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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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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그 이후..


BY 마중물 2009-09-04

 

여름비가 봄비처럼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날 아침..

“다녀오겠습니다”하고 현관문을 열려고 하니 나의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

“나 이제 촌에 갈란다. 이제 너거가 알아서 살아라..이제는 그래도 되지싶다”

들은 척 못들은 척 외면하며 문을 밀고 나오는데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울려대고 아찔하다. 

어감이 다르고 느낌이 다른 것이 ‘아...이제는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러하지만 할머니가 베푸는 손주에 대한 정성은 각별했다

사랑과 정성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주는 손주들을 보는 것 자체로 누구보다 흐뭇해하며 행복해 하셨던 분,

그 어떤 것을 다 퍼 주어도 아까워하지 않으시며 희생과 사랑으로 손주들을 거두어 주신 분

그런 분이 아이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유달리 요즘 들어 자주 이런 말을 하시곤 하였다.

“아무리 공을 들여서 키워놔도  다 소용없다. 지가 잘나서 큰 줄 알고 저거 엄마만 좋고 함매는 신경도 안쓸기다.  이제 촌에 갈란다..나도 촌에 가서 내 하고 싶은 것하고 살란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더니, 그랬다. 자랄수록 엄마, 아빠만 찾는 아이들을 보며 그게 당연하다고 마음으로는 이해는 하는데 많이 허전하다고 말씀하시며 기운없어 하던 모습이 스치운다

당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짐을 느끼며, 배신감 아닌 배신감까지 느끼면서 함께 머물지 않아도 모두 제각각 자기 삶을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신 모양이다. 현재 구십 노인의 홀로 지내시는 친정모친을 모실 생각으로 할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 그냥 마음 편히 보내드리자. 어디에 계시던 마음 편한 것이 제일이쟎아. 한두번도 아니고 ,  우리하고 함께 살 인연은 여기까지인가부다.  웃으면서 보내드리세요”

“어떡할려고..”하는 남편의 염려에 \"이미 마음 떠난 사람 우리 편하자고 잡는 것,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다. 잘될거야“하며 쉽게 말은 했지만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그렇게 할머니는 비오는 날 우리 곁을 떠나 시골로 들어가셨다.


집에 들어오면 따뜻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이가 없는 텅 빈 집,

늦게 들어오는 집에 보이는 것은 컴컴한 어둠뿐인 집

웬지 모르게 집이 텅빈 것 같고 썰렁하기조차 한 이 환경에 아이들이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 백년지계를 꿈꾸며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나 또한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할지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떠나간 그분과 함께 한 십여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뇌리에 스치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기만 한 초보엄마, 햇병아리 주부에게 그 분은 구세주였다.

갓 태어난 아기 때문에 쩔쩔매는 나에게 그 투박하고 억센 손으로 아기를 품에  포근히 안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내 새근새근 잠을 자는 우리 아기

그렇게 처음 만난 우리는 한 솥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큰 녀석을 키우고 둘째녀석을 키워주신 세월이 어느덧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이다

함께 한 긴 세월동안 함께 웃으며 행복해 하였던 일들도 많았고, 육아의 부담을 가지면서 서로 다른 육아방식에 의견 차이도 수차례, 또한 흔히들 얘기하는 고부간의 갈등에 마음 아파한적도 수차례.

젊은 신세대가 주장하는 육아방식과 시골할머니가 얘기하는 육아의 벽은 높고 깊었다

책에 적힌대로 아기들이 먹고 자라는 줄 아는 초보엄마와 삶의 산경험이 무수하게 녹아 스며들어 있는 그분의 아기돌봄이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돌이켜 생각하니 참 어리석고 무지한 엄마, 헛똑똑이였구나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십여년 세월동안 제일 후회되는 부분은 가끔 그분의 의견을 존중하여 드리지 아니하고 나의 미숙함과 무례함으로 인하여 고집을 피워 그분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이 그분에게 상처가 아니되기를 바래본다


각양각색의 모양새를 갖춘 타인이 모여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순탄한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며 그에 못지 않게 새록새록 샘솟는 서로의 믿음과 정으로 두터워지며 우리는 가족이라는 서로의 닮음꼴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아니될 존재가 되어가는 지금,  떠나신 그분에게 좀 더 잘  해 드릴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혼자 계시더라도 밥은 꼭 챙겨 드시고, 오시고 싶을 때 언제던지 오세요”하며 문안전화를 드렸더니,

“그래. 아이들이 보고 싶다, 허전하다”하신다. 그 소리를 듣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주말에 데리고 갈께요”

떠나신 후 하루 이틀은 잔소리쟁이 할머니가 없으니 좋다고 하던 녀석들이 항상 할머니랑 같이 자던 큰 녀석(만10세)이 덜렁하게 혼자서 잔다. 

“엄마. 방이 왜 이리 커. 함매 보고 싶은데. 기분이 좀 이상해. 함매는 혼자 있으니 외롭겠다. 전화해야지” “함매..잘 있나, 혼자 안 무섭나..빨리 온나”

유달리 엄마의 껌딱지를 하여 할머니를 많이도 섭섭하게 하던 작은 녀석(만6세)은

“엄마 내가 함매 말 안들어서 떠났나. 내가 함매 사랑해하까.. 우리 가서 다시 데리고 오자”


그분의 사랑과 정성으로 무럭무럭 자라준 아이들은 그분이 베풀어 주신 사랑 탓에 사랑을 품을 수도,  베풀 수도 있는 따뜻한 아이로 자라준 것 같아 새삼 감사하다

할머니의 빈자리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그분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 아울러 가족이 무엇인지 어떻게 서로를 품고 살아야할지를 무언속에 가르쳐주고 남겨놓고 가신 빈자리.

당분간 이 빈자리를 어떻게 메꾸어야 할지, 그 어느 누구도, 어떤 것으로도 할머니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지만 그분 또한 삶이 존재하기에 그 수많은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 그분의 사랑과 희생에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우리의 별장이 되어 버렸던 할머니의 시골집은 이제 아이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요 자연의 학습장이 될 것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던지 달려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위로하여 본다.

비록 몸은 떨어져있지만 언제 어디서 보아도 어제 본듯한 모습으로 편하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는 가족이기에, ‘함께함’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에  너무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