익은 갈색밤이 떨어져 굴러다니고
드디어 붉은 홍시가 되려나 벌건해진 감나무들이 들에 산에 즐비하다.
누군가와 진하게 사랑에 빠진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