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멱둥구미


BY 도영<박 모니카> 2008-12-19

저의 지인 포항사는 박모니카 님의 글입니다

경남일보 2008년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감상해보세요

 

<멱둥구미>

 

시골의 겨울밤은 길기도 하다. 먼데 개 짖는 소리 잦아들고 간혹 눈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 멀어지면 공간이 비어버린 듯 아득해진다. 그 공간을 달빛이 서성인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까치둥지에, 흙벽 옆에 그을릴 대로 그을린 굴뚝 위에도 달빛은 그림자를 남겨둔다. 그렇게 겨울밤은 깊어만 간다.

 잠자라고 재촉하듯 건넌방에서 아버지는 헛기침을 해대지만 못 들은 척 살그머니 할머니 방으로 기어들어간다. 밤참이 생각나서다. 동지섣달 긴긴 밤, 잠이 오지 않아 화로에 잉걸불을 뒤적이시던 할머니는 할머니를 찾아 준 손녀가 살가워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손녀를 쓰다듬어 주신다. 할머니에게는 항상 태우다만 지푸라기 냄새가 났다. 동백기름 냄새에 섞인 할머니만의 특유한 냄새였다. 조르지 않아도 할머니는 대청마루를 건너온 손녀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으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휠대로 휜 허리를 한 번 쭈욱 펴고는 창호지 너덜거리는 문지방 문을 밀어냈다. 할머니가 문을 밀고 나간 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칼바람이 휘익 휘돌아쳤다.

 한참 만에 들어온 할머니의 옆구리에는 멱둥구미가 들려 있었다. 응달진 장독 안에 짚 사이 켜켜이 넣어 두었을 겨울 주전부리를 넣어 온 것이었다. 할머니가 방바닥에 멱둥구미를 내려놓자 꾹 참았던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간다. 멱둥구미 안에는 보기에도 탐스러운 홍시가 새색시 볼처럼 발갛게 익어 있었다. 어머니도 손댈 수 없는 할머니만의 간식거리를 할머니는 차례로 찾아드는 손자들에게 야금야금 즐거운 마음으로 빼앗기고 있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할머니의 멱둥구미가 어느 보석함보다 더 빛나 보였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잘 마른 짚으로 멱서리를 엮듯 둥글고 울이 깊게 할머니가 직접 멱둥구미를 만들었다. 간혹 싸리나무 껍질 같은 것을 사이사이 넣어 할머니는 갖가지 모양으로 멋을 부리곤 했다.

 우리 속담에 ‘고운 사람은 멱 씌어도 곱다’고 할 때의 ‘멱’은 멱둥구미를 덮어 쓴다는 말이다. 겉보기에 까칠한 멱둥구미 안에도 정을 담을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사실 속정이 들면 겉이야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것이 아닐까?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의 얼굴이 나에게 제일 고와 보였던 것도 이런 마음 때문이리라.

 할머니가 멱둥구미를 엮는 데는 이틀이 걸렸다. 잘 말린 짚에 훈김을 쏘여 새끼를 꼬아 만드는 일은 힘든 일임에 틀림없었다. 한꺼번에 수백 개씩 찍어대는 플라스틱 제품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의 멱둥구미 안에는 세월이 들어 있었다. 벼가 익기까지 벼줄기로서 버팀목이 되었던 시간들이 촘촘히 배어져 있었다. 그 지푸라기 한 올에는 따가운 햇살도 있었고 어둠살 짙은 별빛도 내려앉아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속에는 기교 없이 무념의 상태로 물레질하여 구워 낸 막사발 같은 할머니가 솔 향을 피우며 들어가 있었다.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이 조금씩 수척해 보이긴 하지만 슬퍼 보이지 않는 것은 짚 낟가리가 있어서였다. 짚 낟가리를 바라보면 부드러운 우수와 쓸쓸한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었다. 가을 들판에서 제 몸의 습기를 증발시킨 멱둥구미 안에는 완전히 가을이 익어 있었다. 멱둥구미에 담긴 것이 무엇이든 맛이 있는 것은 그 속에 넉넉한 가을 맛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멱둥구미를 엮어내는 지푸라기는 볍씨 뿌리기에서 탈곡을 할 때까지 긴 여정을 거쳤다. 긴 장마와 불볕더위, 태풍과 정적을 견디는 시간을 건너왔다. 반딧불이와 물매미들의 놀이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삶의 재빠르고 포악한 관성은 끝없이 우리들 자신을 일상의 편리함 속으로 매몰시켰다. 그러나 할머니의 멱둥구미는 간편한 플라스틱에 밀려나면서도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따르지도 않았다. 멱둥구미는 삶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할머니의 작은 우주였다. 할머니의 시름도 정한도 다 녹아있었다.

 나에게 멱둥구미는 할머니가 만들어 낸 요술바구니였다. 멱둥구미는 비워졌다 싶어도 또 다시 다음날 채워져 있었다. 쫀득한 고구마도 있었고, 달싹한 무도 있었다. 운 좋을 때는 곶감이나 강정도 얻어 걸릴 때가 더러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멱둥구미만 보면 입 안에 침부터 고였다. 멱둥구미에 담긴 주전부리를 더 맛나게 했던 것은 할머니의 구수한 얘깃거리였다.

 우렁각시 얘기며, 박꽃이 왜 밤에만 피는지, 소쩍새 울음이 왜 그렇게 슬픈지 실감을 섞어 걸지게 얘기해주었다. 나붓나붓 떨어지는 눈발 속에 어둠이 동굴처럼 깊어져가는 겨울밤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몰랐다. 얼어있는 홍시가 몸을 풀어 단물을 낼 때쯤 할머니는 얘기를 그쳤다. 다 녹은 홍시를 한 입 베어 물면 홍시 속살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얼얼하게 입 안 가득 고였다. 정신없이 먹어대는 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정겨운 눈빛에 눈보라를 동반한 삭풍도 비켜가고 있었다.

 멱둥구미는 할머니 냄새가 배어있었다. 거칠고 까칠한 멱둥구미처럼 할머니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역병으로 두 아들을 가슴에 묻으시고, 6.25동란 때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올망졸망 칠남매를 데리고 밥을 얻어 먹여가며 기가 막힌 세월을 사셨다 했다.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이기도 했다. 두 아들과 남편을 잃은 할머니는 짚을 꼬며 부르시던 노랫가락이 상여소리였던 것도 한이 많아서였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못 가겠네 못 가겠네 차마 정두고 못 가겠네 고생살이 못 면하고 북망산천 가는 구나.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어릴 적 할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랫가락 구절구절을 뜻도 모른 채 유행가처럼 따라 하곤 했었다.

 고향의 겨울이 더 그리운 것은 네온사인 휘황한 도회지보다 긴 겨울밤이 있기 때문이다. 수더분하고 속됨 없이 무심한 자연처럼 텅 빈 듯 충만한 멱둥구미 같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유년은 추억할 수 있는 풍성한 얘깃거리를 만들어준 할머니가 있었기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