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고아였습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고아도 아니고
어린 두 동생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였지요
철들고 아빠,엄마 불러본 기억이 없다는 친정엄마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이 부모있는
가정이였기에 신분차이 너무나 많아 견뎌야 했던
시어머님의 매질 남편의
폭력 폭언 냉대 속에서도 어린 날 제가 들었던
엄마의 한 마디는 내가 죽어 썩어 없어지는 몸이
되어도 난 엄마의 자리를 지키리라 하셨지요.
내 자식들을 엄마없는 새끼들은 만들지 않겠다
하셨었지요
엄마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이들이 엄마라 부르며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을 자식들에게
주는 것이라 굳게 믿고 살아오신 엄마
7남매의 엄마가 되어버린 어린 엄마의 간절한 소망
그래서 그 힘듦을 참아내며 한 번도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갈 생각을 못하셨지요
수없이 많은 제사를 올리는 종가집 며느리가 되어
엄마는 못하는 음식이 없으십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에 눈을 뜨시고는 엄마의 자리만
지켜주면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는데 가르치지 못한
것이 자식앞날에 큰 어려움임을 아시고 그 때부터 엄마는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 아픈 마음을 풀어 드리려고 전
혼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엄마는 좋은 음식 솜씨로
식당을 차렸고 내가 힘들게 살아가는 동안 혹 내 자존심이
다칠까 이런명목 저런명목을 지어 경제적 물질적 도움을
많이도 주셨습니다 친정에 한 번 다녀오는 날이면 작은 이삿짐을
방불케하는 많은 생필품과 반찬들 아이들 주머니까지
불룩하게 불려오곤 했었지요.
주시고도 주시고도 7남매 하나하나 이 자식에게는
이래서 죄인 저 자식에게는 저래서 죄인 그렇게
엄마는 죄인이 되셔서 누군가 힘들어 하는 기색이 보이면
이리저리 꿍쳐서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70평생 겉모습은 아직도 곱기만하고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목소리도 곱기만 한데 그 어린 나이 부터
지금까지 손끝에 물마를 시간없이 살아온 평생
그 어린 나이부터 모질게도 맞아온 매질
엄마는 이제 만신창이의 몸만 남으셨습니다.
이제 어느땐가 부터 전 친정엄마를 위해 보따리를 쌉니다.
친정엄마 가져가실 것들을 바리바리 챙깁니다.
늙고 병들어 가게도 접고 집에 들어앉은 엄마는 평생을
자식을 위해 자신에게는 양말 한 짝 사 신는 일이 드물었던
터고 그저 주고 베푸는 것만 몸에 배어 자식이 챙겨주는
것들을 낯설어 하시고 민망해 하십니다.
겨울 변변한 겉옷하나 없으신 엄마에게 이백만원에 근접한
옷을 하나 사 드렸습니다.
몇 십만원 당뇨있으신 걸음에 편안하라고 신발도 사드렸습니다.
변변히 들고 나갈 가방하나 없으시기에 몇 십만원 가방도 하나
사드렸습니다 심마니에게 부탁해 산삼도 몇 뿌리 구해드렸습니다
있어서 해드린건 아니고 갚을 능력은 될거 같아서
할부로 사 드렸습니다.
그렇게 가신 친정 엄마는 전화를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무슨 염치로 전화를 하냐 하십니다.
엄마가 수 없는 명목으로 챙겨주실때 전 당연하다 받아온 것들
이제 돌려드리는데 엄마는 왜 염치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쁘게 받으시면 좋을텐데 엄마의 그런 마음씀이 또 절 울립니다.
저에게 엄마가 그러십니다
너 살아온 건 내가 알고 하늘이 안다.
다른사람 같았으면 지금 이만큼 살면 골프다 해외 여행이다
돌아다니며 살것인데 그저 사무실에 앉아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고 열심히 살며 행복하다 말하며 웃는 너를 보면 자랑 스럽고
고맙다고 하십니다 세상에 절 알아주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일진대.
하물며 내 엄마가 그리 말씀하시고 내 남편이 그리 말하고
내 자식들이 그리 말해주는데 제가 어찌 게으른 삶을 살며
지난 날 그 삶도 살아 냈는데 지금이 어찌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엄마에게 작은 기쁨이 위안이 되는 딸이라면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 옛날 엄마와 이런 약속을 했었지요
내가 너무 힘들때 ~~~~
엄마가 나보다 살기가 좀 나으면 엄마가 나 좀 도와주고
내가 엄마보다 살기가 좀 나으면 내가 엄마 돕고 살게요.
그런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런 날은 왔는데
엄마는 그 약속을 다 잊으셨나 봅니다.
저 한태서 건너가는 작은 것들을 받아들고 가신 다음에는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전화를 안하십니다.
그래서 전 받을때도 마음이 아팠고 드릴때도 마음이
아프답니다. 어미母어미母
그 글자는 언제나 절 울립니다.
저 보다 백 배 쯤은 더 힘겨웠을 엄마의 삶.
하지만 언제나 저에게는 늘 하늘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