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11

아마도 이 걸음이 마지막이지 ..싶구나.


BY 그대향기 2009-04-18

그저께 목요일.

화려한 벚꽃은 졌지만 한창 피기 시작하는 영산홍이랑 조팝나무 고운 아기 손 같은

붉은 단풍들이 피어있는 예쁜 교회를 다녀왔다.

사돈댁.

며칠 전에 사돈댁에서 연락이 왔었다.

우리가 모시고 계시는 할머니들을 한번 모시고 싶다고...

벌써 언제부터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그러셨지만

서로의 시간이 잘 맞지도 않았고 계절적으로도 좀 그랬다.

큰 딸을 대학졸업도 하기 전에 결혼시키고 또 서너달 후엔

너무 먼 나라로 신랑따라서 보낸 친정엄마인 나를 위로 해 주신다며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는데 참 시간이 어려웠는데

며칠 전에는 꽃소식을 알리시면서 한번 방문해 달라셨다.

 

마침 내가 친정엄마를 나 사는 창녕으로 초대한 주간이라

같이 가셔도 괜찮겠느냐고 여쭙고 시원스런 승락을 받았다.

오빠 내외와 친정엄마까지 다 모시고 우리집 할머니들까지

대 가족의 방문이었는데 사돈이라기 보다는 친정의 큰 언니 같은

안사돈의 환대는 다른 할머니들까지 즐겁게 만들었다.

격의없이 포옹하시고 \"사랑합니다~\" 하시며 활짝 웃으시는 사모님.

물론 교회의  사모님이시다보니 늘 교인들에게 밝은 웃음과

정겨운 인사가 몸에 배인 탓도 있으시겠지만 사모님은 늘 푸근하셨다.

 

창원 시내를 조금 벗어난 산 중턱에 지으신 아름다운 교회는 별장처럼 이뻤고

한창 피어난 동백의 화려함도 빨간단풍잎의 환영손짓도

사모님의 웃음에는 무색하게 다가왔다.

짧은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우리 엄마가......

무릎이 너무 아프던 엄마는 아예 네발로 기어서 돌계단을 오르신다.

사돈댁이라는 어려움도 엄마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돌계단을 다른 사람 부축없이 오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두 손과 두 발로 정말... 정말 ...네발 달린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오르고 계셨다.

창녕에 도착해서부터 엄마는 그러셨다.

\"이번 걸음이 마지막이지 싶어서 내가 기어코 따라왔다.

 니 사는 것도 눈에 담아가고 외손녀 시댁도 한번 보고 내 사돈한테 외손녀 잘 봐 주라꼬

 인사를 깍듯이 드릴라꼬 이리 다리가 아파도 따라왔니라....\"

 

그런 엄마는 돌계단을 기어서 올랐고

내가 안사돈이라고 소개해 드렸을 때

사모님을 만나자마자 냉큼 두 손을 잡으시더니

\"아이고..사돈이십니꺼?

 지가 민지 외할미라요.

 우리 외손녀 이뿌게 봐 주시이소~

 외할미야 이리 땅강아지만하지만 외손녀는 훤칠하지요.

 내 딸이 큰께 우리 외손녀도 크지요. 외할미 안 닮은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러시며 엄마는 검버섯이 거뭇거뭇 피어있는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외할미가 되어서 이리 사돈댁을 찾아와도 실례가 안 되었는지...

교회가 너무 이쁘고 안사돈도 좋아뵈고 바깥사돈도 인물이 훤~하다시며

엄마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실 듯이 즐거워하셨다.

또 목사님을 만났을 때에는 같은 김해 김씨임을 알아 내시곤 활짝 웃으시던 엄마.

목사님한테는 김유신장군이 같은 김씨라며 즐거워하시고.....

김유신장근이 진짜로 김해 김씨인지는 확인 할 도리가 없지만.ㅎㅎㅎ

이런 엄마가 무식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딸 사랑이 넘치고 외손녀 사랑이 극진하다는 느낌 뿐.

가식없이 엄마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4천여평에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에 홀딱 반해있었다.

 

곧 진해로 자리를 옮겨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했다.

푸짐한 산나물에 된장뚝배기가 일품인 산채비빔밥은 비빔그릇이 탐났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수백명씩을 비빔밥 하는 날에는 그릇 무게만도 엄청 났는데

그 집 비빔 그릇은 이중으로 된 그릇인데도 무게감이 별로 없었고

그릇이 이중이라도 중간에 공기층이 있어서 무겁지도 쉬 식지도 않아 보였다.

그릇도 우묵한게 몇개만이라도 훔쳐 왔으면...할 정도로 탐이 났다.ㅎㅎㅎ

어찌나 손님이 많던지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리도 없을 뻔.

점심식사 후에 우리 일행들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사모님은 우리 일행들의 선물을 한아름~차에 실어 주셨다.

친정 엄마와 오빠내외 우리 직원들 선물까지.

각자의 간식주머니에는 한라봉 하나와 사과 하나 병 음료수와 쑥떡에 전병과 제리...

먹고 나서  손을 닦으라시며 물수건 두툼한 것 한통씩.

세심한 간식주머니에 티셔츠 한장씩.

우리꺼엔 따로 화장품세트를 더 넣어 주셨다.

미국사시는  사모님의 큰 딸이 보냈음직한 화장품 풀 세트.

작은 딸도 같은 창원에 사실건데 풀 세트를 나한테 주신 모양이다.

특히 썬크림을 강조하시며 늘 바르고 다니시란다.

시골 볕이 강하고 자외선이 해롭다시며 ....

할머니들은 감동을 받으신 모습이 역력하시다.

그냥 간식박스를 실어 주시는게 아니라 각자의 주머니를 따로 일일이 포장을 하셔서.

고맙고 감동했던 목요일.

 

엄마는 다시 창녕으로 오셔서 나의 화단을 구경하시고 분재들도 보시면서

돈 벌어서 적금은 않고 나무만 샀느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하셨지만 좋은 모양이시다.

오빠와 올케도 얼굴 가득...흐뭇한 미소가 피어났다.

하나뿐인 여동생이..하나뿐인 시누이가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것 보다는

제법 여유로운 모습으로 사는게 좋아 보였던 모양이다.

저녁으로는 복전골로 시원하게 대접해 드리고 엄마와 오빠내외를 배웅해 드렸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빠는 기숙사에 가 있는 막내의 용돈까지 챙겨주신다.

건강이 좋지 못해 일도 쉬고 있으면서 하나뿐인 여동생의 막내아들까지 다 챙기신다.

엄마는 달리기 시작하는 차 창을 열고 또 그러신다.

\"아매도 이게 내가 마지막이지 싶구나.

 막내를 못 보고가서 안됐구나.

 멀리 가 있는 큰 외손녀도 못 보고..

 둘째는 자주 오나?

 다 한번 보고 싶구나...\"

정말 그럴까?

정말 엄마가 이 걸음이 마지막이실까?

내가 가지 않는 한 엄마는 혼자 걸음으로 우리집엘 못 오신다.

걸음걸이가 이젠 거의 무너져 내리는 수준이시다.

뭘 붙들지 않으면 일서서지도 못 하시고 계단은 아예 절벽이시다.

 

엄 ....마.....

 

밤 늦은 시간에 집에 잘 도착했다는 오빠의 전화가 왔다.

엄마한테 이번 여행은 기쁨과 슬픔이 같은 무게 일 듯 하다.

당신이 키운 딸의 안정되어 가는 살림과 외손녀의 시댁까지 둘러 보시며

흐뭇한 웃음을 지으셨지만 정작 당신의 저물어감은......

그루터기.

엄마는 그루터기.

가지며 나뭇잎까지 다 내 주어도 그루터기는 남아서 언젠가는 떠나간 새들이

그 그루터기에 앉아줄 시간을 기다리는.....

내 미니홈피에 올라 온 사모님의 글에는 그 날의 만남이 즐겁고도 감동이었다는 말씀.

사모님의 막내 며느리(우리 딸)를 위한 많은 할머니들의 기도와 관심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말씀과 막내 며느리를 많이 이뻐하신다는 고마운 말씀이 올라 있었다.

그 날 헤어지는 시간에 날 껴 안으시며

\"사랑합니다~사돈~~\"

나는 엉겹결에 안김을 받은터라

\"미투요~~\"

와르르르르.........

한바탕 웃음보를 날리며 사돈들의 만남을 즐겁게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