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생기는 건 웬수만 늘더라. 뭐 이런 일이 생겼다치고 나 젊었을 때 나 이쁘다고 따라댕겨 결혼해줘 사정해서
결혼 했더니 웬수가 되서 모질라 헤어지고 낭께 이젠 그 자식이 내 자식이라고 델고 살아 어떻게 함 잘 살아 볼라고 했는디 자식이 또 웬수되는 겨. 이거 죽여 살려 이러다가 그래도 내가 낳았응께 내가 책임은 지야 하는디 어째 하는 짓이 지애비하고 똑같냐? 씨도둑은 못한다고 하더니 뒷통수만 봐도 그 놈 생각나고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거랑 지애비랑 누워 자빠져 있는디 발바닥이 포개져서 자는것도 어쩜 그렇게 같냐? 내 사는 게 웬수들하고 살다보니께 맨날 사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른당께!
한 십여년 지기라면 어지간한 속사정은 잘 알고 수저 두 벌로 이불 몇 개 하다못해 냉장고가 1997년산이고 이젠 십여년이 넘더니 냉장고엔 하얀 성에만 잔뜩 들러 붙어 늘 떼어내는 부엌살림 속 사정까지 잘 알고 있는 나에게 그 웬수같은 남편과 하나 남은 아들도 웬수고. 공부한다고 컴퓨터 사줫더니 채팅으로 바람나서 열 아홉살에 바람이 난 딸내미는 애 먼저 낳고 그나마 결혼이라도 한 게 다행이라고 했더니 내 팔자에 무슨 딸 복이 따로 있을 것이냐고 더욱 말 할 것도 없고 그렇고 그런 세간살이며 세상 살아내는 애길 나만 보면 하도 애길 해서 내가 대신 자서전이나 위인전을 써 준다고 했더니 니가 무슨 소설가냐? 웃기는 소릴 하고 자빠졌다고 별 걸 다 쓴다고 지청구다
나는 이 친구한테 게으르고 느려 터진 덕에 늘 욕만 먹는다. 술을 먹어도 넌 얼굴도 호박보다 좀 나은디 살림도 잘 못하면서 그래도 서방하나 잘 만나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아냐구 또 한 말씀를 들어 줘야 자릴털고 일어난다. 얼마전에 하도 당뇨가 심해 머릿털이 다 쓴 푸른 쑤세미처럼 끝이 부서지고 몸이 퉁퉁 붔더니 기어히 병원에 실려 갔는데
오라가라 할 보호자가 나 밖에 없다고 전화 수화기를 통해
\" 야 미안혀 야 니가 무슨 죄가 많아 툭하면 내가 니한테 뭔 짓이냐?\" 하고 엉엉 운다.
\"그러게 담배 좀 작작 피지. 죽는 게 그렇게 간단하게 맘대로 되간?\" 나도 소리쳐서 그렇게 혼구녕 내고 싶은디. 말하면 뭐하나. 나도 뱔 수없이 또 오라니 가는 내 친구 보호자다.
병원 응급실에서 수가를 보니 어이 없다. 돈 일 이만원도 아니고 이 십만원도 아니고 무려 칠십 오 만원 때문에 퇴원도 못하고 아직 철이 덜 든 아들에게 말하면 뭐하나, 우선 내가 잘 아는 사회복지 기금인가 공동 모금회가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냇다.
내용인 즉 \"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고 할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내 친구 전화번호 쓰고 등기로 보냇다. 그 이틀날 닥달같이 전화가 왔다. 내 친구 말도 못한다. 어떻게 돈을 달라고 하냐면서 이런 거 걸리면 잡혀 가는 거 아녀? 어휴~~
\" 야 당뇨에 걸려서 오늘 죽을 지 낼 죽을 지 모를 사람 어따가 잡아 가 둬? 뭔 죄를 졌다고? 니는 어디 착한 사람 잘 사는 대회 나가면 우승감이다.\"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겔겔 배시시 웃는다.
전 남편이 이쁘다고 쫒아다니게 한 그 미소다 좀 뚱뚱해지고 얼굴에 기미가 끼여 여둑어둑한 그 웃믐이 왜 그리 한 여름에 이불 덮어도 손 발 저리듯이 가슴이 저린지 모르겠다.
퇴원을 하고 몇 칠 지나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 야 니 미수가루 좀 줄까?
\" 웬 미숫가루?\"
여름인데 여지껏 살면서 미숫가루 한 번 제대로 방앗간에 가서 빵궈서 해 먹는 적이 없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못 먹은 게 아니고 안 먹은 것 같아 괜히 미친척하고 콩도 사고 찹쌀도 일부러 햇보릿쌀도 박박 닥아 볶아대서 방앗간에 하루종일 지켜보고 직접 찧어 빵궈 왔단다.
\"그래 얼른 줘라 나도 그거 먹고 너처럼 어디 한 번 누가 이기나 맨날 안달복달하고 살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남들은 보약한 첩이네 두 첩이네 해마다 다려 먹어도 빌빌 대고 죽네 사네 이래도 말여 우리 미숫가루 여름에 시원하게 들이키고 한 번 잘 살아보자\"
\" 어이구 니가 워쩐 일이여? 냉큼 달래네 흐흐\" 또 겔겔 웃는다.
누구라도 같이 함께 오래 살다 보먄 안하던 일도 못 먹던 안 먹던 것도 한 번 먹어 주는 게 삶에 대한 예의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살 것이다. 앞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