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혼 할 무렵
우리 시아버님께서는 아주 멋진 중년 신사였다.
살이 찌지도 않고 키도 훌쩍하여 너무나 멋진
그리고 몸태를 보아도 어디 하나 굽은데 없이 반듯하였다.
엷은 회색 양복이 아주 잘 어울렸었다.
그렇게 멋진 중년 신사가 나이가 드러가면서 점점 볼품없는,
가족들에게 소외당하여,
어쩌면 버려진듯한
이렇게 늙어버린 우리 아버님이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릴적 성장 과정을 생각했다.
그야말로 지체 높은 가문에 종손으로 태어나
\"복\"을 있는대로 누리셨다.
선대 조상님들이 세도가임에 누리던 가문에 명예도 그렇거니와
그 가문에 자손이 없어 양자를 들여 자손을 두었는데
그분이 바로 \"우리 시아버지\"이시다.
그러니 당연히 가문에서 떠받들어 모든것을 다 해주는
그래서 우리 아버님은 누군가가 항상 뒷바라지를 해 주어야만하는
그속에서 희생당하신 분이 우리 어머님이시다.
그러니 남편에 대한 불신과 심화로 늙어갈수밖에.
우리 아버님이 가장 문제이신것이 경제력이 없는 것이다.
외갓집 도움으로 은행에 취직하여
내가 결혼할 무렵 은행원이셨다.
그런데 무슨 마음에서인지 일찌감치 명예퇴직을 하셨다.
퇴직금 조금 있는것은
언제나 무엇을 한다고 다 날려버리고
그야말로 밥줄이 없어 5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자식들이
생활비를 떠안고 살고 있다.
경제력없는 가장 밑에서 사는 모두가 다 희생을 치루어야만 했다.
어머니도 우리 남편도 시누이들도 그리고 따지고보면 우리 시동생도
모두가 희생자임에 안쓰럽기 한이없다.
어머니 병세가 많이 호전되어가고 있다.
병명이 아주 어이없었다.
목과 혀 부분에서 음식을 씹어 밀어내어 삼키는 일이 마비가 되었다 했다.
살고 싶지 않으셨겠지
아버님곁으로 죽어도 가기싫타 하시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혼 이혼이라는 것이 있다더니 아무래도 황혼 별거라도 시켜야 할까보다.
이번 기회에 우리 아버님이 마음을 새롭게 다져나갔으면 좋으련만.
\"아버지 당신 바보\"
저도 어릴적에는 그랬내요.
온 동래에서 떠받들던 좋은 가문의 자손이어요.
그래서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정말이지 견딜수가 없었답니다.
양반가의 자녀임에 험한 곳엘 가서도 안되고 험한 일을 해서도 안되고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첫번째로 견디고 이겨야하는 정신병이었지요.
아버지도 그걸 견디셨어야지요.
어떻게 해서라도 가족들에 대한 책임은 지셨어야지요.
세상이 변하면서 양반과 상놈이 따로 없었으며
돈이 많은 사람의 지체가 하늘처럼 올라가는데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신 \"당신 정말 바보\"였어요.
아버님이 손주들한테는 정말 훌륭한 할아버지지요.
친손 외손 차별도 없고,손녀 손자 차별도 없고
이렇게 훌륭한 할아버지임에 손주들은 모두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어
오늘날 이렇게 쓸모없는 잔소리꾼에 어머님한테 별로 대단치 않는 남편임에
자식들은 한결같이 부모에대한 걱정 근심을 털어버릴수가 없는데
며느리 나는 어째야 되는건지 .
한때 사랑을 받았던 며느리임에 너무나 가슴아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