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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이 보고싶은 날


BY 그대향기 2009-06-11

 

 

하얀 찔레도 다 흩어져 버리고

복스럽게 피었던 함박꽃도 눈물처럼 뚝..뚝...

서럽게 땅에 떨어져 버린 빈  화단에는

송엽국들이 저요~저요~하는 초등학생의 손바닥처럼

빨갛고도 앙증스럽게 빈 자리를 잡는다.

 

화려하게 오월을 맞이하고 즐겼다면

유월은 푸르름이 한창 무르익는 계절이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늘 미안한 계절이다.

큰 딸의 생일이 유월인데 어릴 적에는

학교 친구들을 방과 후에 집으로 불러서

조촐한 생일 파티도 열어주고 같이 즐기는 생일이었는데

우리가 이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는 일년 중에서

가장 바쁜 행사가 있어서 큰 딸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했다.

 

늘 할머니들 하고 같이 하는 식사가 아이들 한테는 잘 맞지 않았고

할머니들 위주로 하는 반찬이니 나물은 푹...물러 있기 일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매운 떡볶이가 아니라 궁중떡볶이 같은

안 매운 떡볶이니 애들은 덜 좋아했다.

어쩌다가 애들이 좋아하는 맴거나 쫄깃한 반찬은

할머니들에게는 질긴 음식이라 싫어하시니

늘 아이들은 불만이 많은 밥상을 받아야만 했다.

 

따로 차리게 되면 이중으로 일을 해야 하는 엄마가 너무 바쁘니

밥상에서 수다도 떨지 못하는 그저..조용히 앉아서 식사를 해야 하는

억지로라도  착한 아이들이 되어야만 했다.

생일 같은 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한두가지씩은 하지만

가족끼리 오붓하게 둘러 앉아서 도란도란 먹는게 아니라

할머니들의 생일 축하 노래에 길고 긴~`기도시간에(??ㅎㅎ)

국도 밥도 다 식은 밥을 총알 같이 먹고는 학교로 뛰어가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난 우리 애들한테 너무 미안한게 많은 엄마였다.

입에 맞는 반찬이 없어 인상을 찡그렸다가는 아빠나 나한테 혼나기 바쁘고

밥상에서 음식을 흘리거나 소리내며 먹다가는 더 혼나고

음식을 남겼다가는 할머니들의 은근한 눈치를 봐야 했으니

우리 애들이 받았을 스트레스는 아마도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하리라.

다행히 애들이 건강하게 자라줬고 지금은 그런 어려운 시기를 지냈던 걸

오히려 감사히 여기는 애들이 가슴 아픈 고마움으로 다가온다.

 

둘째와 막내는 생일이 좀 한가한 계절인데

큰 딸은 늘 바쁜 이 시기라 정식으로 조용한 생일을 차려주지 못했다.

결혼을 했으니 이젠  남편이 챙겨주고 시어머니가 챙겨주겠지만

저를 열달 동안 배 안에서 품고 길렀으며 큰 고통도 달게 받으며 낳은 어미로써

늘 이 맘 때 돌아오는 큰 딸의 생일이 미안스럽기만 하다.

큰 딸이 좋아하는 닭찜을 햇감자를 넣고 해 주고 싶은데

살얼음이 사르르르르...언 식혜도 해 주고싶고

수육을 많이 올린 시원한 냉면도 해 주고픈데...

 

리틀.

그 곳에서는 아무리 바빠도 생일은 잊지 마라.

둘이 사는 살림이니 이쁘게 생일 상도 차리고

작아도 사랑이 담긴 생일 선물도 받으며

네 난 날을 기쁨으로 보내렴.

한국에 있었다면 엄마가 뭐라도 좀 해 주겠구만...

마음만 보낼께.

한국에는  봄은 가고 이젠 여름이 완연하단 느낌이야.

거리에는 짧은 옷을 시원하게 입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찬 음식이 더 반가운 계절이 왔단다.

그 곳은 늘 따스한 날씨랬던가?

옷 값은 좀 굳겠네?ㅎㅎㅎ

 

잘 지내다가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랄께.

기다림은 반성도 함께하는 고마운 시간이구만.ㅎㅎㅎ

잘 해 줘도 후회가 될건데 엄마는 부족함 투성이었으니 더 하네.

너도 살아보면 체감할건데 세상 일은 마음과는 다를 때 많지?

엄마가 너희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하던 일들이

참 어렵고 불편했을거란 생각이 아마도 곧 들거야.

그러면서 너도 어른이 되어 갈거고.

좋은 경험 많이 하고 돌아오렴.

그럼 하루 일찍 네 생일을 축하하며 이만...

 

생일 축하한다.

부족한 엄마의 큰 딸로 내게 와 주어 감사한 내 딸..사랑한다.

경험이 없어 서툴렀고 어슬픈 엄마를 기쁘게 해 주어 고맙다 큰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