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난 일인데도 맘이 편칠 않다.
그냥 들어오시라고 그럴걸...
해 놓은 밥에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될 일을...
그 개도 안 물어갈 얄미운 성질머리로
허전한 발걸음이 되게 하시다니.
내가 생각해도 참 옹졸했고 치사한 일이었다.
내 치사빤쭈같은 성질을 여기다가 고백해 놓으면 좀 용서가 될라는지..ㅎㅎ
우리 집은 보통 가정 집이 아니다.
해마다 큰 행사도 많이 치루고 학생들 수련회도 많은
4000 평이나 되는 제법 큰 건물이다보니
정기적으로 방역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방역필증도 받아야 하고.
한번씩 할 때 마다 적잖은 비용도 들고.
벌써 여러 해 동안 한 업체가 방역을 도맡아서 하는데
이 방역회사 아저씨는 어쩌다 한번이 아니고
방역하는 날마다 점심시간을 맞추어서 오시는 거였다.
꼭 내가 점심하러 내려가면 오렌지색 방역복을 입으시고
\"안녕하십니까? 사모님..골고루 잘 해 놓겠습니다~~허허허허..\"
내가 어디서 있건 잘도 찾아내시곤 인사를 크게 하신다.
첨에는 나도 반갑게 마주 인사도 받았는데 어느 날 부턴가는
은근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오전 일찍도 있고 오후 늦게도 있는데
꼭 점심 먹을 시간에 맞추어 오시는 것이 얄밉기까지....
좀 일찍 오시지...
안 그러면 좀 늦게 오시던가...
일을 한두번 다녀보면 그 집 점심시간대를 알만도 한데
어찌 매번 그 시간대에 오시냐고...
그것도 가족이 식사하는 것도 아니고 늘 많은 식구가 있는 집에를...
어쩌다 한번은 실수라 하지만 매번 그 시간대에 맞추어 나타나는
그 방역회사 직원이 얄미웁기 시작하자
급기야 난 죄를 짓고 말았다.ㅎㅎㅎ
며칠 전에도 또 그 시간대에 오신거다.
방역은 일찌감치 마친 눈친데 느티나무 아래에서 다리쉼을 하시다가
내가 큰 주방에 뭘 가지러 나가니까 얼른 일어나시더니
방역필증을 내 미시며 총무님 드리면 된다고...
난 얄미운 생각만 있던 터라 방역필증만 받아들고
점심 드시고 가란 이야기는 끝내 하질 않았다.
다른 때는 좀 미운 마음도 있었지만 일부러 환한 얼굴로
\"고기반찬은 없어도 점심 드시고 가세요~~\"
그러면 직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따라 나서셨다.
그런데 그 날은 그 인사를 안 했다는 거.ㅎㅎㅎ
그 직원 약간은 머뭇머뭇.........
내가 식사 초대를 안하는게 좀은 머쓱한지 자꾸 방역필증을
총무님(남편) 드리라며 내 손에 놓질 않는다.
난 그 망설임의 의미를 알기에 얼른 받아들고는
\"그냥 드리면 되지요? 수고하셨어요...\"
그러고는 점심준비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고 있었다.
밥이 다 될려면 아직 20~30 분이 더 소요될 시간.
앉아서 기다리란 이야기도 할 법 하구만 난 안....했다.
내 속에서 아저씨는..얼른 가시면 다른 곳에서 점심 드실 수 있잖아요.
맨날 우리집에서만 밥 해결하실려고 그래요?
오늘은 안 드리고 싶어요.
방역비도 안 깍아 주면서 맨날 밥만 드시고...
내 안의 악마적인 기질이 그 날 발동을 한거야.
그냥 평소대로 식사하고 가시라면 될 것을...
그 날은 왜 그렇게 야속하게 굴었을까?
한두사람 오시는 것도 아니고 한 두번 당하는 일도 아닌데..
오늘 낮에만 해도 시설을 둘러 보러 오신 목사님을
우리가 차린 밥상에 모시질 않았던가?
예고도 없이 손님이 덜컥 오시면 좀 당황스럽긴 하다.
16 년차 베테랑 주방장이라 해도 시장은 멀고
손님상에 바닷고기라도 한접시..남의 살이라도 한접시 놔야
상을 차린 것 같아서 아무리 많은 야채가 있어도
막상 손님 상이라고 차리려면 좀 부답스럽다.
손님이야 갑자기 들이 닥친 일이라 있는데로 주세요...그러지만
차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디 그런가?
낯선 반찬이라도 하나 더 올리고 싶고
비린반찬 하나라도 더 올리고 싶은 심정인데
느닷없이 손님이 오시면 갑자기 내 손이 바빠진다.
텃밭으로 뛰어가서 부추라도 후드득...
배추 남은거랑 겉절이하고
달래라도 호미로 대충 파 올려서
맛있게 양념장 만들어서 양배추 삶아 내고
계란을 급하게 투두둑...양재기에 깨 담아
우유 좀 넣고 노랗고 부드럽게 찜을 한다.
국은 뭘로 한다~~
멸치 육수를 번개같이 내서 무 썰어 넣고
북어국을 시원하게 끓이고 파 송송~`
달랑무우 김치에 소박이에 배추김치
깻잎김치에 더덕무침을 곱게 담아 내느라 바쁜 걸음을 치고야 만다.
슈퍼가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일장을 봐 두고
그 장을 오일동안 먹다시피하는데.....
손님이 오신다하면 멀리 마산엘 가든지
밤에 슈퍼에라도 가서 미리 장을 봐 두는데 갑자기 오시면...
오일 단위로 장을 보던가 밤에 슈퍼엘 가서 좀 준비하는데
어떨 땐 그냥 상설시장에 가기도 한다.
시골 상설시장이 뭐 별게 있겠는가?
늘 고만고만한 반찬들...
푸성귀들...
바람맞은 생선 몇마리.
그럴 땐 도시가 좀 부럽지만 근본적으로 난 시골이 좋긴하다.
며칠이 지난 일인데도 그날의 내 옹졸함에 내가 미워진다.
늘 그러지 말고 살자고 하면서도....
나 뿐 아니라 그날 방역직원은 미움을 좀 받았다는 거다.ㅎㅎㅎ
맨날 그 시간대에 오면서 할머니들한테 요구르트 한병도 안 들고 왔으니..
꼭 뭘 바라는 건 아닌데 그래도 80~90 의 할머니들과 늘 식사하면서
단 한번도 인사를 안 했으니.
많이 받아서 인산가?
사람이 인사를 이쁘게 하면 뭐라도 하나 더 얻지.
방역 일 하고 돈 벌어 점심 얻어먹고 돈 벌어.
일석이조의 일을 하면서 늘 맨입으로 다녔으니.
절간에 가서도 눈치만 있으면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던데...
우린 방역만 하고 그 비용만 드리면 되는 거고 점심은
계산서에서 빼 주지도 않으면서 매번 먹었으니...ㅎㅎㅎ
고운 마음으로 늘 그랬는데 그 날은 어쩐지 심술보가 터지는 바람에...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발견되면서 약간은 당황.
남편한테 이야기 했다가는 또 혼 날 일이다.
사람이 뭐 그러냐....
옹졸하게 밥이나 굶겨서 보내고 말이야...
남편은 우리집 마당을 밟는 사람한테는 아내가 굶든 말든
손님을 밥상에 부르는 사람이니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
앞으로는 방역직원이 또 점심시간에 오더라도
내 치지 않고 밥 그릇에 고봉으로 밥을 담아 드려야겠다.
봄나물이라도 듬뿍 차려서....
다 드시고 나면 쓴 커피도 따끈하게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