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동안 운동장에 가득~주차해 있었던 대형버스에 수십개의 방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올라탄다. 사흘 동안 입고 벗었던 옷가지며 시골마을에서 가지가지 농산물들을 봉지 봉지 사 들고는 종종걸음으로 잘가란 인사와 또 보잔 인사를 수선스레 하면서 비워둔 집으로들 돌아간다.
두가마니씩 하던 밥도 한가마니 반으로 줄어 들면서 세미나가 막바지로 접어 들고 오늘 드디어.....땡~~~` 사흘 동안의 세미나가 끝이 나고 마치 썰물처럼 사람들이 단 몇분 동안에 다들 빠져 나갔다. 서울로..전라도로..충청도로...제주도까지.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들었던 사람들이 사흘간의 교육을 마치고 가을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바삐들 돌아갔다.
연일 후끈거리던 주방에서도 가스불이 꺼졌고 스팀이 훅~~훅~~대던 식기세척기에서도 벙어리가 된 듯 아무런 반응없이 그냥 조용하기만 하다. 첫날에는 아킬레스근이 퉁퉁 부어서 걸음이 편치 않았었는데 맡은 책임이 무거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피곤한 기색이나 아픈 표정을 짓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써야만 했었다.
강당에 올라가기 전에 주방으로 날 먼저 보러와서 반가운 인사를 하는 고마우신 분들이 있기에 아파도 아픈 기색조차 맘 편히 못하는 어찌보면 좀 미련하기까지 한 내가 아편쟁이처럼 사람이 좋다. 사람들이 북적대고 와글와글.... 운동장이며 강당 또 식당에 까지 사람들이 차고 넘치면 아팠던 근육통도 허릿병도 어디로 숨어버리고 씽씽돌이가 되어 하하하하...밝은 웃음을 얼굴 가득 만발하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즐거운 사람이 되곤한다.
사람이 좋고 반가운 인사가 좋고 더 좋은 건 내가 꼭 필요한 자리에 서 있다는 자부심을 일어나게 해 주는 세미나 참석자들의 변함없는 사랑이다. 늘 한자리에서 그들을 반기고 씩씩하게 있어주는 내가 고맙단다. 그 사람들은 내게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고 내가 근무하는 곳의 주인들이다. 그런 주인들이 오래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를 오히려 고맙다고 그러신다. 고마운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난데도 불구하고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이 곳에 와서 쉰을 내일로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큰 딸도 시집 보내고 중년의 티가 완연한 중 늙은이가 되어가는 내게 깊은 정을 느끼며 이젠 가족같은 친근함으로 아프고 힘들 때는 진심으로 위로해 주시고 주방을 슬쩍 지나치시는 듯 하면서 한마디 하시는데 또 감격했다.
\"저기...나중에 집에 올라기기 전에 냉동실 문 좀 열어 봐~` 신문지에 뭐 좀 싸 뒀으니 한가해지면 달여 먹도록 해.\" 그 당시에는 그냥 아이~~뭘...고마워요~~ 그러고 말았는데 새벽 5시에 나와서 밤 8시가 넘어서야 주방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올라가려다가 낮에 한 말씀이 생각 나 냉동실 문을 열었다. 잘 보이는 곳에 신문지로 싼 비닐 봉지가 있길레 펼쳐 봤더니 아....... 냉동실 안의 비닐봉지에는 길다랗고 딱딱한 뭔가가 잡히는데 신문지를 천천히 펼쳐보니 녹용이 한쌍 돌돌 말려서 곱게 들어 있었다.
그 분은 작년에도.. 그 앞 해에도 늘 이 맘때 오시면서 녹용을 한쌍씩 가져다 주셨다. 세미나 준비하면서 우리 부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너무나 잘 아신다면서 여름 수련회 하기 전에 꼭 달여 먹고 힘내서 건강하게 잘 지내라시며 간단하게 인사만 하시고 오히려 본인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시는 참 소녀같으신 고운 분이신데 가을만 되면 산에서 밤을 따서 한푸대씩을 보내 주신다. 그것도 주먹만한 밤으로다가. 내다 팔더라도 꽤 큰 돈이 될만한 인물 좋은 밤톨이 와르르르... 푸대 가득~들어있다가 쏟아지면서 내는 건강한 소리 ..맛있는 소리. 난 별로 해 드린 것은 없고 그저 오시면 반갑게 인사만 잘 했을 뿐인데도 그분은 그런 내가 고마워서...밝은 얼굴로 반겨 드리는게 고마워서 그러신단다. 가을 내도록 할머니들과 밤을 삶아 나눠 먹고 친정집에도 좀 보내 드리면서 먹을 때 마다 그분을 기억하고 또 그분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어쩌다가 한번은 쉬운데 꾸준하게 이어지는 관심은 참 귀한 사랑이라고 본다. 얼굴이 잘난 것도 아닌 내가 학벌이 높거나 재력이 많은 것도 아닌 내가 수백명이 오가는 주방에서 땀이나 삐질삐질 흘리면서 거의 섬머슴 같은 복장으로 헐레벌떡 살아가면서도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는게 그저 송구하고 감사할 뿐임을 잘 안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킨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키고 있는 자리에서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속 마음은 집에 두고 늘 좋은 얼굴로 늘 반가운 인사로 살아 온 16년.
오늘 행사를 마치고 주방 2층 살림집에 올라 와서 그동안 주방에서 받은 크고 작은 종이가방을 쏟아보니 각양각색 오밀조밀 참 많이도 들어 있다. 멋쟁이 바지 (레이스 달린 ㅎㅎㅎ) 도 씽긋이 웃는 듯이 들어 있다. 외출날만이라도 남편한테 이쁘게 보이라며 바지를 주시던 그 분의 얼굴이 생각나 웃었다.ㅎㅎㅎ 전리품처럼 거실에 펼쳐 두고는 한참을 신기하게 구경한다. 꼭 명절날 새 옷을 선물 받았을 때 처럼 만졌다 놓았다..... 악세사리며 여러가지 생필품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그 하나하나에 그 분들의 사랑이 담겨져 있어 벅찬 감동이 밀려든다. 그 선물들을 준비하면서 내 생각을 하시며 많은 짐 속에 챙겨 오셨다 생각하니 과분한 사랑에 있을 동안만은 더 건강하게...더 즐겁게...더 신나게 지내는게 날 사랑해 주시고 챙겨 주시는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이겠지.
한 순간에 다 밀려 간 밀물처럼 정답고 그리운 분들이 다 떠난 빈 운동장에서 열기에 달아오르며 우툴두툴 엉망이 되어버린 밀감껍질같은 얼굴로 버스가 떠나버린 그 빈 자리에 마음 가득~`` 내 받은 사랑이 채운다. 떠나는 날까지 정들고 사랑 나눌 이 자리에서 건강 하나만은 철저하게 지키며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할 것 같다.
행사 전부터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몸과 마음이 끈 떨어진 연처럼 하늘 높이~~올라가는 것 같은 이 해방감.. 이 자유로움. 땀을 씻는 샤워를 하고 헐렁한 면 티셔츠를 입었을 때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운 이 기분. 어느 좋은 님과 함께 나눌까요?
그나저나 저 레이스가 야샤시~~한 스판바지를 언제 어디갈 때 입냐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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