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15

<연재 2>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BY 이영미 2009-07-13

프롤로그


모처럼 일찍 퇴근했다. 남편도 집에 와서 저녁을 먹겠단다. 어제 서울 출장 갔다가 새벽에 오기도 했고 요즘 회사 일로 많이 힘든 것 같아 작정(?)을 하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멸치국물부터 만들고, 갈치도 한 토막 구워야지, 취나물도 데치고 콩나물 무침도 하자, 오이도 새콤하게 절이고 시골에서 가져 온 상추와 깻잎도 씻고 쌈장도 새로 만들어야지, 아참 청량고추에 햇마늘을 넣어 창란젓갈과 섞은 걸 좋아하는데 마늘도 까야겠다. 딱히 컨셉 없는 산만한 메뉴이기는 하지만 남편이 좋아하는 나물 반찬으로 맛있게 준비해야지.... 냉장고 열어 모든 재료 싱크대로 꺼내 놓고 뚝배기 꺼내 멸치국물 만들고 콩나물 씻어 놓고 취나물 데치고 있는데 전화 벨이 울린다.

“나 집에 가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가야겠어. 아는 형님이 좀 만나자네.”

전화기를 들고 주방을 바라보았다. 끓고 있는 뚝배기와 싱크대 위에 펼쳐져 있는 여러 가지 재료들 바라보니 갑자기 ‘욱’하는 성질이 고개를 들려고 한다. 진즉에 전화를 좀 하던가.

가만가만. 심호흡 좀 하고 난 뒤 곱게 대답을 했다.

“네 알았어요.”

그리고 얼른 주방으로 달려가 가스레인지 불 끄고 취나물 데친 거 찬물에 헹궈 꼭 짜서 랩에 싸고 콩나물 씻어 둔 것도 비닐 팩에 넣고 손 바쁘게 움직여 싱크대 위를 깨끗하게 치웠다. 마치 저녁 준비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들어 온 남편.

“나 좀 태워 줘.”

“왜요?”

“그 형님이 택시 타고 식당가는 길에 자기 좀 태워 가라는 거야. 늘 내가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퇴근시간이니 택시 잡기도 힘들고 택시비도 많이 나오고. 당신 차는 경차니까 그걸로 가면 좋잖아. 갈 때는 내가 운전해서 형님 집에 들렀다가 식당까지 가면 당신은 우리 내려 주고 집에 오면 되잖아. 아님, 같이 저녁은 먹고 가던 지. 어차피 당신 아직 저녁 준비 전인 것 같은데 와서 혼자 해서 먹으려면 그렇잖아.”

“저녁은 무슨. 손님 계신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해요. 얼른 옷 갈아입고 준비해요.”

“뭐 입을까?”

“멋지게 입어요. 지난번에 산 까만 셔츠랑 까만 바지 입으면 되겠네.”

“너무 날라리 해보이지 않을까?”

“그래 보여요. 근데 멋있어요. 그거 입어요.”

그렇게 남편의 손님 집 근처까지 갔다. 차에 타는 손님이 말했다.

“어이쿠, 이거 제수씨 미안합니다. 나는 택시 타고 오는 줄 알고 가는 길이니 태워 가라고 했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그러면서 남편에게 한 마디 한다.

“야, 너 집사람한테 잘해야겠다. 이렇게 기사까지 해주고.”

대답은 내가 했다.

“남편이 제게 참 잘해주셔요. 고마워서, 그래서 이렇게 기사라도 해드리는 거예요.”

손님은 조금 당황스러운 듯 아, 예에~~한다.

약속 장소 부근에 내려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왔다. 

 

난 왜 작정(?)을 하고 저녁 준비를 했을까?

남편에게 잘해주기 위해서였다. 회사 일로 힘들어 하고 멀리 출장까지 갔다가 온 남편에게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위로와 기운을 북돋우어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준비한 선물을 받을 상황이 되지 못했다.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남편은 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밥상의 의미는 더더욱 모른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나는 남편에게 화가 난다.

기껏 자기 생각해 준비했는데 이게 뭐야?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서 남편에게 화를 내면?

이럴 때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나의 가장 큰 목적은? 남편에게 잘 해주기 위해서

그런데 지금은? 남편이 그걸 받을 상황이 못 된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남편에게 잘해주고자 했던 처음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럼 어떻게? 일단 곱게 대답한다. 그러라고.

그리곤? 저녁 준비하던 것을 모두 치운다. 남편이 미안해 할 테니까

그 다음엔? 그건 남편과 얼굴을 맞대고 난 후 상황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자. 어차피 오늘은 잘 해주겠다는 것이 목표였으니.

집에 온 남편은 약속 장소까지 데려다 달란다. 당연히 그런다고 해야지. 저녁 밥상으로 잘 해주겠다는 것은 순전히 나 혼자만의 계획이었지 남편은 전혀 모르고 있는 일이지 않는가. 지금 남편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약속 장소 까지 자신을 데려다 주는 것이니 잘해주겠다는 마음은 그래도 유지하면서 그 방법만 저녁상에서 운전으로 바꾸면 되는 것뿐.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잘해주겠다는 처음의 목표는 이루었으니까. 차에서 내리는 남편의 목소리에서 충분히 느끼지 않았는가. 그의 마음을.

“고마워. 조심해서 가.”

만약 내 방법을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집에서 저녁 먹는다고 했잖아요. 기껏 장봐서 종종 걸음 치며 저녁 준비하고 있구만. 사람이 정말 왜 그래요? 그런 진즉에 전화를 좀 해주던지. 아, 몰라요. 나가든지 말든 지. 그럼 바로 가지 집에는 뭣하러 와요.”

그러고 나면 내 마음은 편할까? 한편 남편은 얼마나 황당할까?

‘내가 바리 바리 장봐서 상다리 휘게 저녁상 차려 달라고 했나?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거야? 난 들 집에서 저녁 먹고 빨리 쉬고 싶지 다시 손님 만나로 가고 싶겠냐? 나도 힘들다네 이 사람아. 퇴근 시간 지나 일로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내가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화를 내는 지 알 수가 없군.’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만다는 화이트데이를 애인과 멋지게 보내기 위해 초밥 만드는 요리학원까지 다녔고 발렌타인데이에 주방 식탁 위에 초밥만으로 장식한 자신을 올려놓고 기다린다. 초밥을 올려놓고 꼼짝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걸려 온 전화. 자동응답기에서 들려오는 일이 있어 늦을 거라는 애인의 목소리. 결국 몇 시간이나 늦게 돌아 온 애인과 그를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난 사만다. 애인은 말한다. 전화했지 않느냐고. 그런 애인을 향해 사만다는 초밥을 집어 던디며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나 버리고 가방에서 그녀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꺼내며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 냉장고 옆에 서 있는 남자.

사만다는 왜 초밥 만드는 것을 배우고 힘들게 자신을 식탁위에 올려놓고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을까? 둘이서 멋진 발렌타인데이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사만다에게는 자신만의 계획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에 화가 난 것이다.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피치 못할 일이 있어 늦게 되었고 전화 연락도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일 때문에 지쳐 돌아오면서도 멋진 선물까지 잊지 않고 준비해왔는데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는 상황이라니. 극장에서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아, 사만다가 조금 일찍 나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물론 그랬다면 영화는 또 다른 갈등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사랑은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부부로 산다는 것이 조금씩 수월해지더라. 결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같이’ 있고 싶고 ‘같이’ 하고 싶어서 이었을 텐데.... 그런데 결혼은 바로 ‘같이’하고 싶지만 ‘같이’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많은 갈등들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저녁을 같이 먹고 싶고 화이트데이를 같이 보내고 싶지만 그 방법에서 그와 내가 함께 있지 않고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차지할 때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남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발이 커서 255를 신다보니 구두를 사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끔 찾는 것이 수입브랜드 매장이다. 물론 그곳에서도 내 발에 딱 맞는 구두를 그 자리에서 사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한 번은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 아이와 구두 매장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매장으로 들어섰다. 남편은 유난히 원색을 좋아하는지 보라색 셔츠에 흰바지를 그리고 주황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매장에 들어 선 남편은 직접 구두를 골라 무릎을 굽히고 앉자 아내의 발에 신겨 보았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나 어쩜 자상하기도.’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내는 서서 남편이 골라 주는 구두를 신어보기만 하면 되다니. 그런데 부부의 이런 대화가 들려 왔다.

“난 이거 베이지색이 좋은데.”

“뭐? 베이지색. 그런 색은 나중에 내 죽거든 그 때 신어라. 그거 말고 이게 좋다. 이거 분홍색도 이쁘고 오렌지도 괜찮네. 둘 다 할래?”

“너무 튀잖아요. 지금 신고 있는 것도 분홍색인데.”

“튀긴 뭐가 튄다고 그래? 그건 그냥 분홍이고 이건 핫핑크잖어. 구두는 이런 색이 이쁘지. 나는 검정색 베이지색 이런 건 딱 질색이다. 자 발 이리 줘봐. 얼른 이거 한 번 신어 보라니까.”

매장을 나오면서 내가 한 마디 했다.

“참나, 그 아저씨 참 자상도 하시네. 아내 구두를 일일이 신겨 보고. 그런데 행복할까?”

딸아이가 말했다.

“아닐걸요. 아주머니가 원하는 구두를 신지 못하잖아요.”

그렇다. 아내에게 핫핑크 구두를 권하는 남편과 베이지색 구두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내. 사랑은 이렇게 일방통행이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나는 결혼 예찬론자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결혼하라고 한다. 결혼해 살아보니 같이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 사람들은 묻는다. 남편이 어떤 사람이에요? 진짜 잘 해주나 봐요? 내 남편? 대한민국의 그저그저 보통남자다. 

그래도 이 남자와 사는 것이 행복하다. 2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그와 같이 행복해지는 비결을 알게 되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