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837

버스 정류장에서


BY 동해바다 2009-02-17


과자류와 쥬스, 그리고 반찬 몇가지를 넣은 커다란 비닐봉투를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갑니다. 
삐이익 미끄러지듯 시내버스가 정지하고 서너 명이 버스에 올라탑니다. 
행선지가 어디일까 내 눈은 버스 옆구리에 적힌 노선표를 봅니다. 
\'저 버스를 타면 도봉산을 가겠네.\'
집으로 가야 할 나는 쓸데없는 도봉산행을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비가 내렸고 우수를 며칠 앞둔 오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려는 듯 매우 춥습니다.
부르르릉~~~~
버스는 떠나고 버스꼬리를 따라 내 눈도 따라 갑니다. 

논현동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은 20분 정도, 오늘은 손에 들린 무게가 너무 무거워
언니가 알려준 버스를 타려 처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갔습니다.
김장철을 전후로 덜 바쁘긴 했지만 여전히 언니의 가게는 불황 속에서도
별 어려움없이 손님들을 맞고 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아 큰 경기를 타지않게 도와주는 원룸촌 젊은이들, 
그리고 이웃한 호텔 투숙객들, 마트가 들어서있는 빌딩내 회사원들, 
일부 주부들이 주 고객인 이곳 일터에서의 일은 이제 몸에 벤 익숙함으로
하루를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배추 10포기를 절여놓고 나왔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시고
아픕니다.
여섯 시면 퇴근하는 언니에게 오늘의 매출을 메시지로 알려줍니다.

하늘에 닿을 듯, 마천루들이 우뚝 솟아 서로의 키를 자랑합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고개를 쳐 들고 높은 빌딩들을 올려 봅니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함이 맴돌아 허공만 바라다 봅니다. 

\'노란버스라는데 왜 이렇게 안올까\' 
기다리는 버스가 오는 동안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던지, 오늘 하루가 버거웠나 봅니다.

며칠전 삼척에 내려가 서랍에 넣어 두었던 영수증을 꺼내었습니다.
납기일 2월 18일...
2월 18일이면 그이가 떠난지 6개월 되는 날입니다. 참 빠르기도 하지요.
그 6개월 이내에 재산상속 취득세를 내야 합니다.
그이 이름 앞으로 있던 재산, 15년 동안 삼척에 거하며 살고 있었던 3층 건물..
부모님이 그이에게, 다시 나에게...
부모님께서 그의 명의로 만들어 주신 건물이었습니다.

등기이전 비용은 일단 마이너스카드로 빌려 지난 10월 중으로 납입하였고
등기완료후 그의 적금통장 해약금 700여만원을 받아 예금해 놓고 6개월을 기다렸습니다.
빨리 내 버리면 속 편한것을, 왜 서랍속에 넣어 두었는지....
납기일을 며칠 앞두고 어제 아침 거금의 취득세를 냈습니다.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비워지면 채우고, 채워지면 또 비워지는 것들도
참 많습니다.
헌데 나의 빈 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기 힘듭니다. 가끔 내가 얄밉기도 하구요.

계절은 또 다른 계절에게 자리를 내주려 합니다. 
봄은 소리없이 다가오겠지요. 그리고 나는 그 봄을 심히 탈거구...
스쳐 지나갈 아픔은 수도없이 찾아오는 법,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 나름 애써 봅니다.
노오란 순환버스가 내 앞에 섭니다.
딸아이가 \'과자 사줘어\' 라고 보낸 메시지로 맘좋은 에미노릇하며 버스에 오릅니다.

강남의 유흥업소 불황은 없는가 봅니다. 
차창 밖 강남이 술에 취해 있네요.  
- 지난 2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