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유월이다.
점 점 열기가 더해가고 신록은 푸르른데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이 유월의 중순에 일 년 중에서 가장 큰 행사가 예정 돼 있고
그 행사를 선두로 여름수련회가 시작되면
사람몰골이 엉망이 되는 사우나걸(?) 이 된다.
사우나 걸이라고 이야기 하는건
큰 가마솥이 여러 개나 있어 그러찮아도 더운 주방이
식기세척기까지 들어 오면서는 더 열기가 심해져 찜질방 수준의 사우나 실이다.
학교의 급식소처럼 중식만 제공하는게 아니라
하루 세끼를 연일 해 대야 하는 주방은
열기가 식을 겨를도 없어서 늘 사우나실 같다.
지붕에서 열을 뽑아내는 환풍기가 (벤츄레타) 여러 대 돌아가도
워낙에 큰 열기구들이 많다보니 역 부족이다.
냉장고만도 대형으로 다섯대나 돌아가고
가마솥이 500 인분 두개
큰 국솥 역시 500 인분이 서너개 올라가서 끓어야 하니
그 열기가 대단하다.
식기세척기는 늘 온수가 스팀을 달고 쒹~쒹~거리고 서 있으니....
여름수련회가 방학이 되자마자 시작되면
8월 중순이 넘어가야 좀 식는다.
그 두어달의 여름은 그냥 방에 앉아 그늘에서 쉬어도 더운데
열기가 그득~한 주방에서 새벽부터 열과의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나는
여름에는 사람들 만나기가 두렵다
늘 열에 들뜬 얼굴은 누리팅~~팅~`하고
스킨조차 바르지 못하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는
목에까지 돋은 땀띠가 울긋불긋 자잘한 붉은 모래알을 뿌려 놓은 듯 하고
면 티셔츠나 바짓단에는 땀이 말라서 생긴 허~연 테두리가 벨트처럼 둘려져 있으니
모르는 사람들이 날 처음 만나게 된다면 영락없이 걸인의 모습이다.ㅎㅎㅎ
그런 여름을 앞세운 유월 어느 날.
옥상 내 화단에서 작고 이쁜 꽃을 피운 화분에서 잡초를 뽑는데
어느 사이 뒤에 왔는지 모를 남편이 한마디 한다.
\" 당신은 수련회 안 하고 집에서 꽃이나 가꾸고 살았으면 좋겠지?\"
잡초를 뽑던 손을 쉬지 않은 채 뒤 돌아보니
남편이 쓸쓸해 뵈는 미소를 보이며 다가 올 여름이 걱정인 아내를 내려다 보고 서 있다.
\"아~~니~~이렇게 짬짬이 꽃 가꾸는 것도 즐겁지~~`
왜?. . 내가 그렇게 보여? 쉬고 싶어하는 아내로???...\"
솔직히 여름이 두렵긴 하다.
그냥 할머니들 식사나 준비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다.
남들은 할머니들 식사 준비도 어려울 거란다.
서너명 가족들의 식사도 여름에는 버거운데 여러분의 할머니들 식사는 안 버거우냐며...
조금 많은 500~800 명 인원들 식사를 준비하니 열댓분 정도는 아주 가볍게~~ㅎㅎㅎ
나도 살랑살랑 ~하늘 하늘한 여름 옷이나 입고
시원한 그늘에서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꽃을 가꾸며 유유자적 살고싶다.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여행길이 좋고
지역마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축제에도 가고 싶고
더 여유롭다면 해외여행도 가끔 다니면서 다른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경험하고
낯설고 흥미로운 문화도 접해 보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람들마다 가정마다 계획이 있고 미래를 위한 투자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정에는 가장 큰 지출이 있을 시기.
둘째나 막둥이의 학비가 가장 큰 지출이겠지만
좀 느긋한 노년을 위한 투자도 빼 놓지 못할 지출이기에
그 큰 항목들을 무리없이 메꾸어 나가자면 지금 내가 감당하는
이 육체적인 노동이 더 연장선에 있어야한다.
큰 사업을 하는 우리 부부가 아니기에 월급쟁이 월급이 빤~하니
꾸준한 지출에는 질긴 인내력을 발휘하는 성실이 최고리라.
남편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내가 더 도와야 하기에
애들이 좀 더 성장하는 그 날까지만 돕고 그 나머지는 봄날의 노랑나비보다 더 가볍게~~
민들레 홀씨보다 더...더...더..자유롭게 날아가리라.
가볍고 자유롭게 내가 꿈꾸는 일을 하면서 살리라.
비록 그 일이 남들보기에는 하찮은 일이라 해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일이 될거니까.
밖의 날씨가 35 도가 넘으면 주방은 그보다 몇도는 더 덥다.
그 사우나실에서 사우나 걸이라 스스로 칭하면서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은 며칠 전에 은혼식을 지낸 우리 부부가 건강하고
삼남매가 건강하니 감사함이다.
그리고 16 년 근속기간 동안 음식물 큰 사고 없이 수련회도 잘 치루었고
수만명이 거쳐가는 동안에 마지막 나가는 날 주방에 일부러 찾아와서
주방장을 찾아서 2박 3일 잘 먹고 나간다고 인사를 해 주고 가는
사람들이 내게는 무엇보다 큰 상인 것이다.
그 한마디에 동안의 모든 무덥고 짜증스러웠던 일들이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을 비운 듯
모든 땀방울 깨끗이 씻어내린다.
난 또 마약을 주사 맞은 듯 헤벌쭉.....입이 벌어지고 얼굴 가득~~미소가 가득 .
땀에 절은 앞치마를 말아 쥐며 함박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배웅한다.
그들이 감사하다는데 내가 더 감사한 날들이다.
별로 똑똑하지 멋한 주방장이 그저 애들 탈 안나게 차린 밥상이
이틀 사흘 동안 건강을 지켰다 생각하니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지는 시간이다.
아마도 난 또 올해의 여름을 그렇게 살겠지....
또 더위와 싸우며 땀줄기들과의 동거를 하면서....
그래도 내가 행복 할 수 있는 것은 아직은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료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폼나고 우아한 일이 아니더라도
정직하게 육체적인 노동을 하고 그 상으로 받은 급료로 꽃도 사고 책도 사고
더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한테 작은 선물이라도 전하면서 살아도 좋다는 거다.
그래도 가계부에 큰 무리가 안 간다는데 위로를 받으며 오늘도 씩씩하게 일을 즐긴다.
머지 않은 날에 정말 남편의 말처럼 느긋하게 꽃이나 가꾸며 사는 날을 꿈꾸며
오늘은 또 일을 해도 즐겁게 할 것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노동의 댓가가 나를 여유롭게 하는 것을 알기에
편안하고 자유로운 중년의 평화로움을 보장받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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