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9,10 새벽)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늘 나에게 가게에서 무우를 사오라 시키셨고 그 무우를 시원하다 하시며 맛있게 드셨다. 그냥 시원달콤하니 좋아하시나 보다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 친척 한분이 아버지의 식성을 아시고는 물을 좋아하는 병이 있다고 혹시 모르니 병원에 기보라고 하셨다. 결과는 당뇨였다. 그리고 그 날부터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아버지의 건강에 좋은 음식을 따로 만드시고 철저한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우리마을에서 그 병에 대한 최초의 환자였고 뒤이어 아버지가 아시는 여러 분이 그 병에 걸렸다. 아니면 모두 그런 증상이 병인 줄 알지 못하다가 뒤늦게 알게 된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저학년때쯤이었는데 그 병으로 인해 실 생활에 많은 문제를 가진 기억은 안 난다. 다만 우리집 식탁이 가정형편과 상관없이 늘 풍성했다는 것, 아버지가 손수 매일 맞으시던 인슐린 주사 등이 기억난다. 그리고 내가 발을 주물러 드리면 시원하다고 좋아하셨던 거도 기억난다. 그 병은 그 병 자체로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했다. 무서운 건 그로 인한 합병증인데 그 병을 가지게 되면 면역력이 적은 탓에 합병증이 생기면 성한 사람 보다 치유가 더디다는 거였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끔 우울한 얼굴로 \'뒷 마을에 사는 김씨가 당뇨 합병증으로 죽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그 마을에 사는 아버지의 동병의 지인들은 거의 돌아가셨다. 가장 먼저 병이름을 알게 된 아버지는 그 지병을 반평생 안은채로 하시고픈 일들 건강한 사람처럼 제약없이 하시며 사셨다. 돌이켜보면 모두 어머니 덕분이다. 아버지에게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새벽일찍부터 부엌에 계셨고 약을 챙기는 것 부터 혈당체크까지 아버지의 평생의 건강관리사셨다. 아버지는 내가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까지 건강하게 다 보셨다. 나는 그 때쯤 아버지에게 그 병은 더 이상 걸림돌이 아니라고 만만히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른 건강한 노부부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사실거라는 걸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어려운 살림에 세 아이 키우시느라 부모님은 남들 다 가보는 제주도도 안가보셨고 아버지의 환갑날 여행을 그 곳으로 어머니와 다녀올 계획을 세우셨다. 그런데 환갑을 한 해 앞둔 가을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하던 큰 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한 해 앞 두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평생을 투쟁하며 사셨던 당뇨에 진 것이 아니었다. 엉뚱하고 억울하게 교통사고가 아버지의 삶을 마감하게한 원인이었다. 그 후 짝을 잃은 어머니 곁에는 차례차례 두 올케가 생겼고 또 하나 둘 손자 손녀가 생겨 아버지의 빈자리는 채워졌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 구석 빈자리가 남아 있으신지 돌아가신 지 10년도 더 지났건만 즐거운 일이나 슬픈 일 생기면 어머니는 혼잣말을 허공을 향해 하신다. 내가 처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을 때도 \"아버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렇게 예뻐하시던 딸이 책을 썼다고 동네마다 자랑하셨을 텐데...\"하시며 울먹이셨다. 오늘 새벽 비행기로 아버지가 지켜드리지 못한 약속 내가 지켜드리려고 어머니와 제주여행을 떠난다. 두 주 전 제주도에서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강의와 줄 수 있냐고 전화를 했었다. \"멀어서..부탁드려도 될까요? 강사님?\" 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었다. \"멀긴요. 거제도 갔는 걸요. 거제나 광주보다 훨씬 빠르죠 제주가. 비행기 타면 50분인데..\" 강의요청 전화를 받는데 머릿속에선 어머니와의 즐거운 여행이 먼저 그려지고 있었다. 아이들 두고 엄마랑 제주여행 다녀온다고 차마 말 할 수는 없었는데 강의 가는 김에 관광도 하고 오겠다니 어느 남편이 말릴까 싶었다. 강의 마치고 어머니와 행복한 꿀맛여행을 하고 돌아오려고 한다. 어머니와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차도 마시고 맛있는 제주 옥돔도 먹고 사진도 찍고 마침 나온 세번 째 책의 출판기념식도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오붓하게 하고 올까 생각한다. 딸을 키우니 진짜 비행기타고 여행하네...하시던 어머니. 수학여행 떠나는 소녀처럼 상기되어 있는 행복한 어머니를 모시고 하는 강의라 오늘 아침 제주 후배엄마들에게 드릴 강의는 유별할 거 같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가 당신의 기억 저장고에 평생 가장 꿀맛처럼 달콤한 여행이었다고 기억하시게 행복한 시간 함께 하고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