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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66

감기


BY 27kaksi 2009-06-05

아주 심한 감기 몸살로 며칠을 앓았다.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처방해주는 약을 지어다 먹은지가 일주일이

 

 넘었다. 별로 차도가 없다.

 

목이 잠겨 목소리는 웅웅대고, 약이 독한지 먹고나면 계속 속이

 

 아프고 잠으로 빠져들곤 한다.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을 받으며 복잡한 꿈을 꾸기도 하고....

 

꿈인지 잠인지 그런상태로 깨어나 보니 늦은 아침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자기 일들을 찾아 나가고 없고....

 

머리가 빠개질 듯 아프다.

 

어릴때 엄마가 아플 때는 유난히 잘해주니까 아픈게 더 좋다는 어

 

이없는 생각을 했던게 기억난다.

 

누군가 따뜻하게 잘해준다는 것....

 

그것은 깊은 잠에서 깨어 나면 옆에서 이마도 만져 주고, 걱정어린

 

 눈으로 내려다 봐 주던 엄마의 눈빛에 대한 그리움이다.

 

우습게도 이나이에 누군가 엄마 처럼 옆에서 따뜻하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래진다.

 

내가 좀 외로운가 보다.

 

막내딸-그것은 나의 어릴 때 이름이다.-

 

참 작고, 약한 계집아이였다

 

막내라는 이름 뒤끝엔 쉰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고, 그래서인

 

지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지없이 감기를 앓았다.

 

지금은 신종 인프레인자 까지 생겨 감기가 죽음에도 이르는 무서운

 

병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기침을 막기위해,

 

파뿌리에 생강을 넣어 끓인 물을 마시게 하는 대수롭지 않은 병이었다.

그래도 여러날씩 밖에 나가지 못하고 방에서만 지내는 날이 많았다.

어리광만 늘었다.

 

\"어쩌나! 우리 막냉이가 이렇게 아파서....\"

 

그러는 엄마의 말투가 좋았고,

 

무엇 먹고 싶은게 없느냐고 계속 묻고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 엄마

 

가 좋았다.

 

누룽지를 부드럽게 끓여서 조기살을 발라 수저에 얹어 주기도 하고,

 

녹두죽을 끓여 주기도 하셨다-우리 엄마의 녹두죽은 별미였다-

 

나이 차이가 많은-큰오빠와 나는 무려 20년이 넘는 차이가 남-

 

 오빠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 오면 막내가

 

아프니 잘해주라는 당부도 빼지 않으셨다.

 

방에 누워 찬바람을 몰고 들어오는 형제들의 시원한 기운이 날

 

설레게 했던 어린시절.....

 

잘생겼던 오빠들은, 말이 없던 언니는, 조그만 내 손을 잡고,

 

\" 막내, 또 감기야? 으이구...\"

 

하며 볼을 꼬집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 박기도 했었다.

 

늦둥이 막내가 늘 약해서 아프길 잘 하는게 안스러워 해서는

 

큰오빠는 날 잘 업어 주기도 했었는데, 넓은 등에 업혀 잠이 들면

 

얼마나 편안하고 좋았던지....

 

난 오늘 그때가, 그날이 기억이 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감기로 인해 막내병이 도진 이 지천명의 아줌마, 감상에서 벗어나

 

털고 일어나야지....

 

내가 사랑으로 보살필 가족이 넷이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