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제2회
모험
오늘은 두경부종양센터에서 정기검진을 받았다. 지난 3월에 성대시술을 받았던 곳이다. ‘두경부’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그리고 ‘종양센터’라는 이름도 썩 기분이 좋지 않아서, 이곳을 찾을 땐 늘 소심(小心)해진다. 성대의 왼쪽 신경줄이 끊어져서 약식으로 1차 시술을 했으나, 음성이 거의 원위치(原位置)를 했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아니 체질적으로 잘 받아들이면, 약식시술도 결과가 좋을 수 있다고 했다. 우선은 흉터도 안 생기고 재수가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해서 약식 시술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게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식으로 목에 상처를 내고 수술을 하자 한다. 목에다 다시 칼자국을…….
1차는 입 안으로 시술이 가능했다. 이번 수술은 목의 뼈를 절개해서 벌어진 성대의 틈을 메워주는 수술이라 하니, 외관상 목에 흉터를 내게 생겼다. 몸통의 상처가 적지 않은데 목에다 또……. 이제 다 늙은 나이이니 흉터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아물기도 힘든 늙은이의 뼈를 칼질을 해?! 살을 찢고 꿰매는 건 그래도 아물기만 하면 성공적이라 하겠지만, 뼈는 살과는 다르지 않을까? 좋은 음성을 살리자고 멀쩡한 목뼈를? 후유증이라도 생긴다면 차라리 좀 쉰 소리로 사느니만 못하지 않으려나. 생사(生死)에 걸린 일도 아닌데……. 이제 좀 살겠다 싶은가? 그래서 부려보는 사치(奢侈)야?!
남편은,
“당신이 원하면 해야지.”한다. 뭐여?! 시방 자기 일이 아니라고, ‘니 맘대로 하소서.’하는 겨?! 답이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돈이 아까운 겨?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돈 걱정은 않는다. 내가 재벌 집 사모님이어서가 아니라, 이제 그건 내 손을 떠나서 그이의 담당이니까. 식도암 수술을 받을 때에도, 퇴원을 할 때에도 난 돈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농담으로,
“찾아다 쓸 만한 가치가 있으면 날 찾아가고, 아니면 말어~!”했다. 자식이 있으니 죽더라도 시신은 찾아가야 할 것이고, 수술이 성공적이라면 찾아 갈만한 값어치는 있을 것이라는 탱탱한(?) 자신감이 있었으니까. 당장에 손에 쥔 현찰은 없어도, 병원비쯤은 마련할 위인이니까.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일에 절대로 토를 달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기가 센 어미인가 보다. 아니면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지. 엄마는 언제나 씩씩하고 대범하다고 여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식도암 선고를 받은 뒤 귀가 해서 펑펑 울었다는 소릴 듣고는 깜짝 놀라서,
“엄마가 울어?”하고 놀라더라지? 이젠 좀 보호본능(保護本能)을 필요로 할 나인데……. 쳇! 아이들에게 보호받고 싶은 걸 보니, 나도 늙기는 늙은 모양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무관심이여? 안되지. 그건 아니 될 일이다.
영악한 막내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지금 강의 나가고 싶어서 성대수술을 하신댔지요? 수술은 하고 싶어 하시니까 하긴 하세요. 그런데 수술을 하고 강의를 꼭 나간다는 보장이 없어요. 목소리가 문제가 아니지요. 목소리는 수술을 해서 좋아지긴 좋아질 거예요. 요는 그 뒤에 엄마 체력이 버텨주느냐가 문제지요. 또 수술을 하고나면 한 동안 힘드실 텐데요. 또, 젊은 저도 한 두 시간 떠들고 나면 녹초가 되는데 엄마가 힘들어서……. 수술은 하시고 강의는 그 다음에 다시 생각하세요.”
이런 이런. 강의를 못 나갈 거면 수술을 왜 해?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서인데……. 남편에게 아이의 말을 전했더니,
“많이 하지 말고 한 군데만 다니면……. 뭔가 한다는 자신감이 당신한테 플러스가 되지 않을까? 요새는 의술이 좋아서 수술은 걱정 안 해도 될 걸?”한다. 옳은 말씀이야.
두경부의 의사는 후유증을 묻는 나에게,
“별로 없는 일이지만 물으시니……. 간혹 염증이 생기는 수는 있습니다. 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기도를 막는 일이 있는데……. 그러나 흔치는 않습니다.”라고. 나는 재차 물었다.
“간혹 있는 일이 저에게 있을 수도…….”
“교통사고 날까봐 버스는 어떻게 타고 다니세요.”한다.
후두경 검사실의 소녀 같은 여의사도 조언을 했다.
“100% 정상적이 된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50살의 여성이 맛사지를 받는다고 20대의 피부가 되는 건 아니지요. 그건 단지 희망사항이지요. 그러나 좋아지는 건 분명합니다.”
허허. 낭패로다. 성대수술을 해? 말어? 누구 손 버쩍 들고 나와 판단 좀 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