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25회
퇴원
그래도 물리치료실의 의사 덕을 본 것 같다. 성의껏 마사지를 하는 것 같더니 조금은 해결을 했으니 말이다. 아침마다 회진을 도는 명의도 환자가 원하는 것은 될 수 있는 한 들어주려고 애를 쓴다. 모두 고마운 일이다. 그러게 옆의 환우가 그 의사와 아는 사이냐고 묻지 않았던가. 그동안 아침마다 촬영한 X-ray와 혈압, 혈당, 그리고 간간히 있는 채혈과 수술부위가 모두 양호하다 한다. 그러게 옆의 환우가 그 의사와 아는 사이냐고 묻지 않았던가. 이제는 퇴원시킬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두 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두 주일이 지났다고? 난 두 달 아니, 이 년은 지난 것 같은데……. 이제야 비워 둔 집 생각을 한다. 먼지는 얼마나 쌓였을 것이고 밍크(진도개)는 또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나는 집으로 가는 식구들에게 늘 밍크 밥을 많이 주라고 이르는 게 일이었다.
허허. 일이 터졌다. 막내딸아이가 제 아버지 힘들겠다며 몇 밤을 새우더니 허리병이 도졌다 한다. 어쩌누. 원래 허리가 약한 아이라 내 머리를 감기고 몸을 닦아주던 일이 버거웠던 모양이다. 불편한 잠자리도 사단이었던 것 같다. 한 번 허리병이 나면 크게 고생을 하는데 큰일이 아닌가. 큰딸은 제 살림하면서 남편과 두 딸아이 뒷바라지에 직장까지 다니니 맘대로 틈을 낼 수가 없어서 주말에나 와서 자리를 지키곤 했다. 큰아들이 살갑게 하긴 하지만 딸만큼 이물 없지가 않다. 결국 몹쓸 어미가 아이들 고생만 시키는구먼. 이 어미는 이제 병을 얻었으니 시작인 셈이다. 수술을 했다고 룰루랄라 일이 끝이 난 건 아니잖은가. 어찌 돌아갈 판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앞 뒤 생각도 없이. 그저 살고 싶은 마음에만 욕심을 부린 꼴이구먼.
퇴원을 해도 잠 자는 자세가 제일 큰 문제다. 상체를 높이 뉘어서 어깨가 배꼽보다 높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 속의 음식물이 입으로 역류한다고 한다. 내 장기는 이제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음식물이 목을 넘어가면 식도가 연동작용으로 그 음식물을 위로 내려민다. 그런데 식도를 절제했으니, 받은 음식물을 내려 보내는 기능이 없어졌다. 위에서도 소화기능이 전무해서 입으로 음식물을 잘게 부수어서 내려 보내야 한단다. 그래서 적은 한 숟가락의 음식도 30번 이상을 씹어야 하고, 먹고 나서도 위로 보내기 위해서 30분간의 운동이 필수라 한다. 주로 걷기운동을 해서 음식의 소화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환자가 시간이 지나면 운동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며, 명의는 아주 기발한 운동법을 알려주었다. 바둑알 40개를 안방에서 건너 방으로 하나씩 옮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둑알 하나씩을 이 방에서 저쪽 방으로 나르라는 게다. 바둑알 40개면 30분은 충분하며, 한 끼의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에도 족하다는 말이겠다. 술은 물론이고 민간요법의 약물이나 특히 한약을 삼가라고 한다. 차가운 음식도 삼가고 2개월까지는 소량(小量)을 자주 먹으라고 한다. 과식을 하면 올려붙인 위가 늘어져서 평생을 두고 큰 고생을 한다고 한다. 다른 주의사항은 모두 이해가 가지만 한약을 삼가라는 말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허나 이르는 대로 따라야겠지.
이건 또 무슨 심보인가. 막상 퇴원을 하려 하니 서운하다. 나가서 혹시 다시 돌아올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심도 있다. 작은 일이 생긴다 해도 병원에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그렇다고 마냥 병원에 있겠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남편은 퇴원을 해도 좋다는 명의의 말에 얼굴이 환해진다. 나는 걱정스러운데……. 반절 남은 스템플을 제거하고 퇴원할 짐을 챙기는데 보따리가 적지 않다. 이불이며 세면도구며 주사소독용 그릇이며 물그릇 등등. 약은 또 좀 많아야지. 항생제에 소화제, 항구토제에 소화성 궤양제, 그리고 대변완화제, 진통제, 소독용 치료제 등등. 골고루 찾아 먹기나 하려나, 제대로 찾아서 바르기나 하려는지 모르겠다.
이걸 다 어찌 나른다. 오늘따라 아이들이 오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들이 있다고. 에구~. 기를 땐 뼈 빠지게 길렀는데, 정작 내가 필요할 땐 아무도 없는 늙은이처럼 두 늙은이만 애를 쓰니……. 옆 사람들 보기도 민구스러워서, 나는 아이들의 사정을 해명하느라 입이 바쁘다. 그러게 ‘효자는 어미가 입으로 만든다’하지 않던가. 내가 서운한 건 서운한 것이고,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건 싫으니까. 영감이 두어 번 차에 짐을 옮기고 마누라를 옮기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실엘 들어선다. 딱하지. 영감은 병실의 사람들과 작별을 하느라고 음료수와 과일을 사다가 나눈다. 원래 그이는 그런 일에 익숙지 않아서 내가 그리 하라고 시켰더니 말을 아주 잘 듣는구먼. 큰딸아이는 제 집에 와 있으라고 성화지만 내가 편안치 않다. 그저 내 집이 좋다. 낮에는 아무도 없는 집에 어떻게 혼자 있으려냐고 아이들이 걱정들을 하지만, 정 힘들면 시간제 도우미를 쓸 요령이다.
보름 뒤에 음식물이 잘 넘어가는지를 알아보는 검사가 있다는 예약을 받고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초보운전자처럼 살살 차를 잘 몰아주어서, 흔들리지 않고 아주 수월하게 집으로 왔다. 워낙 사람 북적거리는 걸 싫어하는지라, 그리고 내 병에 대한 함구령을 내렸던 터라 조용히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찬찬한 큰아들은 예전처럼 어미가 누울 자리를 깔끔하게도 정리해 놓았구먼. 남편이 어서 사람을 청하라 한다. 좀 있어보자고 했다. 사람이 드나들어서 내 병을 남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문이란 언제나 과장되게 되어 있어서, 사람을 쓰게 되면 아마 곧 죽으리라고 소문이 날 걸?! 싫다. 그게 싫다. 친구라도 좀 부르라고 그이가 내 눈치를 살핀다. 싫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다섯 시누이들이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을 때에도 그들이 내 병을 안 것이 썩 반갑지 않았다. 사촌 시동생 내외가 병문안을 왔을 때에도 그랬다. 곧 죽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싫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수술 전에 기도를 해주려고 목사님과 교우들이 왔을 때에도 사실은 그리 달갑지가 않았다. 나는 내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리며 기도를 할망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