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
매운 청국장을 받아먹느라 생후 칠 개월 된 계집아이 입술은 발갛게 되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나마 애지중지 키웠던 맏아들이 장성하여 첫 딸을 낳았다. 젖이 넉넉하여 자식 오 남매를 굶주림 없이 잘 길러낸 터라, 금지옥엽 손녀딸이 배를 곯고 있을 줄은 몰랐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것이 부족한 며느리의 젖 때문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밥 뜸 들기 전, 무쇠 솥 안에는 허연 밥물이 고인다. 국자로 덜어내어 설탕을 타서 떠먹이니 허겁지겁 먹더란다. 삼월에 태어난 아이가 밥물을 받아먹으며 시월을 맞았다. 서서히 밥알도 넘길 수 있게 되니, 새우젓 국물 넣어 끓인 밥을 주었다고 한다.
겨울입김이 마당 안을 들락거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화롯불 가운데 뚝배기에서는 보글거리며 청국장이 끓는다. 할머니는 젖도 제대로 먹지 못한 손녀딸이 안쓰러워 무릎에 앉히고 청국장에 비빈 밥을 떠 먹였다. 걸음마와 말보다 나는 그렇게 청국장을 먼저 배웠다.
청국장은 우리 집 밥상 위에 김치만큼이나 자주 오르던 음식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배고픔에 절어버린 나에게 길들여진 첫맛이기도 했다. 뇌의 어느 부분쯤에 각인이라도 된 것인지, 지금도 연세 드신 시어머니를 졸라 기어코 청국장덩어리를 넘겨받고 만다.
청국장을 떠올리면 독특한 향기가 먼저 코끝으로 다가온다. 지나칠 정도의 그 냄새 때문에 선뜻 먹기를 꺼려하는 이도 있다. 오래 묵은 구세대이거나, 시골정경을 고향이라는 이름 속에 간직한 사람들만의 음식이라고나 할까. 요즘엔 띄우는 과정에서 냄새를 없앨 수 있다지만 어쩐지 달갑지 않게 느껴진다. 청국장에서 풍기는 것은 단지 음식의 냄새가 아니다. 고향집부모형제 향한 그리움을 퍼먹었던 것이다.
청국장은 우리의 대표적인 먹을거리중 하나인 콩을 이용해서 만든다. 콩이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본래 가지고 있는 좋은 성분과 아울러 기존에 없던 성분이 더해진다. 요즘엔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며 음식이기보다는 약의 기능으로 찾기도 한다. 콩의 사포닌이 암을 억제한다는 자료가 있고, 청국장에서 나오는 끈끈함이 항암능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비단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와 청국장과의 인연이 오래 지속된 것은 아니다.
한때, 청국장은 나에게서 무참히 버림받기도 했다. 수원 아주대 앞 이 백 만원 하는 전세방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 허울 좋은 맏딸의 어깨 위에 동생들까지 나란히 얹고 숨찬 이십대를 보냈다. 박봉으로 두 동생을 공부시켜야하는 생활은 늘 빠듯했다. 지친 몸 쉴 겨를도 없이 주말이면 양식거리를 찾아 고향집엘 갔다. 깨끗한 지폐다발로 척 넘겨주면 좋겠는데, 보따리마다 잔뜩 챙겨놓은 어머니가 원망스럽다.
만원버스안 사람들에게 채이며 들어가려니 손에든 짐 때문인지 서글픔이 밀려왔다. 까치발로 안간힘 쓰며 간신히 버스 짐칸에 올렸다. 얼마쯤 갔을까. 깜빡 조는 내 귓가에 두 남자의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구린내가 나지 않느냐, 누가 방귀 뀐 거 같다는 내용이다.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김치 국물이 배어 나온 보자기 옆으로 청국장까지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닌가. 오만가지 냄새를 뭉쳐놓은 보자기임자가 나라는 사실이 끔찍했다. 내릴 정류장이 다가오자 가슴이 더욱 두방망이질을 쳐댄다.
드디어 버스는 멈추었고 나도 내렸다. 달랑 어깨에 작은 가방하나만 둘러메고 빈손을 휘저으며 자취방을 향해 걸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보따리에선 종점 가는 길 내내 붉은 눈물이 흘러내렸으리라.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은, 남루한 어머니와 고향집의 가난이었다. 수치심을 차안에 남겨두었으니 맘이 가벼워질 줄 알았으나 발등에 양심의 돌이 올라앉아 천근만근의 걸음이었다.
결혼 적령기를 다 넘기고 꽉 찬 나이에 강원도로 시집을 왔다. 물과 사람이 낯설고 음식도 달랐다. 친정이 그리워지는 깊이만큼 골목마다 어깨 시린 겨울은 빨리도 찾아왔다.
한기가 느껴질 때면, 무쇠화로에서 끓던 청국장냄새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단순히 코로 맡아지는 냄새만은 아니었다. 배고픔을 달래주던 할머니 거친 손이 보이는 것 같아 나는 더욱 속이 허해졌다. 끼니때마다 맛깔스러운 시어머니솜씨가 밥상 위에 펼쳐졌다. 깊은 손맛에 감동하며 입으론 달게 먹었으나 배부르지 않았다. 불룩해진 배를 쓸어내리면서도 허기가 전해졌다.
친정 툇마루 화롯불에서 제 궁둥이를 지져대던 청국장뚝배기만 떠올랐다. 한 해 겨울도 거르지 않고 먹었는데, 시부모님 식성을 몰라 청국장 올려볼 생각을 못했다.
어색했던 시부모님과 정이 들어가던 즈음, 남편 발령 따라 동해안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다. 못난이 메주콩성품 지닌 며느리를 포용하고 다듬어주셨던 시어른들과의 이별에 사뭇 가슴이 저려왔다. 내 결점들을 씻어내고 녹아지게 한 것이 시어머니의 내리사랑이었음을 떠나는 순간에야 알게 되었다.
부족한 며느리를, 지혜의 물속에 오래 불렸다가 어머니 정으로 푹 무르게 삶아주었던 것이다. 각이 지고 비뚤어졌던 성품까지 배려의 짚단으로 싸안아 가려주신 세월이었다.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에 나는 서서히 누룩곰팡이로 번식하며 발효되어 가던 중이었다.
이삿짐 실은 트럭이 먼저 떠난 빈 골목 안에서, 어머니와 나는 한참을 끌어안고 눈물 흘렸다.
외딴 항구도시에 짐을 풀고 산지 벌써 여러 해.
어느새 메주 쑤는 시어머니 향해 졸라대는 나를 본다. 청국장 잘 띄워 달라며 친정어머니께 향하는 딸의 목소리로 콧소리를 낸다. 영아기에 배운 허기는 중년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채워지지 않았나 보다.
주말을 맞아 굽이굽이 대관령고개 넘어 전화로 주문한 시어머니 표 청국장을 찾으러 간다. 나무들을 한 방향으로만 드러눕게 한 억센 겨울바람이 설악산에 가득하다.
바야흐로 청국장의 계절이 온 것이다.
시댁에 도착하니 주먹만 한 청국장 덩어리들이 부엌에서 나를 반긴다. 당장 점심상에 청국장찌개를 올렸다.
뭉쳐진 청국장이 늙은 시어머니의 누런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반으로 쪼개니 끈적이며 길게 이어지는 콩의 실낱이 보인다. 어머니가슴 안에서 오래 삭혀진 후 뽑아 올렸을 진액이 물에 풀리기 시작했다. 김치와 두부를 썰어 넣고 적당히 끓였다. 아들 녀석이 볼이 미어지게 잘도 먹는다.
청국장비빈 밥을 입 속에 밀어 넣으며, 혼자서 음흉한 속말을 한다.
발효 잘 된 시어머니 사랑으로 겨우내 배를 불려야지.
아파트전체가 청국장냄새에 절어버리겠구나.
(몇 해 전에 써 놓았던 글인데 청국장 생각에 올려봅니다. 요즘 청국장이 먹고 싶어 죽을 지경입니다. 겨울 되니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집니다. 남편이 냄새를 싫어해서 끓이지 못하니, 더욱 그립습니다. 식당에서 파는 것도 아니고, 마트에 상표 붙인 것도 아닌, 꼭 친정집 화롯불에서 끓인 게 먹고 싶으니 이것도 병이겠지요?^^ 나이를 먹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