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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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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만우절


BY 선물 2009-04-24

다들 너무 들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욕심을 부린 것이 화근이었다.

공식적으로 거짓말이 인정되는 만우절.

뭔가 확실한 추억이 될 만한 이벤트 만들기에 혈안이 된 우리들은 그럴싸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등장하던 아이디어가 학급차원으로 발전되더니 급기야는 3학년을 제외한 전교생이 공범이 되어 학교를 발칵 뒤집을 만한 사건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2교시 수업시작 전, 1, 2학년이 서로 교실을 바꾸자는 것이 그날의 미션이었다.

1학년은 지금 소속된 반의 2학년 교실로 가고 2학년은 작년 자기 반 교실로 가서 수업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1학년 때 4반이었던 나는 마침 2교시가 체육수업이라 교실 대신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향해야 했다.

좀 귀찮은 감은 있었지만 큰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선생님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기를 바라는 공범자들의 눈망울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결코 보지 못한 제대로 살아 있는 눈빛들이었다.

운동장에서 1학년 때 반 친구들을 만나니 우선 반갑고 흥분되었다.

뭔가 기막히게 낭만적인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다들 신나라 떠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왁자지껄 하던 웅성임은 가라앉고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이 운동장을 한 바퀴 휘감으며 지나갔다.

멀리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시는 체육선생님을 발견한 직후의 일이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1학년 때 반장을 했던 친구가 차렷, 경례를 하는 사이 미처 분위기 파악을 못한 몇몇 둔한 친구들이 고개를 숙인 채 킥킥거리며 웃고 있었다.

잠시 멈칫 하시던 선생님은 단박에 눈치를 채셨다.

그러나 범 학교 차원에서 전교생이 움직인 사건이란 생각은 미처 못 하신 것 같았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원산폭격을 명령하셨다.

다들 숙련된 동작으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했다.

우리가 취하는 원산폭격이란 두 손을 뒤로 한 채 머리를 박는 정통적인 것이 아니었다.

여학생이 하기엔 좀 무리라고 판단하셨는지 선생님은 엎드려뻗쳐를 한 자세에서 두 주먹으로 몸을 지탱하게 하는 변형적 원산폭격을 시키신 것이다.

왜 하필이면 재수 없게 체육시간에 걸렸을까 하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원산폭격쯤은 능히 감당할만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은 가중되었다. 팔이 덜덜 떨리고 손에 박힌 자잘한 돌멩이 따위가 제법 따끔거렸다. 그 와중에 누군가 교실 쪽 복도를 보라는 말을 했다.

각 교실의 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면서 키득키득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 체육선생님의 몽둥이에 엉덩이를 맞은 채 운동장 바닥에 털퍼덕 널브러졌다. 아이들은 다시 일사분란하게 정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운동장엔 전교생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을 들고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구령대 위에서는 학생대표가 대표의 본분을 다하느라 엉덩이에 쏟아지는 선생님의 몽둥이 세례를 묵묵히 참아내고 있었다.

우리는 선생님들께도 즐거움이 될 수 있는 이벤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전교생이 수업을 몽땅 망치게 되는 바람에 학사일정에 큰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이 된 우리들은 이런 예기치 못했던 상황까지 포함해서 모두를 즐기고 있었다.

각자의 교실로 들어간 아이들은 체육시간이라 특별히 더 고생이 많았던 나를 포함한 몇 친구들을 위로했지만 진심으로 보이진 않았다. 사실 위로받기엔 우리들 표정이 너무도 밝았다.

 

세 째 시간부터 수업은 정상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난리를 겪고도 아이들의 장난기는 좀처럼 자제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 준비해 온 녹음기를 틀었다.

딩동댕동

수업 마침 종이 울렸다.

선생님은 부리나케 수업을 종료하시고 복도로 나가시다가 고개를 갸웃거리시더니 다시 들어 오셨다.

누구 짓이야.

선생님은 언성을 높이셨지만 금세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나마 편안하고 만만한 선생님을 골라 장난을 칠 혜안 정도는 마련된 우리들이다.

선생님은 장난도 심하면 웃음보다는 짜증을 불러일으킨다며 오늘은 이 정도로 그쳐달라는 주문을 하셨다.

그러나 이왕 벌어진 판이니 만큼 우린 즐거움의 끝까지 내닫고 싶은 욕구를 이길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우리는 분필을 잔뜩 묻힌 지우개를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교실 앞문 위쪽에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교실 문을 몇 친구가 막고 있었다.

살짝만 선생님 힘을 뺄 요량이었다.

5교시는 마침 맘 좋으신 지리 선생님의 수업시간이었다.

앞문이 잠깐 삐걱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뭔가 불안했다.

평소에는 순하시지만 일단 한번 화가 나시면 생각 이상으로 무섭게 변하실 수도 있는 분이라서 우리는 장난을 멈추기로 했다.

앞에 있던 친구들 모두 다 제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당시 교실 문은 여닫이가 아닌 미닫이였다.

잠시 후, 뭔가 심상찮은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달리긴지 잰 걸음인지 모르지만 다다다다다!!!!!

선생님은 힘으로 문을 여실 작정이셨던 것이다.

그러나 문은 열려 있었으니 오히려 과도한 선생님의 힘이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선생님의 자그마한 몸은 가운데 놓인 교탁까지 밀어 붙이고 말았다.

예상 외로 힘이 강한 장하신 우리 선생님.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분필지우개가 선생님의 쾌속 질주로 인해 제 기능을 못하고 뒤늦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긴장한 우릴 향해 씨익 한번 웃으시더니 바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니 하는 의미를 담은 넉넉한 웃음.

선생님들은 그날 전체적으로는 엄하게 다스리셨지만 한분 한분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장난을 이해해주시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날의 만우절행사는 성공 중의 성공이었다.

지금까지 한 해의 예외도 없이 만우절만 되면 생생한 즐거움을 주는 추억이 되어 굳건히 부활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