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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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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어린아이 같으신


BY 자화상 2009-03-31



 

날이 갈수록 친정어머니의 병세는 호전 되어 우린 감사하였다.

작년 여름엔 영영 우리 곁을 떠나실 것만 같았었다.

2년 만에 귀국한 큰 오빠와 조카 그리고 친정아버지 모시고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갔었다.

어머니는 한사람씩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 하셨다.

그 중에 당신 큰 아들 되는 오빠의 손을 놓지 낳으셨다.

“너는 꼭 나 닮았어야.”

하시며 아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올해 나이 쉰아홉 되는 오빠는 오랜만에 뵌 어머니가

안쓰러워보였는지 눈물을 글썽였다.

“맛있다.”

그러시며 아이처럼 오물오물 딸기와 바나나를 맛있게 드시고

후후 불며 커피까지 드시는 걸 지켜보며 우린 모두 흐뭇해하였다.

지난 가을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호스를 통하여 주사기로

미음을 드셨었다.

우리들은 안타까워 걱정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아져서 휠체어에 앉아 우리와 마주보고 웃고

음식을 드시니 내 마음 안에 감사함이 가득 차올랐다.

 

어머니가 좋아 하시는 장어구이를 드시도록 모두 식당으로 갔다.

상추에 싸서 입에 넣어 드리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으셨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건만 좀 더 나은 모습이 아니어서

마음 한구석에 애잔함이 젖어 들었다.

거의 1인분하고 또 반을 더 드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정작 오빠는

입맛이 없다며 먹지를 않았다.

너무나 빨리 생로투병으로 딴 사람의 모습처럼 변한 어머니를 보고

오빠는 많이 슬퍼했다.

빨개진 눈을 안 보이려고 화장실에 가더니 오래 있다 나온 오빠의 심정을

눈치 차린 나 또한 입맛을 잃었다.

그러나 이만 하기가 다행이라 여겨야지 어찌하겠는가.

누구보다 당사자인 어머니께서도 당신의 처지가 슬프실 텐데

내색을 안 하시는지 체념하신건지. 물을 수가 없다.

 

식사 후에 따듯한 햇볕을 찾아다니다가 시골길을 걸었다.

아직 발가락이 채 낫지 않아 절뚝거리며 뒤 따르던 내 눈에

노란 꽃 한 송이가 보였다.

밭둑아래 홀로 피어 있는 수선화와 이미 피었다가 먼저 지고 만

수선화 두 촉이 나를 불렀다.

어떻게 해서 나란히 거기 살게 되었는지 신기하였다.

곱게 뿌리 상하지 않게 뽑아서 가져와 화분에 심었다.

볼 때마다 친정어머니가 생각날 것 같다.

자주 못 찾아뵙지만 추운 겨울을 밭둑에서 이겨내고 봄을 맞아 마침내

꽃을 피워 낸 수선화처럼 건강하시라는 기도만은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