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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2부 3회) 에헤라 디여~♪♬


BY 만석 2009-09-11

 

2부 제3회


에헤라 디여~♪♬


  (좋은 일은 서로 나누어야 한다. 나누면 배(倍)가 된다지 않던가. 나를 염려해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빨리 전해야 한다.)


  병원에 들어서니 아련한 향수 같은 냄새가 와락 다가온다. 집에서도 나는 가끔 이 지긋지긋한 암병동을 그리기도 했었다. 3개월만의 방문인데 어제 다녀간 것 같이 익숙하다. 그러나 정기검진을 받으러 들어서는 걸음은 언제나 무겁다. 혈액도 착취(?)당하고 드럼통(?) 속에도 드러누워 주고……. 금식을 하라는 명령을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어기리. 허기진 배를 안고 달려갔으나, 검진이 끝나면 배고픈 일은 잊고 검진결과만 걱정스럽다. 열흘 전에 두경부크리닉에서도 같은 검사가 있었기에, 오늘은 좀 피해보고 싶어서 아양을 떨었으나 허사였다. 여기는 암병동이라고.


  어느 곳에도 어느 시간에도 암병동은 변함이 없다. 환자는 힘이 들어서 우울하고 보호자는 지쳐서 우울하고. 철없는 어린아이들만 간간히 뜀박질을 해댄다. 그래도 그 어린아이들의 행보에 잠깐이나마 환자도 보호자도 웃을 수 있다. 1층엔 외래환자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입원을 한 환자도 더러는 왕래를 한다. 얼기설기 엮인 관을 걸고 소변통이며 분비물을 담은 통을 들고……. 그래도 1층의 로비에 나오는 환자는 상태가 좋은 사람들이다. 문병을 오는 이들과 제법 담소도 나누고, 어느 정도의 희망을 이야기 하는 이들이 많다. 고생스러웠던 일 년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밀려온다.


  오늘은 어제의 정기검진 결과를 보러 나섰다. 시방은 금식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 내 걸음이 제법 힘차다. 명의도 오랜만에 만날 것이니 찍어 바르고 그림도 그리고…… 그래서 지금은 환자라는 기분이 없다. 환자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의사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데 그게 그렇질 않던 걸? 우리들 사이엔 그런 말이 있다. 병원에 갈 땐 잘 차려입고 가야한다고. 왜냐하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무렴 어떠리. 결과나 잘 나왔으면 좋으련만. 진찰실 밖의 풍경은 로비에서 보다 더 진지하다. 초진(初診)인 환자도 재진(再診)인 환자도 또 그 보호자도, 검진 결과에 모두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막내 딸아이가 인터넷에서 찾아낸 명의의 논문과,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명의의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꼭 읽어달라는 뜻으로 형광펜으로 메모를 한 곳을 가리켰다.

‘3기 이상의 식도암에 걸린 환자들 잔존 수명이 최대 2년입니다.’

‘3~4기의 식도암 환자가 완치됐다고 해서 5년을 더 살겠다고 하면 욕심이지요.’

‘4기 식도암환자 중에 수술해서 1년이 지나고 지금 2년째 살고 있는 환자도 있습니다.’

‘근치적 절제술을 받고도 완치에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늦은 발견입니다.’

이런 이런.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성대수술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1년을 살았으니 그 빌어먹을 잔존생명‘이라는 게 1년 밖에 남지 않았다질 않는가. 그 1년을 살자고 목뼈를 도려내고 어쩌고……. 그 회복에만도 1년이 걸릴 터인데 골골거리다가 회복도 다 못하고 죽는다는 계산이 나오지 않는가. 나는 명의에게 따지듯 도리질을 했다. 아마 대들듯 흥분하지는 않았을까. 역시 명의는 명의였다. 그는 평소의 그 모습에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조용히 말했다.

  “김군자씨가 몇 기로 수술 받으셨습니까?”

  “4기로 들어가면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누가 그래요? 4기라고? 전 안 그랬는데요. 전(前)의 병원에서는 검사로만 봐서 말했고, 나는 직접 절개해서 들여다보고 말했습니다. 어느 쪽을 믿으시겠습니까.”

  “…….”

  생각해 보니 그랬다. 명의는 나에게 3~4기라고도 아니, 1~2기라고도 일러주지 않았었다.


  이제껏 3~4기로 지낸 시간들이 억울했다. 모든 일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어째서 의사 (意思 )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었을까. 지금 이 시각, 원망보다는 기쁨이 더 크다. 아무런 일이라도 용서할 수 있겠다. 포기한 수술에 대해서 명의는 말했다.

  “수술 하세요. 그런데……. 1차에 했던 시술로 한 번 더 하시죠. 같은 수술이라도 손이 바뀌면 다른 결과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 부분에 권위 있는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뼈를 건드리고 절개를 해서 흉터를 내고 하는 건 그 뒤에 생각합시다. 만약에 실패를 한다고 해도, 돈 좀 드는 거지 손해 볼 건 없잖습니까.”

그래서 오늘 하루 나는, ‘에헤라 디여~♪♬’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