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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97

나는 나쁜 딸.


BY 그대향기 2009-02-26

오늘은 우리 엄마 생신.

여든 여섯번째의 생신.

아침 일찍 엄마한테 전화를 넣고

나..\"어~~ㅁ.~~마~~~(고래고래).창녕 민지네~~`\"

엄마..\"누군교? 아이고~~암 것도 안 들린다~~야야(올케보고)

         누라카는지 안 들린다.\"

나..\"엄마~~`딸내미라카이요~~생신 축하하니데이~~

       오늘 못가니까 골목에서 기다리지 마이소~~~\"

엄마..\"전화기 속에서 앵앵 하는기 민지네 같다.

         민지네가? 오야~~우얀일고? 앙? 내 생일이라꼬 전나했다꼬?

         목소리 듣고 싶더이 잘 했네...오야..오야...아아~~들은 잘 있제?

         그래...끊어꾸마........철꺼덕....뚜우.....\"

나..\"예~~건강하이소~~나중에 함 가께요.....ㅠㅠㅠㅠ\"

 

우리 엄마.

보청기 넣은 귀가 시끄럽다고 빼시고 거의 절벽수준.

고함지르고 꽥꽥이 처럼 왁왁거려야 겨우 몇마디.

 

오늘 오리사냥.

우리집 할머니 중에 95세 되시는 할머니생신.

두루두루 친지들 불러서 비슬산에 오리 잡으러 간 날.

거진 30 여명이 모이셨다.

서울 ..울산..대구.

비슬산 오리훈제가 오늘의 파티장.

숯불이 내는 연기에 엄마얼굴이 보이고

산길 굽이굽이 엄마집 가는 길이 보인다.

저 고개만 넘어가면 경북인데...

저 산모퉁이만 돌아서면 엄마집이 가까울건데...

 

엄마 생신은 늘 할머니 시중 드느라 못 간다.

우리 엄마.....

하루 온 종일을 골목길에서 나 기다리신단다.

못 올줄 뻔...히 아시면서.

올케가 그러더라.

\"고모야..어무이한테 못 온다고 꼭 전화해라.

어무이 하루 종일 골목에서 또 기다리실라....\"

막내로 딸랑 나 하나 보시고 그렇게나 좋아하셨다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난 해마다 섭섭하게 만드는 나쁜 딸이다.

남의 할머니 생신은 차려드리면서 내 엄마는 해마다 울리는 나쁜 딸.

 

오늘도 오빠편으로 용돈만 부쳤다.

\"오빠야...봉투 두개 준비해서 이서방 이름하고 둘째 이름 적어서 엄마 드려요.

어쩌면 오래 못 사실것 같아......ㅠㅠㅠ 둘째꺼는 꼭 이야기 해 드려요.

외손녀가 드리는 첫 용돈인데...\"

\"알았다....못오제... 올해도?\"

\"예.....나중에 시간내서 함 올라갈께요.\"

\"그래라....욕보제? 할매들하고?\"

\"뭐...이제는 직업인데요.\"

\"그라머 수고해라...어무이한테는 잘 말씀드리꾸마...\"

\"엄마 맛있는거 해 드리소~~\"

 

우리엄마.

친구처럼 가까이 데리고 살고 싶으셨는데...

난 맨날 멀리서 엄마나 울리고.

엄마는 나만 가면 쓰다듬고 날 쫒아 눈길이 다니신다.

뭐 먹을래? 뭐 주까? 잘래? 이불 펴 주까? 설겆이는 하지말라..내가 하꾸마..

허리는 꼬부라진 할매가 나 물에 손도 못 넣게 하신다.

집에서도 많이 한다며.

친정에 가면 난 상전 아닌 상전이다.

올케도 물컵 하나 못 씻게 한다.

일에 뭍혀 산다고.

 

엄마~~

오래 사셔요~~

자주 못 가더라도 오래 사셔요~~

경주에 엄마가 사신다~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

누가 경주라고 이야기만 해도 엄마 생각나.

엄마~~

많이 사랑해~`

못난 딸을 그리 보고싶어해도 자주 못가서 미안해.

그래도 많이 사랑해.

근데 엄마.

내가 엄마 이렇게 보고싶은 만큼 우리 딸들도 그럴까?ㅎㅎㅎ

안그래도 할수없겠지?

쓸쓸해.

오늘....

낮에 큰 딸이 전화했었어.

민지말이야...

과테말라에서.

뭐라는 줄 알아?

이번 주일에 점심 당번인데 반찬 뭐하면 좋겠냐고...ㅋㅋㅋ

국제전화로 그런 일 물어보더라구,....ㅋㅋ

어리지?

그래도 둘이는 잘 살아.

김서방하고...결혼식 때 딱 한번 봤지?

소꿉놀이하면서..

그럼 됐지 뭐.

웃었어 많이...

귀여워서.

엄마도 웃기지... 응?

내가 어리버리한 딸을 키웠거든.

엄마보기에도 내가 어리버리하지 아직?

왜 안그러시겠어.

애가 셋이나되고 사위까지 본 내가 웃길거 같애.ㅎㅎㅎ

 

엄마.

오늘 정말 미안해.

꼭 가고 싶었는데 ....

나중에 휴일에 갈께.

요즘 딸기 맛있더라.

잘 익은 걸로 사 들고 갈께.

감포나 어디가서 엄마 좋아하시는 회 하러 갈까?

아니면 올케식당 불고기집?

그날 엄마 기분 봐서 가시자구.

공연히 어리광 피우고 싶어.

오늘만큼은....

이해하실거지?

고함치고 싶을만큼  보고싶어도  참을래.

이미 울고 있으니까...

엄마.

보고싶어....

 

그래도 엄마...

엄마는 나보다 나으시잖아.

이 못난 딸이 보고싶으시면

두어시간 달려오시면 되지만

내가 두어시간 밤에 달려가면 만나지만

알잖아..나는~~

큰 딸은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먼~~나라에 가 있고

둘째도 그만큼이나 먼~`나라에 갈거래.

몇 달 후에.

밤마다 침대 옆에 붙혀둔 세계 지도를 보곤 해.

큰 딸이 사는 나라가 어디쯤인가 보느라고..

한뼘도 안되는 거린데 아주 아주 멀대나 봐.

비행기로 오래오래 가야한대.

 

엄마는 내가 첫딸을 낳던 날 옆에 계셔줬잖아.

근데 말이야.

난 큰 딸이 애기를 낳더라도 곁에 못 있어줄 거 같아 .

거리도 너무 멀고 또 있어...

못 가는 이유가.

엄마가 들으시면 슬퍼할 이유가...

외국에 나간게 좋으면서도 이럴 땐 미안하고 막 그래.

첫 애기 낳을 때는 친정엄마가 제일 일건데....

그냥 혼자서 울지말고 이쁜 아기

건강한 아기를 낳기만 기도 해야 할 것 같아.

엄마도 기도해 주실거지?

 

엄마.

가시는 날까지 더는 아프지 않으시길 바랄께.

지금까지도 충분히 아팠잖아.

초년 복도 없으셨는데 노년복까지 없으시다면

너무 잔인하시잖아.

자식들 중에 큰 부자는 아무도 없지만

그리 큰 불효자도 없으니 다행이지 뭐.ㅎㅎㅎ

자식이 부모를 버리기도 하고

자식이 부모를 해치기도 하는 요즘인데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겠지.

엄마 몫의 복.

지금만큼만의 건강이라도 지켜서

엄마가 누리실 복을 다 누리시고 가셔야 해.

엄마.

많이 많이 보고싶은 엄마.

생신을 축하해.

내년에도 이런 글을 올릴 수 있게 해 주실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