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가고 난 뒤 또 한참을 울었다.
일주일에 한 두번 외출하는 사람이라 혼자 집에 남겨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아래에 울지 않게 하소서라는 글을 올렸건만 눈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울고 나면 어느 분 말씀처럼 응어리가 작아질 수도 있으련만 내 가슴 속 응어리는 아직 너무 견고하기만 하다.
언젠가는,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발견하리라.
아, 이젠 그 때같지는 않구나. 그래도 훨씬 살만하구나, 하는 것을...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주변에서는 나를 사려 깊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성품이라고들 한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속 깊고 의리가 있다고도 한다.
그들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욕심과 허영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안다. 주변에 보여지는, 일상에 나타나는 부분 말고,
내 안에 숨어져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나는 좋은 것, 고급스러운 것, 값진 것을 좋아한다.
소박하고 진솔한 것들에 대해 충분히 그 가치와 향기를 인정하기는 하나
그것보다는 세상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이 내것이기를 바란다.
내 집이 더 큰 집이기를 바라고, 내 남편과 자식이 더 성공하고 더 번듯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주변의 가난한 지인이나 친척들에게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고
가능한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 또한 나의 진심이다.
욕심이 많다고 남의 것을 탐내거나, 내 유익을 위해 인격이나 성품을 얄팍하게 만든 적은 없었다. 맹세코.
단지 나는 나를 상향 욕구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그것이 \'욕심\'이라고 진단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얼마나 깊고 높은 명언인가.
그 간단한 말을 40대 후반, 쉰을 코 앞에 두고서야 체득했으니...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을 원하는 마음이 결국은 욕심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벌을 받게 되었나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 억울한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고 내가 징징대며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을 꿈꾸고,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그냥 별로 큰 만족감을 못 느끼며 살았을 뿐인데.
그래도 그 마음 자체가 나쁜 거였나.
그만큼 누리면서도 더 바라는 마음 자체가 죄짓는 일이었나....
어렸을 적, 아직 초등학생의 맑고 순진한 영혼으로 기도 드렸던 나.
이제 거의 40년이 지나서 다시 기도의 자세를 취한다.
제 욕심을 회개합니다.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해왔으나 그들의 고통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것 반성합니다.
더 큰 것, 더 좋은 것을 갈구했던 마음, 그 욕심을 용서하여 주세요.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진심으로 간절하게 기도를 올려 본다.
조금이라도 나를 덜어내고 싶기에.
이 고통에서 한 뼘이라도 멀어지고 싶기에....