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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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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박하고 싶은 말


BY 동요 2009-09-17

옛날부터 내려오는 어른들의 말씀을 곱씹어 보면 

참 진리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많은데

딱 하나 반박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집살이 독하게 해 본 사람이 며느리 시집살이 독하게 시킨다는 말.

 

자기가 마음 아팠던 일은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알려주고 싶은 게

보통 사람의 기본 심정일텐데 말이다.

 

내 경우는 정말 그렇다.

난 내가 겪었던 슬프고 아픈 일들은 다른 사람이 겪지 않게 해주고 싶다.

 

결혼하고 나는 시어머니께 창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내가 야무진 살림솜씨가 없어서 어머니 눈에 차지않아서 이기도 했겠지만

어머니는 혹시라도 씩씩해 보이는 며느리에게 기운을 더 얹어

얌전한 아들이 눌릴까봐 염려하셨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요를 불러주며 23개월에 한글을 읽게 정성을 들여 키운 딸을 보며

어머니는 한 번도 \'엄마가 수고했네\' \'엄마 닮았나 보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아빠 닮았다고 말씀 하시지도 않았다.

\"얘 고모가 어렸을 때 똘똘했다\" 라고 항상 말씀하셨고

나는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그 말씀이 괜히 서러웠다.

 

생일문제도 나를 슬프게 한 것중 하나였다.

남편보다 생일이 4일 빠르다고 내가 며느리 볼 때까지 생일도 없다고 하셨고

난 철없이 그게 서러워 속으로 훌쩍대는 새댁이었다.

 

내가 결혼하고 몇 년 후 큰 동생이 장가를 가게 되어

우리 엄마도 그 높은(?) 시어머니가 되게 되었다.

결혼식 전 날 나는 엄마께 \'예비 시어머니 특강\'을 했다.

 

며느리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은

\'며느리 앞에서 딸자랑을 하지 않는다\'이고

며느리에게 꼭 해주어야 하는 것은 \'며느리 생일챙겨주기\' 라고 별표 쳐가며 강의했고

엄마는 열심히 받아 적으셨다.

 

그거 말고는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마음으로 아껴주시는 고마운 어머님이신데

내가 욕심이 많아 너무 완벽한 것을 요구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머니에게서 느낀 그 서운함은

내 엄마의 며느리로 들어오는 한 여인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데 단단히 기여(?)했다.

 

엄마는 조카가 영특한 행동을 보이면

\"우와~ 우리 손자 엄마 닮았나보다~ 정말 영리하네~\"말씀하셨고

올케의 생일날이면 일찍부터 일어나 미역국를 끓이시고 잡채를 볶으시는

자상한 시어머니시다.

 

오래 전 나의 특강이 있었음을 알지 못하는 우리 두 올케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시어머니를 갖고 있음을 행복해한다.

 

시어머니에게서 행복을 받는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께 그들이 받은 몇 배 이상의 크기로 다시 되돌려드리는 법이다.

제주여행 내내 엄마에게서 두 올케들의 효성스런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 전 사랑하는 내 엄마에게 들려드렸던 특강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 강의는

정든 부모를 떠나 낯선 집으로 시집오는 한 여인을 지켜주기 위한 내 노력이 아니라

내 엄마를 사랑받는 시어머니로 만들어 드리고자 한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팠던 만큼 다른 사람도 아프게 한다\'는 옛말은 그래서 틀렸다.

\'내가 아파봐야 남의 속을 알고

남의 속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남을 위할 줄 안다\'로 바꾸어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