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날씨답지 않게 연일 푸근하다.
옥상에 깔아 둔 물호스도 얼지 않아서 낮에는 겨울이지만 화단에 물을 좀 줬다.
눈도 거의 없는 올 겨울이라 나무들이 너무 메말라 춥지 않은 날을 골라서 물을 준 것이다.
지난 해 11 월에 휴가를 가면서 춥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들여 놓지 않았던
내 사랑하는 화초들이 많이 망가졌지만 그래도 생명력이 강한 화초들은
싱싱하고 건강하게 겨울을 나고 있어서 얼마나 감격스럽고 고마운지....
목수국이나 천리향 같은 나무 종류는 꿋꿋하게 마른 가지나마 겨울 햇살 아래에서
곧 다가 올 봄을 기다리며 마른 가지에다가 꽃송이들을 숨기고 있겠지.
상사화도 보기보담 얼마나 강인하고 대견스러운지.
여리디 여린 꽃대에서 타 오를 것 같던 붉은 꽃들을 갈래갈래 피워 올렸다가
겨울이 되면 녹색의 줄기들을 얼지도 않게 건사하며 저리도 씩씩하게
텅~~빈 화단을 지켜나가고 있다니...
하도 아무런 반응없이 줄기차게 빈 화분으로 있기에 혹시나...죽었나 해서
몇번이나 화분을 뒤집어서 뿌리가 썩었나..싶어 파 헤쳐봤는데도 의연하게도 세상에.
기다려 줄줄 모르는 성미 급한 주인을 배반 않고 가을 날에 붉디 붉은 정열로
피었다가 겨울 화단을 푸르게 지켜주고 있다.
남천 만이 피라칸사와 더불어서 겨울 화단을 지키고 있다.
붉게 붉게.....
실내에는 게발선인장이 만발해 있고 호접난이야 사철 피는거고
이름을 잊어버린 몇몇 화초들이 겨울꽃을 피워준다.
지난 화요일에는 너무 꽃이 없는 베란다가 허전해서 쉬는 날
화원으로 달려가서 큰 화초는 가격이 만만찮아 작은 화초 몇을 사 들고 왔다.
남편은 어째 요즘 꽃에 관심이 없나...했다니 웃을 수 밖에.ㅎㅎㅎㅎ
관심이 없는게 아니라 겨울이라 적당한 화초도 그렇고 밖에서 키워야 꽃도 이쁘고
물 주는 낙도 있어서 겨울이면 가을까지 밖에 뒀던 화초들 건사만 하고
웬만해선 사 들이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다.
시어머님이 이사 가시면서 내게 선물해 주신 화초도 몇 있고
일부러 화원에 가셔서 똑 같은 화초를 둘 사 오셔선 기념으로 주고 가셨다.
시어머님은 내가 꽃을 좋아하다보니 어디 가셨다가 탐나는 게 있으면
봐 두셨다가 어머님 친구분의 딸이 하는 화원에다가 전화를 해서 주문을 하시고
도착하면 하나씩 갈라주신다.
이젠 그런 선물도 어렵겠지만.
요즘 부쩍 컴퓨터 앞에서 이리저리 둘러 보느라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한가지 나 자신과 약속한 것이 있다.
\"컴퓨터 앞에 앉을 때 마다 영어 단어 한개씩만 외우기 !! \"
어려운 단어는 아예 말고 쉬운 초등학교 영어단어 외우기.
이미 고등학교 영어단어는 다 잊어버렸고 어쩌다 생각나는 것은
완전 초보상태의 단어들이라 그럴바엔 처음부터 하자.
그림도 있고 발음기호까지 상세히 나와있는 한영사전을 컴 옆에 두고
연습장이랑 볼펜을 두고 컴을 켤 때 마다 몇번씩은 써 보고 컴을 시작한다.
남편도 아들도 웃기는 하지만 재밌게 보는 듯 하다.
한영사전만 다 외워도 기본 회화는 되겠네 뭐.ㅎㅎㅎㅎ
단어만 있는게 아니고 회화도 같이 있어서 혼자서 중얼중얼.........
이미 잊어버려서 그렇지 단어 공부를 하다보니 옛날 중고등 학생시절에 외웠던 단어들이라
몇번 적어보니 알 것도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컴만 켰다가 끄고 나가면 썰렁하겠지만
단어 몇개씩이라도 외우고 나가면 숙제를 끝낸 학생 같은 느낌이랄지...ㅎㅎㅎ
뭐 대단한 목표가 있다기 보다는 치매예방 차원이고
더 이상 머리가 돌머리가 되는게 두려움이다.
뭘 기억하는게 자꾸 둔해지고 있고 건망증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심한 깜빡증에
어디에 뭘 뒀는지 까맣게 생각이 안 날 때는 이러다 아주 사람 망가지겠다 싶어
은근히 걱정도 되고 남편이 뭘 찾아 달라고 해도 그걸 어디에 뒀는지 도통.......
이러면서 늙는걸까?
전에는, 불과 몇년 전에만 해도 한문급수도 제법 높은 걸로 따 놓기도 했고
시도 제법 잘 외웠었는데 지금은 영......
가끔은 두렵다.
너무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될까 봐.
애들은 지식을 자꾸자꾸 최신형으로 박아두는데 엄마는?????
제자리 걸음이 아니라 아주~`깡그리 잊어버리는 퇴보가 되려하니.
핑~핑~ 잘도 돌아가는 애들의 머리를 따라가기란 애당초에 무리고
그냥 가끔씩 우리 집에 놀러오는 파키스탄 총각근로자 나랑 말이 좀 된다고
자꾸 누나~`누나~~하면서 오는데 식겁할 노릇이다 .ㅋㅋㅋㅋㅋ
짧은 단어 몇을 암기해 내려고 진땀이 날 지경인데 자꾸 말을 시키니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손짓에 발짓에 그야말로 바디랭귀지~~~`
만국공통어 웃음에 미소작전까지 다 동원해도 역부족.
하이고...아저씨 그만 좀 와요.
나 밑천 다 떨어졌시요~`ㅎㅎㅎ
그러는 내가 우스워 남편은 그 총각이 날 좋아하나보다고 놀린다.
이 시골에서 영어로 말 하는 사람이 없다가 겨우 단어 몇을 더듬대는
내가 신기해서 찾아오는구마는 남편이 자꾸 놀리고 있다.
파키스탄 총각이 생기긴 잘 생겼더만.ㅋㅋㅋ
코도 우뚝하고 눈매도 서글서글 깊고 예의도 바르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는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다.
자기는 무슬램이라고 하고.
사람이 그리워 가끔 찾아온다.
온통 낯선 나라 사람들 속에서 고향이 그리워..형제자매들이 그리워....
고향의 여자친구는 자기가 멀리 오는 바람에 헤어졌단다.
스물여덟의 젊은 총각이 멀고 먼 나라에 돈 벌러 와선
시골생활이 무지 힘들고 외롭다고.....
유창은 아예 꿈도 못꾸지만 만나면 인사라도 하는 그런 아줌마가 되었으면.
겁내서 주방 모퉁이로 슬그머니...도망치는 아줌마가 아니기를...
이 작은 꿈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가장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