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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경꾼이다


BY 정자 2009-09-11

나는 비행기를 딱 한 번탔다.

제주도 가는 비행기다. 아니다. 갈 때 한 번 올 때 한 번 두 번이다.

이잰  난 비행기를 안 탄 사람보다 문명인이 되었다.

구경을 하러 여행을 간다.

나는 여행하러 가는 것이 아니고 구경하러 간다.

뭐 특별하거나 보기 좋거나 그런 것만 두루두루 볼 수 있는 관광객이 아니고

구경꾼이 되어서 간다.

구경꾼이 되기 위해서 뭘 할 필요가 없다.

요란하게 짐을 쌀 필요도 없고 내 사진 박힌 여권 확인 하는 곳도 없다.

나의 구경이 되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고

몰래 담넘어 훔쳐보는 역활도 서슴없이 한다.

관망하는 습관도 생긴다.

생기는 것은 노력해서 배우는 것은 아니다.

저절로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진득하니 아래서 부터 차오르는 것이라고 할까.

나는 책도 그림도 나랑 버스를 같이 타는 사람 얼굴도 구경하듯이 한다.

시장도 찬란한 조명을 키고 화려한 마트보다

좀 늙수구레하고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첫차를 타고 막 따와서 아직 수액이 줄줄 흐르는 애호박이나  초승달처럼 허리가 휜 애기오이. 아직 덜 익어 누르스름한데다 그래도 과일이라고 하는 못생긴 모과들의 모양을 구경한다. 구경한다고 돈을 달라고 하는 장사꾼은 한 번도 없었다.어디는 구경은 공짜라고 해서 나도 그걸 보고 실컷 웃었다.

나 혼자 구경을 간다.

누구에게 자랑 할려고 누구에게 보일려고 그 흔한 디카 한장 찍지 않았다.

구경한 것은 말로 전도 하듯이 해야 한다.

\"옜날에 거기에 가보니 내가 생전에 보지 못한 것들이 늘상 거기선 지천으로 있더만!\" 

새벽에 자운영을 우연히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보라색이 그렇게 사람을 홀릴 수도 있구나 했다.

자운영의 보라색은 이슬을 털을 때 떨어지는 비율이 콩알만한 다이어몬드가 푸른 논두럭으로 데굴데굴 구르는데. 그 걸 아무렇지 않게  한 촌부가 장화신은 발로 즈려밟고 가는 것이다.

몇 천평의 도라지밭을  길를 잃어 한가운데를 가로 질러 가는데.

내가 꽃인지 도라지가 나를 구경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도라지를 심은 주인은 꽃지고 얼른 캐기만을 기다리는데 얼굴한 번 꽃에게 제대로 보여 주었겠는가?  나 같이 여기가 어디여 헤메다 들어선 어리벙벙한 구경꾼의 얼굴을 실컷 보여주고 온 것이다. 하여튼 구경꾼은 나의 얼굴도 그 쪽 상대의 얼굴도 잘 기억해주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요즘은 가을을 구경하려 한다.

가을에 할 말이 많은 것은 그 만큼 속사정이 있다.

어느 계절 사연이 없을려만 가을에 떠나지 마요. 가을에 기도하게  하소서, 시몬 너는 아느냐? 등등

별 별 싯귀들이 붙은 계절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싯귀들은 사람위주로 지어진 글이다. 사람이 왜 떠나? 사람에게서 사람이 떠나지 가을이 사람에게서 떠나나? 뭐 이런저런 생각에 구경꾼의 제 일 원칙이 있슴을  알았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나만 이래라 저래라 뭐 이런 것 안하면.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계절이 스스로 일어나 갈 차비를 알고 때를 알아 휼륭한 풍경을 제공을 해 준다는 것이다.

으이그..이런 맹추같으니 이걸 이제야 터득 했으니 참 창피한 일이다.

그 동안 내가 곳곳을 돌아댕겨 구경하는 곳에 내가 지나친 자리라고 낙서하듯이 표시하고 흔적 남기느라 바쁘고 그래봤자 여긴 지구다. 내가 어딜 벗어난다고 해도 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결심했다. 버스를 타면 제일 높고 맨 끝트머리 뒷좌석에 앉아 동네 한 바퀴 빙 둘러보는 구경을 하러 갈 것이다. 분명히 지금쯤 가을에 여름 뙤약볕을 실컷 먹어 늙은 호박들이 담쟁이처럼 들에 남의 지붕에 올라 앉아 어느 여인네 궁둥이처럼 둥굴둥글하게 천연으로 누렇게 익어 갈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