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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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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내 큰 바위 얼굴


BY 동요 2009-09-05

어렸을 적 저희 집은 바닷가였고 부모님은 생선을 건조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갑자기 일거리 들이 많이 생긴 날엔 일손이 부족해 제가 도와야 했습니다.

 

평소엔 불평없이 일을 했지만

시험을 앞두고 있는 날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공부욕심이 많았던 저는 내 경쟁자가 이 시간에 공부할 거란 생각에 속이 상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집안 일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맏딸이니 집안 일도 도와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마당 한 가득 건조한 생선 끼는 싸리나무가 쌓여있었고

비 오기 전에 굵기대로 골라서 팔아야 한다고 책가방 두고 나와서 도우라고

아버지께서 말씀 하셨지요.

 

내일 모레 중간고사 시험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늘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딸을 믿고 계셨는지

\"넌 평소에 열심히 하니 시험때 몰아서 공부할 필요없다. 좀 나와서 도와라\" 하셨고

전 아버지 말씀에 거역할 수 없어 일을 도우면서도 얼굴빛은 밝지 못했죠.

 

제 표정을 보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뭔가를 귓속말로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저에게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일에서 해방(?)시켜 주셨지요.

 

아버지의 표정이 밝지 않으셨다면 아무리 시험이 내일이라도 부모님을 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환한 표정을 보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공부를 하러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아버지께 무슨 말씀을 하셔서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저를 책상앞으로 보내주셨는지 알 수 없지만

어머니의 그 모습은 오랫동안 저에게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자녀들 앞에서 남편의 흉을 보거나

남편의 그른 점을 지적해 남편을 당황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자녀를 위한 결정은 아버지께 조언을 드려 늘 아버지가 하게 해 주셨고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시기 위해 항상 노력하셨지요.

 

어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탁정리를 하기 전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데

수다가 길어지자 남편이 한 마디 했습니다.

\"음식 빨리 냉장고에 넣어! 썩는다!\"

 

그 말에 평소에 늘 불만이던 남편의 말투가 또 거슬려 한 마디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무슨 말을 항상 그렇게 해요? 썪는다가 뭐예요. 음식을 가리키면서 .

그냥 상한다는 표현을 써도 되쟎아요\"

 

내 딴엔 전화하는 아내대신 그렇게 염려스러우면 먹던 음식 냉장고에 대신 넣어주면

안되냐는 불평이 섞여있는 말투였죠.

 

내 말에 남편은 지지않고 응답했죠.

\"썪는다나 상한다나 다 그 말이 그말이지. \"

 

이왕 시작한 거 한 마디 더 해버렸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무심코 나오는 말들을 조사해보면 모두 집에서 어른들이 쓰는 말일 경우가

많대요. 우리 아이들이 예쁜 말을 쓰게 하고 싶으면 당신의 그 과격한 표현들

바꿀 필요가 있다구요!\"

 

그 말을 하는데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한 줄 말했는데 저는 10줄도 더 되는 말을 했고

아이들은 그 것을 다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아이들 없는데서 남편의 잘못을 지적해도 될 것을

아빠의 권위를 손상한 듯해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귀에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전하던 어머니의 지혜를

배워 실천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습니다.

 

내 어머니, 지금은 일흔이 훌쩍 넘은 평범한 할머니시지만

어머니의 모습 모든 것은 생생하게 내 머리에 남아

어머니 닮지못한 부족함 투성이인 딸이 악착같이 닮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제 영원한 본보기, 큰 바위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