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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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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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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둘째


BY 선물 2008-12-26

저녁 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내 입에서 노래가락이 튀어 나왔다.
어쩜 노래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흥얼거리는 소리이다.
뇌의 전달체계를 제대로 거치지도 않은 완전 무의식 상태에서 나온 소리.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버럭 역정을 내신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밥이나 먹지, 무슨 노래를!
상황파악도 채 안된 상태에서 혼이 난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내가 방금 노래를 불렀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왜 그랬지?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끌끌 혀를 차신다.
순간 명치께가 뻐근해지는 게 눈물을 왈칵 밀어냈다.
눈물을 보이면 아버진 화를 더 내실 것이다.
하지만, 참으려니 가슴이 더 아파온다. 그냥 밥 먹는 것을 멈추고 숟가락을 놓았다.
그리고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인 채 일어서면서 배가 아프다는 변명을 했다.
변명은 허술했고 삐죽거림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내 태도에 아버지는 본격적으로 화를 내신다.
화기애애해야 할 식탁은 순식간에 싸늘해지고 다른 식구들도 덩달아 숟가락질을 멈춘다.
-어서 앉아서 밥 먹지 못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꺼이꺼이 운다.
눈물 콧물 범벅된 밥을 입 안 가득 쑤셔 놓고 아귀아귀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한 말씀 하신다.
-아유, 애 잡겠네요. 체하겠다. 물마시고 얼른 들어갔다가 나중에 다시 먹어.
밥 먹다 노래 불렀다고 혼나는 사람은 나뿐일 거야.
반발심에 보란 듯이 밥을 쑤셔 넣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볼을 씰룩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구역질이 나서 다시 밖으로 나와 바깥 욕실에서 먹던 것을 다 게워내고 말았다.
달려와서 등을 두드려주던 엄마는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라 하시지만 오빠나 동생들은 눈치껏 알아서 남아있는 밥을 다 먹어치운다. 본능에 충실한 내 핏줄들.


방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더 고통스러운 듯 배를 움켜쥐고 어깨도 아주 심하게 들썩였다. 아버지를 겨냥한 과장된 몸짓이다.
방에 들어 와서 생각해봤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그래, 밥 먹다가 노래 불렀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밥 먹다 노래 부르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런 법 있으면 내가 잘못을 인정하리라. 법 공부 한번 해 본 적 없는 열 다섯 사춘기 소녀는 아무렇게나 편한 대로 법을 들먹여댔다.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혼자 방에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선 텔레비전 보며 깔깔거리는 형제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웃음소리도 곧 멈추게 되리란 것을 나는 경험으로 대충 예감한다.
누가 혼이 날 때 죽은 듯 있지 않으면 꼭 불똥이 다른 식구들에게 튀었음을 익히 배웠다.
그런데도 불을 향해 들려드는 불나방처럼 낄낄대는 어리석고도 철없는 나의 형제들. 곧 닥쳐올 환난이 두렵지도 않은가.
그런데 그날은 제법 잠잠했다. 혼자 있던 나는 본격적으로 서러워진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혼자만의 소설을 쓰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그래, 아버진 나만 미워하시는 거야. 옛날부터 그랬어. 친척들이 말하는 걸 다 들었는걸. 민지가 태어났을 때 성공이라고 아버지가 그러셨다고. 그러니까 난 실패고. 그러니 당연히 내가 공부도 제일 못하고 혼도 제일 많이 나고 그러는 거지. 왜 나만 미워하실까. 아버진 어릴 때부터 그랬어. 내가 거짓말을 잘 해서 혼내는 거라고. 그렇지만 내가 왜 거짓말 하는지는 알려고 하지도 않으시잖아. 좀 더 다정하게 하셔도 내가 그럴까. 나한테만 무섭게 하시니까 혼 안 나려고 그러는 거지. 휴, 내가 친딸이 맞기는 맞나.

나는 정말 아버지께 서운함이 많았다.
괜히 아버지가 무서웠다.
사실 아버지는 자상함과 엄격함을 모두 지니신 분이다.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면 자상하시지만 아니다 싶은 행동 앞에서는 확실한 가르침을 주셨다.
제일 싫어하셨던 것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에는 반드시 회초리를 들었다.
앞마당에 있던 석류나무, 가죽 나무 등은 열매나 잎의 모습으로 먹거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나뭇가지는 냉정한 회초리가 되어 연한 종아리에 매섭게 달겨들기도 했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늦게 들어갔을 때 혼을 내시던 아버지께 친구엄마가 밥 먹고 가라 하셔서 늦었다고 거짓말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는 거짓말을 야무지게 해내지 못한다. 더듬더듬 버벅버벅. 그리고 곧 탄로가 난다.
그때도 회초리로 응징되었다.
생각하면 오빠와 나만 맞고 자랐지, 동생들은 거의 맞지를 않았다. 막내는 우리 모두에게 듬뿍 귀염 받으며 맞을 만한 일을 거의 하지 않았고 동생 민지는 아버지가 안 때린 것이 아니라 못 때리셨던 적이 많았다.
왜냐하면 일단 엄살이 무진장 심했고 또 겁이 많아서 도망을 가기 때문이다.
도망 같은 것, 나는 엄두도 못 낸다. 그러나 민지는 도망갔다가 아버지가 제 풀에 지치실 때쯤 타이밍을 잘 맞춰서 기어 들어온다.
그리곤 애교작전으로 회초리의 공포를 벗어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사실 아버진 대단한 원칙주의자도 아니셨다.

어쨌든 혼자 서러움에 지쳐있는데 엄마가 죽을 끓여서 들어오셨다. 게다가 직접 떠먹여주신다. 그리고 나를 눕히시더니 노래를 부르셨다. <엄마 손은 약손, 은지 배는 똥배.>
배를 훑는 엄마 손길은 따뜻했고 엄마 냄새는 향긋했다.
엄마는 내 친엄마가 확실하다고 결론 내린다.
엄마 앞에서는 아무리 덩치가 자라도 나이가 먹어도 나는 어린 애가 된다.

그리고 곧 아버지도 친 아버지가 맞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예상대로 밖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형제들이 아버지의 불호령을 맞게 된 것이다.
-그래, 너희들은 은지가 저렇게 밥도 못 먹고 울면서 누워 있는데 지금 한가하게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는 거야!
탁 하고 텔레비전 끄는 소리가 들리고 뿔뿔이 방으로 흩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아버지도 순간적으로 밥상머리에 앉아 흥얼거리는 내 식탁 예절이 거슬려서 혼을 내긴 하셨지만 결코 맘이 편치 않으셨던 거다. 그리고 아버지를 정말 화나게 만든 것은 노래가 아닌, 그 뒤에 찔찔거리면서 버릇없이 먼저 숟가락을 놓은 내 행동이었다.

사실 아버지가 늘 그렇게 단죄만 하시는 분은 아니었다.
언젠가 방학을 했던 날이다.
아버지가 성적표를 받았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이 되었다.
성적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성적표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백 단위에 붙은 숫자를 칼로 교묘하게 지우고 석차를 두 자리 숫자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위조기술은 초짜 아마추어 기술이라서 완벽하게 감출 수는 없었다.
성적표를 보시던 아버지는 옥상으로 나를 올라오라고 하셨다.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일은 맞아도 싸. 이러니 내가 미움 받지.
단단히 각오하고 올라갔다.
아버지는 나보고 먼저 잘못한 것이 뭔지 고백하라고 하셨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진실을 말씀 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진 공부가 그렇게 하기 싫으냐고 물어보셨다.
네, 라고 말씀 드릴 용기까진 없어서 그냥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간신히 대답했다.
아버진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등을 툭툭 두들겨 주셨다.
-그래,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성적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앞으로는 이런 행동 절대 하지 말고…….
예상을 완전히 뒤 엎은 아버지의 용서가 정말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는 실망하시지 않도록 제대로 열심히 해야지. 그러나 내겐 끈질긴 집념이 많이 부족했다.

나 혼자서 이렇게 서러워하고 있을 무렵 오빠도 비슷한 감정을 겪긴 했나 보았다.
내가 오빠에 대한 기대와 동생들에 대한 관용 사이에 낀 둘째의 서러움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오빠는 맏이라는 자리에서 감당해야 할 맹목적 기대에 대한 부담과 그에 따른 반발로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둘째의 서러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물론 요즘은 둘째라는 존재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둘째가 곧 막내인 가정이 대부분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